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을 위하여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김제현 |2013년 고산문학대상 시조부문 후보작으로 추천된 작품은 여섯 분의 시조집 6권. 대체로 현실에 대한 인식상황과 다양한 문제의식을 사회적 가치와 결속시켜 담아낸 현대성 짙은 작품과 인간의 보편적 사랑을 통해 구원을 희구하고, 그리움의 성정을 감성적으로 노래한 서정성 짙은 작품들 그리고 절간과 세간의 성속을 들며 나며 나를 찾아 아득한 성자의 길을 가고 있는 수행의 시편 등 실로 현대시조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끝까지 선자들의 관심을 끈 작품집은 시조 자체의 깊이와 넓이에서 우러나오는 단순, 간결하고 명징, 청량한 선미를 전해주는 조오현 시인의『적멸을 위하여』였고, 선자들은 이를 수상작으로 미는데 쉽게 합의를 보았다.
조오현 시인의 문학은 시조로부터 출발하여 선시조로 완성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일련의 시조「비슬산 가는 길」,「내가 나를 바라보니」,「아득한 성자」,「적멸을 위하여」등은 그대로 조오현 시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같은 연장선상에 올려놓고 볼 때, “비슬산 굽잇길을/스님 돌아가는 걸까” “기는 벌레 한 마리… 알을 슬기도 한다”, “천년을 산다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먹이로 가야겠다”와 같은 의미망이 형성되며 외롭고 아득한 성자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이 시인의 이미지로 떠오르기도 한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어차피 한 마리 벌레가 아니더냐”라는 깨달음을, 종장에서는 “새의 먹이로 가겠다”라는 보시와 자비(심)의 실천행을 통한 미래존재양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선정에 들어 선의 세계를 형상화한 선시조로서의 결 곧은 오도의 무늬를 보여주면서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해주고 있다.
독자들을 위하여 일상적인 언어의 구어체 문장과 반어적, 역설적 수사법으로 회화적이고 역동적으로 사상을 전개하는 문학적 배려가 깔렸지만 선시의 본성상 막막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성을 미화한 일반적 선시와는 달리 성속을 넘나들며 공성을 내면화하고 육화시켜 선적세계에 접하게 하는데 조오현 선시조의 특색(독자성)이 있다 할 것이며, 선시의 전통이 취약한 한국시단에 새로운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확충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 또한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열린시학』 2013 가을호 고산문학대상 시조부문 심사평 <김제현 시조시인, 경기대 명예교수>. ⓒ권성훈
조오현 스님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만해대상’과 ‘만해축전’을 만들었다.
1966년 등단한 이후 시조에 불교의 선적 깨달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시조문학상과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조계종 포교대상, DMZ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원로회의 의원을 맡고 있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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