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에게는 단순하고 리듬감 있는 책
어린이집에서 만난 시후(3살, 남)는 책을 볼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예요. <숟가락>(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지음, 스콧 매군 그림, 이승숙 옮김, 지경사 펴냄)이라는 책을 처음 읽어 줬는데, 그다음 주에 저를 보자마자 "숟가락! 숟가락!"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래서 그 책을 또 읽어 주는데, 그릇 속에 색색의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는 그림이 나오자 시후가 초콜릿 아이스크림 부분을 손으로 떠먹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자 함께 책을 보던 아이들이 모두 "내 거야!"라고 하면서 책에 달려들었어요. 나는 재빨리 책 속 아이스크림을 떠서 아이들 입에 차례대로 넣어 줬지요.

<파랑이와 노랑이>(레오 리오니 글·그림, 이혜경 옮김, 물구나무 펴냄)를 읽을 때 하윤이(3살, 여)는 밤색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윤이" 하고 말합니다. 다음 장에서도 계속 같은 색을 가리키며 "하윤이" 합니다. 하윤이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색 동그라미를 가리키며, "하윤이" 하고 말했어요. 하윤이가 그러니 다른 아이들도 모두 자기 이름을 대며 따라 합니다.
'영아들의 책 읽기'는 엄마와 아기가 책으로 놀이를 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시후와 하윤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은 책 속 세상을 실제 세계와 구별하지 않습니다. 책에 보이는 사물에 바로 말을 걸기도 하지요. 이 시기에는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보다 단순한 상황을 되풀이한 내용의 책이 좋습니다. 또 리듬감이 있고, 듣기 좋고 따라 하기 좋은 말로 쓰인 책이 좋습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또 보고 싶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지요. 아기는 책의 규칙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게 좋아서 보고 또 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책
<달님 안녕>(하야시 아키코 지음·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두드려 보아요>(안나 클라라 티돌름 지음·그림, 사계절 펴냄)
<잘 자요, 달님>(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지음, 클레먼트 허드 그림, 이연선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잘잘잘 123>(이억배 지음·그림, 사계절 펴냄)
유아에게는 명쾌하고 활동적인 책
소연이(6살, 여)와 <곰 세 마리>(폴 갤돈 글·그림, 허은실 옮김, 보림 펴냄)를 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이 책을 처음 본 날 소연이는 "우지끈! 왜 아기 곰 것만 다 망가뜨리고 다 먹어 버렸지?" 하면서 아쉬워했어요. 책을 다음에 또 보았을 때 소연이는 금발머리가 막내 곰의 의자를 망가뜨리는 장면이 나오자 얼른 자기 손으로 망가진 의자가 안 보이도록 가리면서 "이러면 괜찮을 거야" 하고 말하더니, 책 속 금발머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소연이가 보여 준 말과 행동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살 많은 언니에게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연이는 막내 곰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막내 곰의 의자를 망가뜨리는 금발머리에게 화가 난 것이지요. 단순한 상황과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이 책을 보며 소연이는 등장인물을 더욱 눈여겨보고, 마치 자기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느낀 겁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공상 세계를 현실적으로 여겨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를 즐기고, 자기만의 공상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소연이처럼 등장인물을 지켜보고, 그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며 어떻게 되어 가는지에 열중하지요.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기를 인식해 나가는 시기이므로 등장인물의 행동이 뚜렷하고 명쾌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또 아주 활동적인 시기여서 모험이나 여럿이 함께하는 놀이가 나오는 책도 좋아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책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존 버닝햄 지음·그림, 이주령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내 토끼 어딨어?>(모 윌렘스 지음·그림, 정회성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
<용감무쌍 염소 삼 형제>(아스비에른센·모에 지음, 마샤 브라운 그림, 김기택 옮김, 비룡소 펴냄)
<해님달님>(송재찬 지음, 이종미 그림, 국민서관 펴냄)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인물이 잘 살아 있는 책
현욱이(9살, 남)가 <수호의 하얀 말>(오츠카 유우조 지음·그림,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을 보고 나서 그린 그림을 보면 아이가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욱이는 하얀 말이 화살에 맞아 빨리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말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어요. 하얀 말은 날개 덕분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수호의 친구가 되었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체험하면서 자기를 인식하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이 많으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현실과 공상을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쓰는 말을 깊이 살펴보면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처럼 하거나 어른이 보기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을 자유롭게 만들며 좋아하지요.
이야기의 세계가 확장되고 서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원하며, 그림책뿐만 아니라 삽화가 들어간 글 책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주인공의 역할과 행동에 깊이 빠지면서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지요. 주인공한테 마음이 끌리면 어린이는 주인공이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런 주인공들은 책을 덮어도 떠나지 않고 친구처럼 아이 곁에 있어 주지요.
● 함께 보면 좋은 책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아놀드 로벨 지음·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꼬마 모모>(마쓰타니 미요코 지음, 기쿠치 사다오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잘한다 오광명>(송언 지음, 윤정주 그림, 문학동네 어린이 펴냄)
<호랭이 꼬랭이 말놀이>(오호선 지음, 남주현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는 현실과 상상 세계를 넘나드는 책

