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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멍 아이 키우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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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멍 아이 키우멍

[민들레] 엄마의 로망

로망을 품고 사는 자, 엄마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로망(roman)'이라는 게 있다. '마음속에 품고 사는 꿈'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 정도는 마음에 품고 살 것이다. 하지만 로망은 로망일 뿐,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용기가 없거나 상상력이 부족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현실이 각박할수록 이루지 못할 로망만 더 늘어난 채 살아가는 건 아닌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 로망의 내용은 점점 사소해졌고 그 수는 점점 많아졌다. 아이 없이 혼자 외출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침대에 늘어져 누워서 하루 종일 잠만 자기,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재밌는 연애 소설 실컷 보기 등등….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이런 일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큰마음 먹고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독박 육아'를 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를 보는 기쁨과는 별개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내 인생이 저당 잡힌 느낌이 들어 힘겨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 모락모락 피어난 로망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피로회복제가 되어주었다.

그중 으뜸은 제주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종종 여행하러 들렀던 제주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국적이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맛있는 음식들…. 짧은 여행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매력을 품고 있는 보물섬이 제주도였다. 또 요즘에는 각박한 도시 생활을 버리고 제주 이민을 결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니, 그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그즈음 유행처럼 출간됐던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홍창욱 지음, 북하우스 펴냄), <엄마랑 아이랑 제주에서 한 달>(이연희 지음, 미디어윌 펴냄)과 같은 책이 제주에서 살고 싶은 나의 로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겠지. 숲에 가고 바다에 가면서 하루하루 새롭고 즐겁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지.' 전쟁 같은 하루가 지나고 아이가 잠들면, '평화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를 그리워하며 혼자만의 휴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전지영

꿈은 이루어진다


오래 품은 꿈은 언젠가 이뤄지는 것일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자아가 생겨가는 20개월 아들을 키우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남편의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독박 육아'의 서러움이 커질 무렵, 제주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남편에게 한 달간 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꿈에 그리던 제주가 우리를 부르고 집도 직장도 준다니, 이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서울에서 하던 일에 비하면 월급은 아르바이트 수준이었고 단기 계약직이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예상치 못한 일로 당황하게 되는 것이 육아인 까닭에, 육아로 단련된 마음은 삶의 궤도를 잠시 이탈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었다. 한 달 후에 어떻게 될지는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짐을 쌌다. 전화를 받은 지 사흘 만에 우리 가족은 제주로 내려왔다.

해 질 녘 하늘에 양떼구름이 꽃분홍색 노을을 배경으로 떠 있을 때는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천지가 억새밭인 오름에 올라 은빛 물결에 심취되기도 했다. 바다에 가면 흰색 모래밭이 펼쳐지고 푸른 파도가 들락날락하며 아이의 발을 간질였다. 여행 와서 시간에 쫓겨 잠시 보고 떠났던 곳도 이제는 여유 있게 머물다 가는 동네 놀이터가 되었다. 길가의 나뭇가지나 솔방울, 돌멩이 따위는 아이의 좋은 장난감이었다. 특별히 어디를 가지 않고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제주에 오기를 참 잘했다 싶은 날들이었다. 도시에 있을 때 신경 써야 했던 복잡한 문제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음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제주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남편의 계약 기간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기쁜 마음도 잠시, 이것은 한 달 살기로 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였다. 도시에서와 달리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생활 방식에 적응할 수 있을지, 제주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아이와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등을 스스로 물어보았다. 현실적으로는 살던 집의 전세 계약기간이 남은 것도, 엄청난 이사 비용도 걱정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제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분들에게 묻고 걱정을 나눴다. 그리고 아이를 제주에서 키우는 특별한 경험을 언제 또 할 수 있겠느냐는 어떤 분의 말에 제주도민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로 '입도(入島)'했다. 이사 비용이 비싸서 소파, 식탁을 팔아 살림을 줄였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우리가 살게 된 사택은 30년 된 작은 주택이었다. 집 앞에는 야생 그대로의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봄이 되면 텃밭을 일구고 여름에는 물놀이장을 만들어서 아이와 실컷 놀아야지.' 도시에 살 때 할 수 없었던 일을 아이와 신 나게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어린아이가 없어 조용하던 마을에서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았다. 동네 어른들이 밭에서 딴 호박이며 시금치, 콜라비 등을 아낌없이 나눠줬고 빈약했던 냉장고가 금세 가득 찼다. 제주 사람은 돈 내고 귤을 사서 먹지 않는다더니, 정말로 동네 사람들이 주는 귤이 떨어질 새가 없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지방에서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주소가 낯설었다. 그러나 주소 스티커를 주민등록증에 붙이고 나니 금세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제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를 가면 도민 할인을 받아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할인도 할인이지만 제주 '도민(島民)'이라니, 여행 왔을 때 제주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과거가 떠올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

