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남창의군’ 소속 항일투사 42인 행적 최초 공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남창의군’ 소속 항일투사 42인 행적 최초 공개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발굴

구한말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펼쳤던 경남 산청·함양·하동·진주 출신의 항일투사에 관한 문건이 추가로 발굴돼 주목받고 있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지난 10일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때의 문건인 '폭도에 관한 편책' 등에서 경남창의군 소속으로 활약한 항일투사 42인의 활동사항과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광복절을 맞아 최초 공개했다.

▲ 정재상 경남독립연구소 소장. ⓒ경남독립연구소

문건에는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호남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산청 출신 권재윤(權載胤·시천면), 이성진(李聖辰·시천면), 함양 이선전(李宣傳·마천면), 하동 출신 이태현(李泰鉉·악양면), 진주 출신 주금석(朱金石·대평면) 등 42인의 인적사항이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출신지별로 주소·직업·성명·나이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지역별로 보면 함양군 마천·백전면, 산청군 삼장면 주민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태현·이선전·권재윤·이성진·주금석 선열은 1907년부터 산청 출신 박동의 경남창의군 속의 의병장으로, 지리산 일대인 산청·함양·하동·진주·거창·합천·남원·구례 등지에서 권석도(함양 백전면), 이덕길(산청·건국훈장,2014년), 이학로(경북 영천), 박매지(하동), 이사언(합천), 서병희(양산) 등과 함께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인 사실이 적시돼 있다.

하지만 1908년 이태현·이선전·권재윤은 하동·함양·산청에서 각각 일본군에 체포되고, 주금석은 1909년 진주에서 붙잡혔다. 이성진은 1909년 이후까지도 지리산 일대에서 결사 항전했다.

또 이들과 함께 활약한 함양군 마천면 문성주(45)·박춘원(55) 등 36인은 당시 마천면장이었던 노지현과 창촌마을 이장 김찬언(건국훈장, 2014년)·휴천면 목동 이안옥(건국훈장, 2014년)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1908년 6월 11일 박동의 의병장과 함께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있던 일본군 입석수비대를 공격해 일제에 큰 타격을 가하는 등, 일제치하에 있던 산청·하동경찰서와 하동군청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문건은 1908년 10월 17일 박동의 경남창의대장이 산청군 시천면 동당에서 전사하자 이들 의병들은 자진 해산했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이번 자료는 함양·산청·하동·진주 지역민이 항일투쟁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라면서 "당시 마천면장으로 있으면서 의병활동을 적극 도운 노지현 선열과 결사항전하다 체포돼 모진 고초를 겪은 이태현·이선전·권재윤·주금석 그리고 1909년까지 결사 항전한 이성진에 대해서는 명백한 자료가 발굴된 만큼 해당 지역민과 함께 정부서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