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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단 한 방울이라도…"

[귀농통문] 물 문제의 만능 해결사, 빗물

요즘 들어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작 시골에 살려면 중요한 문제가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다. 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고 건강과도 직결되고 농사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수도는 보급이 안 된 지역이 많고, 설치하자면 돈이 많이 든다. 유일한 대안인 지하수는 언제 바닥이 날지 모르고 수질도 불안할 수 있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업용수가 필요하다. 근처에 저수지나 실개천이 없으면 가뭄 때 하늘만 쳐다보기 일쑤다. 그런데 이 모든 물 문제의 해결책에 빗물이 빠져 있다. 빗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대부분의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물

여왕이 물어봅니다.
"거울아, 거울아, 요술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물은?"
여왕은 여러 가지 답을 예상합니다. 지하수, 프랑스제 병물, 빙하수, 해저심층수 등 비싼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의 답은 뜻밖입니다.
"여왕님,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물은 바로 누구에게나 공짜로 떨어지는 빗물입니다."

ⓒpixabay.com

물의 수질을 평가하는 데 마일리지 개념을 도입하면 알기 쉽다. 예를 들어 설악산에 떨어진 물이 계곡을 타고 내려와서 소양강댐과 팔당댐을 거쳐 인천 앞바다로 나가는데, 지나간 거리(마일리지)가 길수록 오염물질의 양이 많아진다. 그 수치는 주전자에 물 1리터(ℓ)를 받아서 끓여보면 안다. 증발하고 남은 물질의 무게를 재면 되는데, 바닷물은 1ℓ를 증발시키면 35그램(g)이 남는다. 설악산 계곡물은 20밀리그램(mg), 빗물은 그보다 더 작아서 5mg이다. 도시에서도 마일리지가 짧은 물을 찾을 수 있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은 마일리지가 제로이다. 그러니까 공장폐수, 생활하수, 심지어는 녹조가 묻어본 적이 없는 가장 깨끗한 물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중금속의 양은 음용수(마시는 물)에서 허용되는 기준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잘만 모으면 처리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생활용수로 쓸 수 있고, 약간만 처리하면 최상의 음용수로 만들 수 있다. 동화 속의 여왕도 만족할 만한….

물을 공급하는 비용은 어떤가? 강물을 사서 정화해서 운반하는 데 돈이 든다. 지하수를 퍼내서 처리하는데 돈이 든다. 해수를 증발시켜 끌고 오는 데는 더욱더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자기 지붕이나 정원에 떨어진 빗물은 구입, 처리, 운반에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주 조금만 처리하면 가장 훌륭한 음용수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빗물을 써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다.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어서 갈등이 없다. 빗물은 전 세계 사람들의 물 관리 아젠다에 빠져 있다. 돈 많이 벌고 권력을 움켜쥐고 싶은 사람들에게 빗물은 불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빗물이다.

빗물을 모으는 '빗물 저금통'

예를 들어 30평짜리 집이 있다고 하자. 지붕의 면적이 100제곱미터(㎡)이고, 우리나라의 연 평균 강수량은 1300밀리미터(㎖), 그중 1000㎖만 받는다고 하면, 이 지붕에 떨어지는 하늘의 선물은 1년에 100톤(t)이다. 가장 깨끗한 생명수인데 공짜로 배달된다. 이론적으로는 날마다 300ℓ씩 쓸 수 있는 양이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그냥 하수도나 하천으로 버렸다. 하류의 홍수를 일으키면서….

돈을 저금하듯이, 빗물도 '빗물 저금통'에 모을 수 있다.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콘크리트나 벽돌, 플라스틱, FRP(섬유강화플라스틱) 같은 다양한 재질과 크기로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디자인과 예술 감각을 도입해서 집집이 특색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 빗물 저금통에 모은 물은 약간만 처리하면, 최상의 식수가 된다. 생활용수는 지하수를 쓰면, 건기를 포함한 1년 내내 식수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물론 공학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 빗물 저금통. ⓒ한무영

"빗물을 마셔도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에게 반문해본다. "강물은 마셔도 되나요? 당연히 못 마시지요. 처리해야지요. 그러면 질문을 다르게 해봅시다. 마실 수 있게 처리하는 비용과 에너지는 빗물과 강물 중 어느 것이 더 싸게 먹히나요?" 그러면, 당연히 답은 마일리지가 짧고 오염물질이 적게 들어 있는 빗물이다. 지붕에서 받은 빗물은 아주 조금만 처리를 하면 가장 훌륭한 마시는 물이 된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50회 이상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다. 지하수를 병에 담아 비싸게 파는 물, 빗물, 수돗물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맛을 보고 고르라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60% 이상이 가장 맛있는 물로 빗물을 선택한다.

