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중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
중국인들이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는 거의 사실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는 오래 전부터 세계 각지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흔히 '화교'라고 부르는 해외 거주 중국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국적에 따라 '화교'와 '화인'으로 구분된다. '화교'는 해외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중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중국 교민에 대한 총칭이다. '화인'은 해외 거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중국계를 의미한다. 화교 화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지역으로 이주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아시아 지역에 정착한 화교 화인이 전체 화교 화인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북미와 남미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화인은 전체 화교 화인의 약 18% 수준이다. 이러한 화교 화인 네트워크는 중국 개혁 개방 초기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외국인 투자의 상당 비율 역시 화교 화인, 홍콩, 대만 등의 '화교권'의 지원에 기인했다.
화인과 싱가포르
적도 위에 놓인 '빨간 점(red dot)'이라 불리기도 하는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남단에 위치한 서울 면적의 도시국가이다. 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약 80%에 육박하는 싱가포르는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싱가포르의 통계국(Department of Statistics) 발표에 의하면, 2014년에 집계된 싱가포르 인구는 546만 명으로, 이중 387만 명이 싱가포르 거주자이다.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인구 가운데 약 71%인 334만 명은 싱가포르 시민이고, 나머지는 영주권(Permanent Residency)을 소지하고 있는 인구로 약 53만 명이다.
이와 같이 다소 '특이한' 인구 구성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는 민족 구성 역시 다양하다. 2014년의 경우 중국계 인구는 전체 거주 인구의 74.2%로 싱가포르의 다수(majority)이며, 말레이계 인구는 13.3%, 인도계는 9.2%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백인(Caucasian), 백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인 유라시안(Eurasian),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를 제외한 기타 아시아계 인구로 전체 싱가포르 거주자의 약 3.3%를 구성한다.
싱가포르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비(非)싱가포르 출신의 중국계 인구까지 어림잡아 추산하면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계'는 거의 80%에 육박할 정도다. 이들의 이민 역사는 일찍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푸젠 성, 광둥 성, 하이난 성 등지에 거주하던 대량의 중국인들이 동남아를 포함한 싱가포르로 이주해 왔다. 지금까지도 선조들이 사용하던 중국어 방언을 구사하는 인구가 상당수에 이르며, 가족 및 친지들끼리 중국어 방언을 구사하는 젊은이들도 꽤 많은 편이다.

중국에게 '싱가포르 모델'이란?
동남아 국가들 중에 경제 발전 수준이 가장 높고 전체 인구 대비 중국계 비율이 가장 높은 싱가포르는, 중국에게 있어 경제 발전의 '모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 개방 드라이브를 시작한 이래, 중국의 지도자들은 리콴유가 이끄는 중국 인구의 0.4% 밖에 안 되는 도시 국가이자 상하이 푸동 지구의 2분의 1 크기인 싱가포르를 중국의 '모델'로 삼았다.
'싱가포르 모델'은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암묵적인 지지 혹은 확신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당이 하나'인 정치 시스템이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지도부에게도 싱가포르의 '권위주의적인 국가 자본주의(authoritarian state-capitalism)'의 유효성은 상당히 의미 있는 모델이었다.
리콴유는 재임 기간인 1976년 이후 33번이나 중국을 방문했고, 덩샤오핑과 마오쩌둥 등을 접견하는 등 중국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지도자들 또한 리콴유가 중국-대만 관계에 있어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2년 중국과 대만 간의 회담을 주선하여 양안 교류 협력의 중요한 토대인 '92 컨센서스'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향후 20여년 동안 중국과 대만이 상호교류를 유지해오는 데 이바지했다. 샤먼(厦門) 대학교의 동남아 전문가인 좡궈투(庄國土)는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를 배워라'라는 슬로건 아래 싱가포르의 거버넌스, 주택, 헬스 케어, 복지 등의 성공적인 사회 경제적 정책을 학습해 왔고, "잘 경영되고 있는 민주주의" 혹은 "선의의 독재 제도"라는 시스템을 배워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가포르는 중국에게 매우 다양한 의미를 제공한다. 중국이 '싱가포르'라는 작은 도시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제 부흥의 꿈을 그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개혁 개방의 수혜자인 광둥 성 선전 시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필연 같은 구조물이 있다. 선전만 스포츠센터(深圳湾体育中心)인데,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와 모양이 흡사하다. 에스플러네이드는 복합 공연장으로 열대과일인 '두리안'의 모양을 본떠 디자인한 건물이다. 비공식적인 '싱가포르 모델'이 광둥 선전시에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
거대한 중국과 보조를 맞추려는 싱가포르의 고민
싱가포르 대통령 토니 탄(Tony Tan)은 싱가포르와 중국의 관계가 매우 가깝고 특별하다고 극찬했다. 두 나라 간의 새로운 협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지금 우리는 쌍방향의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고, 중국도 우리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중국은 싱가포르를 따라잡고 있으며, 그들의 인재와 자원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중국이 싱가포르를 넘어설 것이라 예상한다."
이와 같이 토니 탄은 중국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예견했으며, 싱가포르와 중국의 협력에 관한 생각의 지평을 연장해왔다. 이는 다음 단락의 그의 담화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는 싱가포르가 중국에게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싱가포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면 우리는 중국에게 무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서양의 지역적인 프로젝트'와 같은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준비하는 것은 이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계속해서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구상'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보조를 맞춰 싱가포르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중국을 연결하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신이민'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싱가포르에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발생되는 사회 문제와 이들에 대한 각종 편견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계 인구를 보유하면서도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싱가포르와 중국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
한때는 중국 경제 부흥의 '투자자'이자 '모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싱가포르지만,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 및 기술 추격과 '새로운' 중국인 유입으로 인해 '작은 용'으로서 '거대한 호랑이'를 맞이해야만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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