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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특1급' 세종호텔에선 무슨 일이?

[기고] '그가 돌아오기 전'의 세종호텔을 되찾고 싶습니다

저는 명동 한 복판에 있는 특1급 호텔, 세종호텔에 다니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줄곧 애들 키우고 살림만 하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우연히 소개로 호텔 객실 정비 업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제가 일을 시작한 호텔은 용역업체 직원들과 직영의 정규직들이 같이 일을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용역업체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정규직들은 명절이면 직원식당 앞에 여러 가지의 선물들을 진열해 놓고 골라서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 정규직 직원들을 보면서 떡값은커녕 선물 세트 하나 없는 용역 업체의 처우에 참 많이 서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세종호텔로 이직해서 1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세종호텔에는 세종호텔노조(이하 세종노조)가 요구해서 따낸 성과로 1년만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단협 조항이 있었습니다.

우선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이 됐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도 호텔 직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나도 제대로 대접받는 직원이구나" 하는 느낌에 참 기뻤습니다. 일은 힘들었지만 직원들끼리 참 재미나게 지냈습니다. 봄, 가을은 야유회도 가서 다른 부서 직원들과도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면서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1년의 마지막 날은 전 직원들이 영업장에 마련된 다과를 즐기면서 장기자랑도 하고, 부서장이 마련해 주는 회식도 하면서 끈끈한 정을 나누는 일할 맛 나는 그런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2009년 주명건이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세종호텔의 주명건 회장은 세종대학교의 재단 이사장이었는데 사학 비리로 유명한 자입니다. 113억 원에 달하는 사학 비리가 밝혀져서 2005년에 이사장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를 등에 업고 상지대 등에서 비리 사학 인사들이 복귀할 때, 주명건 회장도 2009년에 세종대학교의 재단 이사이자, 재단의 수익사업체인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했습니다.

2011년에 회사는 친 사측 노조를 만들고 회유와 억압과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서 세종노조 조합원들을 빼냈습니다. 그 노조를 대표교섭 노조로 세워 놓고 회사 입맛대로 직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친 사측 노조는 그전에 세종호텔노조가 따낸 성과들을 뒤로 돌렸습니다. 계약직이 1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조항도 사라졌습니다. 계장급 이상에게는 임금을 30퍼센트까지 삭감할 수 있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습니다.

이를 이용해 사측은 경영 적자라는 이유를 들어서 많은 직원들의 등을 떠밀어 퇴사를 종용했습니다. 그래서 5년 전에는 정규직이 300명가량 있었지만 이제는 13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만들어서 못 견디면 회사를 떠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회식이나 모임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게 됐습니다.

황당한 전보

이에 맞서 싸운 민주노조인 세종노조의 조합원들에게는 강제전보가 이어졌습니다. 김상진 전 위원장은 임기가 끝나기 무섭게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하지 않은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현 고진수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주방에서 수십 년을 일한 직원들도 조리 지원이라는 파트를 신설해서 말 그대로 보조적인 일만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는 사무직이었던 교환 업무를 하던 여성 직원을 객실 청소로 발령 내고, 객실 청소를 잘 하고 있던 직원을 퍼블릭이라는 신설 부서를 만들어 로비 청소를 하게 하는 짓들을 했습니다. 나도 객실 청소를 했지만 로비 청소로 발령이 났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세종 노조원들에게만 적용한 전형적인 노조 탄압입니다.

이 외에도 탄압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노조 간부를 하며 매일 호텔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비번인 날도 회사에 나와서 선전전을 합니다. 하루는 비번 날 오전 선전전을 끝내고 노조 조끼를 입고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했더니 한 번 더 조끼를 입고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시말서를 받겠다고 합니다.

또 김상진 전 위원장을 올해 4월에 부당해고를 시키고도 모자라 아예 직원 식당에서 밥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걸로 이러다니...

잔디 값

세종노조는 직원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회사의 탄압에 맞서 같이 싸우자고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직원 식당 앞에서 점심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 조합원들이 맡아서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측은 푯말을 놓고 서 있는 자리에 잔디가 다 죽었다는 억지를 부리며 잔디 값을 청구하겠다는 공문을 굳이 집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잔디 한판에 2000원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보니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심은 잔디가 갈아엎어져 있던데, 아마도 사측이 그러라고 지시한 것 같습니다. 정당한 노조 활동도 잔디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잔디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참 어이가 없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업무지시라면서 머리에 모자를 착용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김치 공장이나 만두 공장에서 식품을 다루는 노동자들이 착용하는 모자였습니다. 세계 어느 호텔에도 로비에서 일하고 객실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그런 모자를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모자는 직원들에게 모멸감과 수치심만 줬습니다.

게다가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는 강도 높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봄이 되고 날씨가 더워지니 모자를 쓴 머리 밑이 가렵고, 염증도 생기고, 땀은 말할 수 없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세종노조 조합원들은 업무의 효율과 직원의 건강을 생각해서 다른 방도를 취해 달라고 건의를 하고, 모자 착용을 거부하는 투쟁을 50일 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업무지시 불이행이라는 명목으로 13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징계위원회를 열어 근신 1개월부터 감봉 한 달이라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사측은 직원의 건강도, 회사의 이미지도, 업무의 효율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직원들 길들이기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도 직원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찌들어 가도 돈의 노예가 돼 적자 타령과 구조조정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세종호텔의 주명건 회장은 세종대학교의 재단 이사장이었는데 사학 비리로 유명한 자입니다. 사학 비리의 대명사 주명건이 이제 세종호텔을 노동 탄압의 백화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세종호텔에서는 지금 '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적게, 비정규직은 더 많게' 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 가장 앞장서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모자 벗기 투쟁을 할 때 사측은 우리를 탄압했지만 결국 우리가 요구한 것처럼 모자를 벗게 하고 스카프로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결국 우리의 요구를 이뤄 나갈 것입니다.

내 직장이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 내 자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회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지만 어렵고 힘든 희망을 안고 오늘도 싸우고 또 싸웁니다. 내일을 위해.

▲https://goo.gl/forms/dv7LVJ1N9M6TmfZu1 에서 연서명에 동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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