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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땅, 딱 200평만 있었으면…

[귀농통문] 귀농지 보는 법

"시골 마을에 있는 땅은 그 땅에 기대서 살아온 분들의 삶이 담긴 그릇, 곧 역사를 담은 그릇, 문화유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새로이 그 땅을 관리하게 된 사람(땅의 새로운 주인, 귀농·귀촌하신 분)은 자신이 넘겨받은 땅과 그 땅에 깃든 삶에 대해 마땅히 존중하고 기리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시골 들어가서 겪을 쓸데없는 갈등의 50%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땅과 관련해서 사실 이 이상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이외에 또 어떤 얘기를 할까요? 생각해보니까 다음과 같이 열두 가지쯤 되는 얘깃거리가 떠올랐습니다.

① 17만5000원짜리 밭은 비싼가, 싼가?
② 우리나라 시골 땅, 논밭의 주인은 도시 사람일까? 시골 사람일까?
③ 법으로 정한 농민의 자격은 무엇일까?
④ 농지원부는 어떻게 만들까?
⑤ 좋은 땅은 어떤 땅일까?
⑥ 작은 땅을 사고 싶은데 왜 큰 땅만 있을까?
⑦ 길로 쓰이고 있는 부분은 사고팔 때 그만큼을 제하고 거래하는 것일까?
⑧ 전국귀농운동본부 누리집 복덕방에 나오는 땅은 왜 하나같이 구석진 것들일까?
⑨ 땅을 사는 적절한 시점은 언제일까?
⑩ 명당에 터 잡고 살려면 삼대(三代)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은 정말일까?
⑪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려면 왜 가장 값비싼 땅을 얻어서 지어야 할까?
⑫ 측량은 땅을 사기 전에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질문부터 막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흥미진진! 이 가운데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녀석들은 우선 제칩니다. 자, 그럼 뭐부터 시작해볼까요?

ⓒ한국임업진흥원

땅, 제대로 보는 법

제가 볼 때 좋은 땅은 무조건 남향 땅입니다. 지적도에 땅까지 가는 길이 있어야 하고, 땅 모양이 정방형에 가까운 예쁜 모습이면 좋습니다. 남향, 길, 정방형. 이렇게 세 가지를 갖추면 좋은 땅이라고 봅니다. 땅의 방향은 인접해 있는 산을 등지고 섰을 때 보이는 방향입니다. 내 맘대로 서서 남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시골에서 몇 년을 살아봐야 흔히 '개응달'이라고 부르는 그늘진 땅이 얼마나 살기 힘든 곳인지를 알게 됩니다. 왜 그렇게 남향, 남향하는지.

현장에 가보니 길이 있다고 길 있는 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지적도를 꼭 떼어봐야 합니다. 누구 말도 믿지 말고 무조건 손수 지적도를 확인해야 합니다. 지적도는 군청이나 시청에서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지적도 뗄 때 토지대장하고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군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등기소가 있습니다. 시청일 경우는 등기소가 멀어서 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등기소에 가서 등기부등본을 떼어서 확인합니다. 지적도, 토지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등기부등본. 이 네 가지 서류는 웬만하면 다 떼어서 내용을 다 이해할 때까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걸어 다니고 차 타고 다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어쩐지 더 시골에 가까워지는 것 같고. 기분이 삼삼합니다.

땅 모양은 다들 아시겠지만, 정방형 땅이 가장 쓸모 있습니다. 삐죽한 땅이나 길쭉한 땅 들은 참 써먹을 게 없습니다. 눈짐작으로 평수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류에는 1000평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가서 보면 산이 잡아먹고 내가 잡아먹고 비탈이 잡아먹어서 5~600평이나 겨우 될까 말까 한 땅이 많습니다. 그러면 평당 10만 원이라고 값을 치러도 실제로는 20만 원을 낸 셈입니다. 쓸 수 있는 땅이 그만큼 뿐이니까요.

