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들은 아이, 상상력 쑥쑥
일곱 살 소연이에게 <도깨비가 데려간 세 딸>(오호선 지음, 원혜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을 읽어 주었습니다. 다 읽고 나자 소연이는 책을 가져가더니, 첫 장부터 다시 펼치면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소연이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소연이 : 셋째 딸은 어쨌냐면요. (그림을 가리키면서) 이랬잖아요. 얘는 구름을 타고 하늘 집으로 올라가서 그래가지구 언니들 다 초대해갖구, 그 그 그그그 첫째 언니 미끄럼틀 타고 내려가서 그래서 '흥흥 흥흥' 이런 노래를 불러가지구요. 뚜벅뚜벅 걸어가서 언니들을 초대한 다음에 '무지개야, 계단으로 변해 줘' 그래가지구 계단으로 셋째 언니하구 둘째 언니하구 올라가가지고 맛있게 저녁도 먹었는데 구름에 음식이었어요.
나 : 하아, 구름의 음식은 도대체 뭐야?
소연이 : 솜사탕에 온통 구름으로 돼 있었는데.
나 : 맛있어? 맛있을까?
소연이 : 엄청 맛있었어요. 구름 김치에다가 팥이 담겨져 있는 밥에다가 또 화려하게 성에서 나오는 음식처럼 엄청 차려져 있어서, 그리구 구름 테이블에다가 하늘에 음식이 둥둥 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저걸 먹냐고 셋째한테 물어봤더니, 저거는 우리가 날아가서 먹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의자에 앉았더니 눈송이가 그려진 의자도 있었구요. 그리구 구름의자도 있었어요. 그리구 해님의자도 있었는데 해님의자는, 아니 바람의자도 있었어요. 해님 빼구요. 바람의자에 앉으면 엉덩이가 엄청 얼어붙어요.
나 : 여름에 바람의자에 앉고 싶겠다.
소연이 : 그럼 얼어버리는데 엉덩이가. 그런데 거기에 얼음 방패가 있어서 그걸 앉으면 얼음이 깨지고 얼음이 바깥에만 솟아올라가지구 의자를 화려하게 맨들어요….

소연이는 내가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자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소연이가 해 준 이야기를 보세요. 아이는 하늘 집에 살아요. 그곳에 언니를 초대하려고 무지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계단으로 변하게 하여 함께 올라와요. 거기에는 온갖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이 둥둥 떠다닙니다. 그 음식들을 어떻게 먹느냐고요? 날아가서 먹는대요.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요? 의자에 대한 묘사도 보세요. 앉을 때 얼음이 깨지면서 바깥으로 솟아올라 화려한 장식을 만든다잖아요. 이미지가 생생하고도 아주 분명하게 그려집니다.
이것은 책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게 바로 상상의 힘입니다. 이러한 상상력과 창조력은 아무에게나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읽기를 강요받거나 읽고 나서 틀에 박힌 활동을 해 온 아이들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머물거나 형식적인 감상문 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소연이처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듣고 즐겨 온 아이는 똑같은 책을 읽어도 무궁한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 주고 아이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말들을 격려하고 들어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나누기는 책 토론으로 확장되지요. 이때 아이가 하는 말을 받아 적어 다시 읽어 주면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반복될수록 아이는 말로 표현할 때 더욱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발전해 나가며, 글쓰기를 쉽게 시작하고 즐거워합니다.
반듯한 자세 대신 온몸으로 책 읽는 아이들
아이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때 몸으로 감각합니다. 이는 어른이 머리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만의 특성입니다. 아이마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멀리 있다가 슬그머니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읽을 때나 이야기를 들을 때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이들 모습을 떠올려 보면 뭔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 움직이고 싶어 하지요. 이야기를 들을 때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건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어서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은 책 읽어 주는 어른이 진정으로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책 읽어 주기가 좋다고 하니까 아무 책이나 골라서 읽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어른도 있습니다. 읽어 줄 어른이 미리 봤거나 즐겁게 본 책을 읽어 주는 게 아무 책이나 그냥 읽어 주거나 한 번도 보지 않은 책을 읽어 주는 것보다 아이에게 훨씬 더 큰 감동으로 다가갑니다.
많은 어른들은 '이 책이 우리 아이에게 유익한가,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 책을 고릅니다. 이런 관점은 책의 재미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작품을 제대로 보기 어렵게 합니다. 또 아이와 함께 책을 즐기고 싶지만, 어린이 책은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말도 합니다. 맞습니다. 어린이 책은 특정 성장 시기에 맞춰 써지므로, 어른이 보기에는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른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아이들의 모습도 조금씩 보이면서 즐거움이 생겨납니다. 책을 읽어 주는 어른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이해하는지에 따라 듣는 아이의 즐거움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또 여러 번 봤던 책이라 해도 아이에게 읽어 주다 보면, 다시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이나 몸짓을 잘 살펴보면, 이전에 그 책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다른 아이들에게 수없이 읽어 준 책인데도 한 아이가 잡아내는 한 장면은 그 책을 새롭게 보게 합니다.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으로서 이런 경험은 무척 행복합니다. 또한 읽어 주는 어른이 즐거워할 때 아이들의 감각이 더욱더 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책 읽어 주기는 어른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좋은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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