민혁이와 동무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주인공이 겪은 이야기를 보며 깊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 시기 아이들은 또래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주변에 대한 관심도 커집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므로 잘 쓴 인물 이야기도 권합니다.
유빈이(10살, 여)가 <빗방울 목걸이>(조안 에이킨 지음·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우리교육 펴냄)의 <하늘이 들어간 파이>를 읽고 나서 한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이 책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물들이 하늘이 들어간 파이에 올라타서 둥둥 떠다니다가 파이가 식자 바다 위로 내려앉아 파이 섬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예요.
유빈 : 잘됐네요. 사과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요, 파이를 조금씩 조금씩 뜯어서 먹을 수 있잖아요. 윗부분만요. 왜냐면 아랫부분은 물에 닿아서 엄청나게 맛없을 거예요.
나 : 파이를 뜯어 먹으면 아까 유빈이가 말했던 것처럼 구름빵이 돼 갖구 여기 탔던 사람들이랑 동물들이 모두 둥둥 떠다니면 어떡해?"
유빈 : 그러면 좋죠.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맛있는 것도 그때그때 먹고 싶을 때마다 날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잖아요…. 근데 파이는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데, 따뜻한데 오래 있으면 파이 섬이 썩을 수도 있어요. 그럼 파리가 꼬이겠죠. 그러면 그 섬을 버리고 아까 찾았던 다른 섬들로 헤엄쳐서 가면 돼요. 음, 아니면 저는요, 처음부터 구명조끼나 그런 걸 미리 챙길 거예요."
나 : 아하, 유빈이는 안전소녀네.
안전소녀라는 제 말에 유빈이는 활짝 웃으면서 자기는 원래 안전을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고학년 무렵의 어린이들은 현실이 배경인 이야기를 보고 자기가 실제로 경험하듯이 느끼며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유빈이처럼 훨씬 더 크고 넓은 상상의 세계를 여전히 좋아하기도 합니다. 유빈이가 하는 말을 보면 이야기를 즐기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충분히 확장시키고 안전하게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책
<다람쥐와 마법의 반지>(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모래알 고금>(마해송 지음, 우리교육 펴냄,)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보림 펴냄)
<이중섭 - 그림으로 삶을 완성한 화가>(박영택 지음, 다섯수레 펴냄)

지금까지 아이의 발달 단계별로 책 고르는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편의상 일반적인 발달 단계로 구분하여 소개하였지만 책 고르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권장도서목록 역시 참고용일 뿐입니다. 좋은 책은 아이 스스로 읽어 보고 어른들이 열심히 읽어 주면서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은 책들로 자기만의 도서목록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더불어 지난 9월 25일 자 '책 읽기는 즐겁다'에서 말했듯이 말놀이나 동시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말로 주고받는 것은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관련 기사 : 책 읽기는 즐겁다)
* 어린이도서연구회 www.childbook.org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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