이렇게 잘 아는 백 머시기는 그럼 다 이렇게 좋은 땅을 샀느냐고 물으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묻지 마세요! 내 입에 딱 맞는 땅이 없습니다. '명당자리에 터 잡고 살려면 삼대(三代)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아무리 내 맘에 들어도 주인이 안 판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팔겠다고 내놓지도 않은 땅을 사려면 땅값을 굉장히 많이 드려야 합니다.

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에 나오는 장면 기억하십니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집에 불쑥 찾아가서 "이 집, 저한테 파시죠"라고 하는 거랑, 멀쩡하게 농사 잘 지어먹고 있는 땅을 불쑥 찾아가서 "이 땅 저한테 파시죠" 하는 건 아주 똑같습니다. 웃돈을 듬뿍 얹어준다면 혹시 맘이 동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체 땅이란 것이 일정하게 값이 정해진 바가 없는 물건이어서 대체 얼마를 불러야 웃돈을 듬뿍 얹어준 것인지는 주인도 모르고 객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는 일 되겠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농사꾼한테 땅은 도시 사람한테 집과 같습니다. 집도 어떤 집이냐면 아주 오래오래 살아온 집, 선대로부터 계속 물려받은 집, 그래서 웬만해서는 절대 팔지 않고 그냥 살다가 자식한테 물려주어야 하는 집. 그러나 궁지에 몰리고 몰려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처분해야 하는 마지막 재산. 그러니, 삼대가 공을 들여도 겨우 좋은 땅을 얻을까 말까 한 겁니다. 매물로 나와야 사보지요.

땅, 언제 사야 하나

자, 그럼 다음 질문. 땅을 사는 적절한 시점은 언제일까요? 제가 아주 독창적으로 남다르게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답은 뭐냐면, '내가 사려는 저 땅이 좋은 땅인지 안 좋은 땅인지, 싼 땅인지 비싼 땅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을 때 사야 한다'입니다. 멋지죠? 으하하하.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17만5000원짜리, 저 1723평짜리 땅은 비싼 땅인가? 싼 땅인가? 단박에 알아들어야 하는데, 알아들으셨죠? 1만 원짜리 땅도 엄청나게 비싼 땅일 수 있고, 100만 원짜리 땅도 터무니없이 싼 땅일 수 있는 거, 아시겠죠? 더 설명 안 하고 넘어갑니다.

발품 팔아야 합니다. 시간과 공을 듬뿍 들이셔야 합니다. 1~200만 원 하는 가전제품 하나 살 때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주변 사람들 평도 들어보면서 아주 신중하게 고르지 않습니까? 땅은 기본 억 단위 쇼핑입니다. 마음만 앞서서, 흥분해서 막 질러댈 수 있는 그런 단위가 아닙니다.

내가 땅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공부하고 충분히 돌아다녀 보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본 뒤에, 땅 거래와 관련해서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 아주 객관적인 의견을 들려줄 사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하나 신중히 잘 골라서 그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내가 판단해서 최종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올바른 결정입니다. 싸게 샀니, 비싸게 샀니, 시골에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다이아몬드 보석 같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남 핑계 대지 말고, 남한테 뒤집어씌우지 말고, 내 책임!

땅, 왜 하나같이 이 모양?

자, 이제 '전국귀농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땅들이 왜 하나같이 좀 구석진 것들인지 저절로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로, 번듯한 땅은 좀처럼 매물로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왜? 시골 땅 대부분을 도시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으니까. 통계자료는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적어도 논밭의 70% 정도는 도시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다 땅 투기를 했다는 건 아니고요, 농민의 자식들이 다 도시로 나가 사는데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전답을 물려받은 거지요. 물려받은 전답을 웬만해서는 내놓지를 않습니다.