그런데 곧 겨울이 왔다. 제주도를 따뜻한 남쪽 섬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중산간의 겨울은 매섭고 오래간다고 일러주었다. '가을의 맑은 날이 언제였느냐?' 싶게 매일 흐리거나 비가 왔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하려면 따귀를 때리듯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돌리다가 옷이 다 젖어 버리기 일쑤였다. 습도는 높아서 제습기를 돌리며 빨래를 말려도 항상 눅눅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써왔던 천 기저귀도 포기해야 했다. 겨울, 제주의 공기는 습하고 무겁고 차가웠다. 그 때문인지 기분이 무겁게 내려앉는 날이 많았다. 겨우내 두 돌짜리 아이와 집 안에서만 지내는 게 어찌나 지루하고 힘들던지. 왜 제주가 권력에서 멀어진 선비들의 귀양지였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만 다녔을 때는 몰랐던 불편함이 정착하고 살아보니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선 물가가 무척 비쌌다.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면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고 게다가 배송료도 따로 내야 한다. 집 앞에 다니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뿐이라 자가용을 이용하는데, 기름값이 많이 든다. 읍내와 시내가 멀어서 아직도 초보 주부인 나는 미리 계획을 세워 일주일치 장을 보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시에서 봐왔던 모기, 파리와 같은 곤충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다양한 벌레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다가 다리가 가려워서 이불을 들쳐보니 손가락만 한 지네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지를 않나, 방 안 벽에 개미 수백 마리가 일렬로 행진하고 있지를 않나. 한번은 밖에서 아이를 업어 재우다 텃밭 사이로 유유히 사라지는 뱀 한 마리를 보고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마냥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생활의 불편함 속에서도 가족의 의식주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챙겨야 했다. 도시에서 편하게 이용하던 배달 음식이나 배달 반찬을 이용할 수 없으니 삼시 세끼를 차려서 먹여야 하고, 잘 마르지 않는 빨래도 어떻게든 말려서 아이에게 입혀야 했다. 어디선가 벌레가 나타나면 아이에게 가지 못하게 맨손으로 덥석 잡아냈다. 아무리 좋은 풍경도 아이가 보채고 짜증을 내면 그림의 떡일 뿐이고, 아이가 밤중에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이 멀어서 갈 수 없으므로 스스로 이겨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제주 오름에서 한껏 바람을 맞고 있는 아이. ⓒ전지영

그래도 아이는 자란다


그런데 엄마와 단 둘이 조용한 곳에 있어서인지 아이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정감을 느끼고 건강하게 크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는 지루한 시골살이가 아이에게는 온통 신기하고 신 나는 일이었나 보다. 아이는 동네를 떠도는 새끼 길고양이와도 금세 친구가 되어서는 저 어린 고양이가 엄마가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벌레가 무서운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다양한 곤충을 유심히 관찰하며 하루를 보낸다. 여름에는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따먹으며 손과 옷이 붉게 얼룩져도 마냥 즐거운 미소를 짓는다. 동네 낡은 놀이터에서 흙으로 엄마에게 요리를 해주기도 하고,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서투르게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자갈길에서 넘어지면 일으켜 달라고 울던 아이가 어느샌가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선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에서 배울 점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의 변화처럼 아이에게도 때가 있음을 알고 기다려 주는 일, 같아 보이는 꽃들도 저마다 모두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듯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다름을 인정해 주는 일, 제초제나 비료 없이도 잘 자라는 텃밭 채소들처럼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어제는 푸르던 밀밭이 오늘 노래지듯 아이에게 나타난 작은 변화에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일…. 결국 육아는 마음을 비우고 저절로 크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다.

사실 아이 키우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거나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한 날에는 내면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을 올라와 아이에게 투사하고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엉덩이를 몇 대 때렸다가 곧 후회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가 된 후 나는, 아이에게 내 못난 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나의 성장 과정과 내면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게 되었다. 남을 위해 사는 삶에 익숙지 않았던 나에게, 아이가 보여주는 성장의 과정들이 보람과 환희로 다가와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극이 되었다. 모난 모습을 깎아서 둥글게 만드는 일, 아이의 잘못이나 실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등 육아는 엄마인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이다.

또 하나, 아이는 엄마가 불안한지 편한지를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 그 감정에 쉽게 동요된다. 그래서 육아의 첫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에는 제주만큼 좋은 곳이 없다. 겸손과 지혜와 사랑을 가르쳐주는 자연이 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나는 밤중에 화장실에서 만나게 된 지네에게도 '네가 더 놀랐겠다'라고 마음으로 말해주는 여유가 생겼고, 먹을거리를 찾으러 숲에서 나왔다가 사람을 보고 놀라서 괴성을 지르는 고라니에게 '안심하라'는 손짓을 해줄 수도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을 보며 내 존재가 우주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사실에 겸손해지고, 길 안내를 해주는 연둣빛 반딧불이를 따라가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 같은 신비감에 빠지기도 한다. 한없이 조용한 가운데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내가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보려는 노력도 하게 되었다.

누워서 보니 배가 봉긋한 오름 같다. 제주에 오기 전만 해도 '둘째는 절대 없다'던 내가 8개월 차 임신부가 되어 있을 줄이야. '생명의 땅' 제주가 준 선물인가 보다. 그리고 남편의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 남편의 직장에 따라 제주에서의 삶이 더 연장될지 아닐지가 결정될 것이다. 어찌 됐든 연말이면 우리 가족은 새 가족의 탄생과 함께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겠지.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 대로 일어나는 변화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둘째를 제주에서 낳아 기르고 싶은 로망도 있지만, 그리 강렬하진 않다. 한 번쯤 꼭 해보고 싶던 마음속 로망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가장 원했던 것을 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살게 될 곳이 제주가 됐든 아니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어디서든 육아는 어렵고 힘들지만 순간순간의 깨달음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조식은 동무릎에 앚일 때뿐이다(자식은 무릎에 앉을 때뿐이다)'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아이가 언제 다 커서 나를 좀 놔주나 싶을 때, 그래도 지금이 좋을 때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나도 매일매일 커가고 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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