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방조제로 널리 알려진 전북 군산에는 345킬로볼트(kV) 고압 송전철탑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있다. 주민들은 전기가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고, 내 땅은 안 되고 남의 땅으로 가라는 것도 아니다. 보상금을 더 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개인 땅이 한 평도 들어가지 않는 대안노선이 있고, 대안노선으로 건설할 때까지 시간이 충분하며, 주민들의 피해액에 비해 대안노선의 추가 공사비가 훨씬 적으니 이를 적극 검토하자는 것이다.
"내 묘를 송전철탑이 세워질 자리에 쓰라"
전북 군산 미성동, 옥구읍, 회현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한국전력(한전)의 345kV 고압 송전철탑 건설 계획으로 인하여 재산이 반 토막 나고 마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2008년 말부터 7년째 싸워 오고 있다.
이 송전철탑 건설 공사는 2008년 초 OCI(주)라는 화학회사에서 태양광 발전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증설하기 위하여 대용량 전력을 요청하자, 군산시에서 같은 해 12월 주민들 몰래 한전과 전력공급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시작된 시책사업이다. 한전에서는 철탑 방식으로 전기를 공급하기로 하고, 농촌 마을과 논밭을 지나는 31킬로미터(㎞) 구간에 아파트 22층 정도 높이인 65미터(m) 철탑 88개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2011년까지 42개는 이미 세웠고, 나머지 46개는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못 세우고 있다.

옥구읍의 한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약 4000제곱미터(㎡)짜리 논 여덟 필지를 사서 성공했다고 자부했는데, 일곱 필지로는 송전선이 지나가고 한 필지는 송전선 바로 옆 논이 되어 평당 15만 원이던 땅값이 6만 원이 되고 8억 원 정도의 재산이 일순간에 날아가게 됐다. 할아버지는 송전철탑 반대 집회에 나오면서 화를 삭이지 못하다가, 끝내 간암에 걸려 지난해 세상을 떴다. 너무나 억울해서 "내 묘를 송전철탑이 세워질 자리에 쓰라"고 유언했는데, 아들이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단다.
고압 송전선이 특히 소아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전해 들은 주민들은 어린 손주들이 걱정돼 같이 살던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자신들도 이사 가겠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이사 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벌써 마을이 빌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력사용량과 지중화 비용을 부풀린 한전의 거짓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민들은 생존권 사수 차원에서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적으로 한전에 대항하게 되었다. 먼저 한전과 법적 투쟁을 벌여 나갔고, 그동안 한전에서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송전철탑 건설 계획 당시 한전은 군산산업단지의 전력사용량을 50퍼센트(%) 가까이 부풀려서 전력 공급 시급성을 강조했고, 송전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지중화 비용 약 3000억 원을 5400억 원 또는 6200억 원이라고 부풀렸다. 또 신설 지중화의 경우 한전에서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데도 비용의 50%를 법적으로 군산시가 부담해야 한다고 거짓말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군산시에서 지중화 방식을 포기하고 철탑 방식을 인가하게 했다.


그런데도 한전은 송전철탑 건설을 계속 밀어붙였다. 2012년 4월 중순 용역 150명을 사흘 간 동원해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용역들에게 폭행을 당해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지역 목사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였고, 이때부터 목사들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뛰어들게 됐다.
2012년 상반기에는 당시 군산시 국회의원 후보(새정치민주연합)였던 김관영 씨가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송전철탑을 막아 주겠다고 지지를 호소하면서, 주민들의 주장이 명분을 가지려고 권위 있는 기관에 용역을 맡길 것을 권고했다. 그리하여 주민들이 성금 3300만 원을 들여 전북대학교 교수들에게 용역을 맡겼고, 그 결과 주민들의 재산 피해액이 1조 50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새만금 방수제와 남북2축 도로를 따라가는 주민 대안노선을 제안하게 됐다.
2012년 말 주민대책위원회와 한전이 공동 검증한 결과 주민대안노선을 채택할 경우 드는 추가 공사비가 660억 원으로 산출됐다. 결국 수천 명의 농민들이 합하여 1조5000억 원을 손해 보는 게 맞는가, 한전이 660억 원을 더 들여야 맞는가 하는 문제가 됐는데 한전은 주민 피해액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자신들의 노선만 고집하고 있다.
외면하는 정치권과 농번기에 기습적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
2013년 8월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중재에 나서서 그해 12월 합의안을 만들었고, 미 공군 부대 주변에 주민대안노선에 따라 송전철탑을 세울 경우 항공기 운항에 문제가 있는지 질의하였다. 2014년 6월 미 공군으로부터 답변이 왔는데, 주민들이 질의한 노선이 아니라 한전에서 단독으로 몰래 질의한 노선에 대한 답변이었고 문서 작성 날짜 등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미 공군 답변의 문제점 중 단 한 가지도 해명이 안 된 상태에서 국민권익위원회 담당자가 "더 이상은 미군이 답변을 거부해서 조사가 어렵고, 청와대와 한전의 압력이 심해서 조사가 어려우니 주민들이 이해해 달라"고 토로하고는, 미 공군 답변이 맞다고 서둘러 발표한 후 2014년 11월 24일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3월 9030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 탄원서를 제출하여 청와대와 한전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압력 행사 여부를 조사하라고 요청하고, 새정치민주연합과 김관영 의원실을 방문해 국회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한 진상조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지난 5월 12일 한전은 공사를 재개할 경우 사전에 통보하겠다는 약속도 무시한 채 바쁜 농번기를 악용해 새벽 5시부터 기습적으로 송전철탑 공사를 강행했다. 이에 주민들이 격분하여 공사를 저지하였고, 이날 김관영 국회의원이 중재안으로 내놓은 것이 "한전이 제시한 자료를 보니 전력 공급이 시급하다. 그러니 우선 한전 노선대로 공사를 계속하게 하고 향후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주민 대안노선이 맞다면 5년 후에 철탑을 모두 뽑아내고 변전소도 철거하고 주민 대안노선으로 다시 건설하도록 하자"는 황당한 얘기였다. 겨우 5년 후에 거대한 송전철탑 46개를 모두 뽑아내고 그 커다란 변전소를 철거하겠다니, 거기에 소요되는 2000억 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렇게까지 할 만큼 전력 사정이 시급한 것이 사실인가?
지난 5월 19일 사업의 원인을 제공한 OCI(주)에서 태양광 산업이 불투명하여 공장 증설을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5월 20일에는 한전 담당자가 최근 3년 동안 군산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량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전이 그토록 주장하던 전력 공급의 시급성이 모두 사라져 공사를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한전은 막무가내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농사일도 팽개치고 명분 없는 공사를 몸으로 막고 있다. 2013년 12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송전철탑 노선 변경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는데, 지난 6월 15일 77차에 이르렀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의 송전철탑 문제가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처럼 널리 알려져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진상조사를 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곳의 불합리한 일은 언제든지 내 일이 될 수 있다. 이곳 송전철탑 건설 문제를 인터넷이나 SNS 등으로 널리 알려 주길 바란다.
* 전북 군산 새만금 송전철탑 건설 반대 관련 문의 casey22@naver.com, 010-8480-2260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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