살림살이가 웬만하지 않아야 땅을 내놓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분들은 그리 흔하지 않고 드물어요. 그래서 좋은 땅은 아예 매물로 잘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겨야 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상속받은 농지를 경작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소유하고 있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우리나라는 제헌 헌법부터 지금까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즉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명시해 놓은 나라잖아요. 굉장한 거지요. 그래서 소작이 불가능하거든요. 소작은 불법이에요. 아니, 위헌이죠. 그런데 땅은 어째서 상속이 되고, 상속받은 땅을 다른 사람한테 임대해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의문을 가지고 조사도 해보고 그래야 합니다. 답은 스스로 꼭 찾아보셨으면 해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사정이 우리하고는 영 다르더라고요.

둘째로, 적당한 값에 나온 적당한 땅은 이미 현지에서 거래가 쉽게 끝나버립니다. 시골에도 재력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이 있고, 좋은 땅이 좋은 조건으로 나오면 얼른 사버리지 그걸 내버려두겠습니까? 땅을 매입하는 건 소비가 아니고 투자잖아요. 중요한 얘기입니다. 시골로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땅 사는 걸 소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뜻밖에 많아요.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고요, 일단, 가까이에서 주인을 찾지 못하고 멀리까지 나가서 주인을 찾아내야 하는 땅은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는 그다지 매력적인 조건이나 매력적인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답이 됐죠? 멀리 인터넷에 올리는 땅들이 그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헛 발품 팔기 딱 좋습니다.

딱 200평만 있으면 좋겠다?

'나는 딱 200평만 있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샜습니다. 땅 사는 걸 소비로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내가 쓴다'는 거죠. 내가 '쓸' 땅 200평. 근데 200평짜리 땅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적은 평수 땅은 큰 평수 땅에 비해서 평당 단가가 높아집니다. 그래도 땅을 사면서 내야 하는 총액이 적기 때문에 사람들은 작은 땅을 찾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200평 농사지어서는 먹고사는 데 별 보탬이 될 게 없기 때문에 그런 정도 크기의 땅이 잘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입증이 안 되기 때문에 다 추측이네요). 그런데 이 부분은 생각을 좀 달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죠.

일단 큰 평수 땅을 내가 산다 → 옆에 두고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은 사람(친구나 형이나 동생)을 초대한다 → 내 큰 땅을 조금 잘라서 판다

이렇게 하면, 작은 공동체 하나를 만들 수 있겠죠. 시골 땅과 집이라는 게 웬만하면 평생 가는 거니까, 가까운 친구가 함께 늙어갈 이웃이 됩니다. 참으로 원하는 바입니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감당할 수만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큰 땅을 사라고 적극 권합니다. 제 말 듣고 그리하는 분이 정말 있습니다. 신기하죠? 특히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일수록 빚을 내서 땅을 사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안(못) 떠나고 붙박여 삽니다. 그래야 새벽에 "아, 빚!"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일하러 갑니다. 빚 없고 여유 있으면 농사 안(못) 짓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빚은 좋은 겁니다. 지루한 일상에 엄청난 활력을 줘요.

땅 구입 후 농사짓기

농사짓는 얘기로 왔네요. 땅 얻어서 농사지어야 할 형편이면 제일 좋은 땅, 제일 비싼 땅 얻어서 농사지어야 한다고, 경상북도 상주로 귀농한 이명학 형이 맨 먼저 제게 얘기를 해줬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귀농학교' 다닐 때는 시골에 노는 땅 많으니까 그거 얻어서 농사지으면 된다고들 했고요. 그 말이 그냥 무의식에 팍 박힌 겁니다. 한 번도 그 말이 진짜로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 깊이 헤아려보지도 않고 그저, 아, 그래야 하나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 아닙니까? 노는 땅 얻어서 농사지어 보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농사 수십 년 지어온 '슈퍼울트라킹왕짱' 농부님들도 수지를 못 맞추니까 놀리는 땅을 쌩초보가 어떻게 농사를 지어 수익을 내겠느냐는 거죠.

"아하, 맞네! 남이 하는 소리 그냥 들을 거 아니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많이 했네요. 저도 압니다.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하려고 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한 거니까, 그게 얼마나 중요해서 그런 건지 잘 아시겠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5년 10월 현재 75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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