특히 호주의 경우가 특이하다. 땅이 넓어서 집이 듬성듬성 있기 때문에 수도관을 깔기가 어려워서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유일한 식수원이 빗물이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빗물 탱크에 보관하고 그 물을 그대로 먹는다. 필터를 거친 빗물과 거치지 않은 빗물을 마신 사람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논문을 보아도 전혀 차이가 없다.

지하수가 비소로 오염된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유치원에 12t 규모의 빗물시설을 설치해주고 1년 동안 모니터링을 해보았다. 학생 300명이 물 때문에 배탈이 난 적은 없다. 병에 담긴 물을 사 먹는 비용을 절약해주니, 학부모들이 매우 고마워한다. 3년만 모으면 똑같은 시설을 스스로 만들어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귀농해서 마련하게 되는 땅이나 집들은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거나 불충분한 간이 상수도 시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물들의 마일리지를 생각해보자. 수원(水原) 관리를 하면서 녹조 같은 여러 가지 오염물질이 들어갈 수 있고, 정수 처리를 하면서 약품도 들어가고, 관로를 통해 오면서 또는 보관 중에 여러 가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빗물 시설을 잘만 만들고 관리한다면, 그런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물을 식수로 쓸 수 있다. 대한민국의 귀농하신 분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식수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붕이 있고 비만 온다면 먹는 물만큼은 전혀 걱정 없게 만들 수 있다고…. 다만 공학적으로 잘 만들고 유지·관리해야 한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빗물의 양은 면적에 비례하므로 땅에 떨어지는 빗물의 양은 더 많다. 만약 1000평의 땅이라면 1년 동안 떨어지는 빗물의 양은 4000t 정도가 된다. 지금은 빗물을 빨리 내다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설계를 해왔다. 그러고는 가뭄 때 물이 없다느니 지하수가 부족하다느니 불평한다. 과자를 달라고 졸라서 과자를 주었더니, 다 내다버리고 과자가 없다고 불평하는 어린애와 다름이 없다.

그 빗물을 땅속에 저축하면 된다. 땅을 군데군데 오목하게 만들어주면 떨어진 빗물은 땅에 고여 덜 내려가며 하류에 홍수를 줄여준다. 고인 물은 땅속으로 들어가서 지하수가 된다. 커다란 시설 한 개보다 작은 시설 여러 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아니면 적당한 곳에 연못을 만들어 땅속에 물이 들어가도록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특성상 산지의 계곡에 빗물을 모으는 작은 시설들을 많이 해주면 빗물이 거기에 고여 땅속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생태계가 조성이 된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토끼 같은 짐승도 오고 생태계가 되살아난다. 옹달샘 한 개 한 개는 작을지 모르나 여러 개가 모이면 커다란 물이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될 수 있으면 위에서부터 작은 시설들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 땅에 떨어진, 하늘이 주신 선물인 빗물을 모두 다 소중히 쓰고 나서도 모자라면 그 모자란 만큼만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빗물은 다 버리고, 멀리 있는 물을 가져오거나 지하수를 퍼 쓰는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의존적인 방법만을 생각해왔다. 빗물을 최우선으로 쓰면 식수는 물론 홍수도 방지하고, 농사에도 이용하면서 생태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스리랑카의 파라크라마바후 대왕(1153~1186)이 빗물 관리에 대해 남긴 다음과 같은 교훈을 되새겨볼 만하다. "단 한 방울의 빗물이라도 사람을 위해 쓰지 않고 바다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은 1442년 측우기를 전국의 감영에 보내어, 각 지역에서 스스로 빗물의 양을 측정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비가 적게 오면 조세를 감면해주는 근거로 삼았다. 귀농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빗물을 관리하도록 마을마다 측우기를 한 개 만들어, 자기 동네의 강수량을 측정해서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그것이 앞으로 올 기후변화에 스스로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5년 12월 현재 75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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