'[긴급공지] 독립피디 폭행사건 제보를 받습니다'
지난 7일 (사)한국독립PD협회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제목의 공지가 올라왔다. 종합편성채널 MBN PD가 외주제작사 PD를 폭행했다는 소문을 접한 직후였다. 협회는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서 제보를 호소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 폭행사건이 아닌, '방송사 PD-외주사 PD'의 '갑과 을' 관계에 의한 폭행사건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정보나 정황도 파악되지 않았다. 당사자 신원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수소문 끝에 협회 측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피해 당사자와 어렵게 전화통화 했으나 관련 내용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자기 피해 상황도 밝히기 꺼렸다.
되레 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보 받는다는 공지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피해 당사자가 소속된 프로덕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쌍방 간 이미 합의가 끝난 일이기 때문에 더는 일이 확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에도 협회 측은 피해자와 재차 만남을 요청했으나 이를 모두 거부했다.
곪을 대로 곪은 '갑을' 관계 터진 것
알려진 바로는 피해 당사자인 외주사 PD는 지난달 25일 서울 목동의 한 술집에서 MBN PD로부터 폭행을 당해 안면골절 등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었다. 두 사람이 제작 프로그램 인트로 영상과 관련해 시사회를 가진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MBN PD가 외주사 PD를 폭행했다는 것.
MBN 측도 이를 인정했다. "해당 PD는 자체 징계로 1개월 정도 휴직 처분을 내렸으며 피해를 당한 PD와도 현재 합의를 본 상태"라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독립PD협회 측은 이번 사태가 곪을 대로 곪은 방송사 PD와 외주사 PD간 '갑과 을'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인식한다. 피해자가 되레 폭력 사태를 덮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갑과 을' 관계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관련기사 : "밤샘은 필수"… 과잉노동 허덕이는 외주 PD)
서민원 한국독립PD협회 부이사장은 피해자가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하는 것을 두고 "피해 PD가 제작하던 프로그램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라며 "만약 폭력 사태를 언급할 경우, 자신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회 측에 따르면 방송사 PD가 외주사 PD에게 가하는 '갑질'은 상당하다. 이번 폭력 사태를 촉발한 것으로 추측되는 시사회가 대표적이다. 이는 외주 PD가 자신이 만든 영상을 담당 PD, 즉 방송사 PD에게 검사받는 절차다. 이 과정에서 인격 모욕적인 언사는 물론, 물리적 폭력도 발생한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게다가 방송사 PD는 외주사 PD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일종의 오너와 다름없다. 제작비나 추가촬영비 등에 대한 재정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업무 관련 인센티브도 관여한다. 외주사 PD는 방송사 PD에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S PD협회장 "이번 폭행 사건, 방송시장 전반 문제 드러난 것"
협회 측은 15일 서울 중구 MBN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N 측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비현실적인 제작비와 열악한 제작 현실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독립 PD가 이렇게 처참한 폭행을 당한 현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낀다"며 "이번 폭행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안주식 KBS PD협회장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안 협회장은 "현재 방송사는 위험한 일, 귀찮은 일은 외주 PD에게 맡기면서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는 해주지 않고 있다"며 "이번 폭행 사건은 그러한 방송시장 전반 인력구조, 그리고 외주 PD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협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번 폭력사태에서부터 (대책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레시안 기획> [방송사 비정규직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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