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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모두를 위한 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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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모두를 위한 울림이 되다.

[페미니스트 정치포럼] ⑦ '촛불', 그 다음은?

광장의 원칙, 민주주의

박근혜 퇴진 촛불이 켜졌던 겨울을 지나며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만 분노한게 아니라 그 뒤에 깊고 넓게 패여있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이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광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귀를 기울였지요. 열린 광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집회문화 함께 만듭시다

1. 여성을 비하하지 맙시다. '여자라서'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예) 박○○ 미친년, 최○○ 강남아줌마, 미스박)
2. 질병·장애를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맙시다.(예) "박○○는 발달장애/병신/정신병자다.")
3.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하거나 원하지 않는 조언을 하지 맙시다.(성적/학력, 탈학교, 진로) 청소년에게 "기특하다", "대견하다",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사양합니다.
4. 불쾌감과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신체접촉, 윙크 같은 성희롱을 하지 맙시다. 외모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해도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예쁘다, 잘/못 생겼다)
5. 국가, 인종, 성정체성, 성적지향, 채식, 옷차림 등 정체성/가치관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조언하지 맙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서 매 집회 때마다 집회 참여 시민들과 나누었던 공지사항입니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자유발언을 하는 시민들이건, 퇴진행동을 대표해 나왔던 활동가들이건 할 것 없이 이 공지사항을 잘 지키게 되었고, 집회 초반에 곳곳에서 나타났던 조롱과 비하 없이도 촛불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퇴진행동이 전적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이 곳에 참여하는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광장"을 만들자는 시민들의 뜻이 상호작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호응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국가폭력 피해자, 양심수의 가족들, 해고노동자, 청소년, 노인, 이주민, 빈민, 원전지역 주민, 성주 소성리의 주민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우리들의 이야기로 넓어져갔습니다. 위와 같은 공지사항은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의 주인이라는 원칙을 실질화하기 위한 당연하고 기본적인 수칙들이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광장"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상반되는 입장들이 끊임없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장이었지요. 최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기다려라"와 "지금 당장"의 경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촛불대선을 통해 당선된 새 정부가 알아서 잘 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는 무심합니다. 여전히 나중으로 밀려나있는 사람들이 아직 갖추지 못한 삶의 권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외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빼앗긴 자들의 시대 정신 "지금 당장"

제 얘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퇴진을 함께 외치면서 제가 여성 성소수자로서 지금껏 당해온 차별을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평등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창원에서 열린 촛불에서 한 청년 전기공이 했던 발언을 듣고 저는 더욱 열심히 촛불을 들게 되었지요.

"박근혜가 퇴진한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요?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슬픔 같은 건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한 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대로 20년, 30년 더 살라고 하면 못 살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내 삶이 달라져야 정말 달라진다." 그래서 저는 지난 2월 16일 성평등 포럼이 열린 자리에서 저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가 2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찾아가 성적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제 평등권을 반반으로 자를 수 있냐는 말입니다. 유력 대선후보면 대답을 해주시란 말입니다. 왜 이 성평등 정책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성평등을 포함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제가 던졌던 질문입니다. 이에 청중들은 "나중에"를 연호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답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도 충분하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으므로 나중에 고려해보겠다, 나를 설득하려하지 말라'고 했을 뿐입니다.

대선이 한창이던 4월, 군형법 92조의 6에 의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은 A대위와 여러 군인들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성소수자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촛불을 들 때에는 모두가 하나라고 했는데, 정작 대통령 후보가 TV에 나와 "동성애는 반대"라고 하며 밀어내는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우리는 힘껏 목소리를 내어 성소수자는 '시민'임을 알려야만 했고, 다시 한 번 무지개 깃발을 들고 대통령 후보를 찾아갔습니다.

그 이후 퇴진행동에는 한동안 동성애자는 무대에 세우면 안 된다거나, 퇴진행동이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메일과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퇴진행동의 실무자로서 창구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여성 성소수자인 저는 마치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게도 저는 모두가 주인인 열린 광장을 함께 지키는 일원으로 많은 시민들의 성원 속에 일했지만. 여전히 반으로 갈려있는 세상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민주노총에도 최저임금 1만 원과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6.30 사회적총파업을 준비하면서 항의전화가 걸려오기도 합니다.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또는 귀족노조라는 비난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대다수 저임금노동자들에게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들에게는,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겨울 내내 모두는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고 불평등과 차별이 해소되는 사회를 염원하며 촛불을 들었다.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차별을 조장했던 정치 세력은 물러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동안 부정당해왔던 권리를 외치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조 할 권리'를, 성소수자들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 외침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외침 모두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생존과 행복 추구는 공히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권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탄압하는 국가에 맞서 성소수자들과 어깨를 겯고 행진할 것이다."

- 성소수자 군인 처벌에 반대하고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희망하는 노동조합, 노동사회단체 및 개인 일동(55개 단체 및 227명 연서명)

얼마 전 성소수자 군인 처벌에 반대하고 군형법 92조의 6 폐지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입니다. 이 성명은 삶을 유예당하지 않고자 행동하는 노동자와 성소수자의 공통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이런 외침들이 항상 유예되고 뒤로 밀렸던 자신의 인권을 지금 당장 보장해달라는 절실한 요구임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가 무슨 뜻이었건, 그 말이 많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 각인된 오래된 고통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것이 촛불로부터 배워야할 새로운 사회의 품격이자 기본 원리입니다.

반으로 잘린 세상을 넘어

박근혜 정권 4년간 간첩신고가 5만 건 들어왔다고 합니다. 강의실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고 신고한 경우도 여럿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집권 기간 동안 일관되게 증오를 부추겼고 그 결과 차별과 혐오는 심화되고 인권은 후퇴했지요. 사상과 표현의 자유 또한 제약 당했습니다. 촛불을 든 지난 겨울 동안 광장의 시민들은 정권을 무력화함으로써 끝날 줄 모르고 치닫던 증오의 질주를 얼마간 늦추고, 애먼 사람들에 대한 증오보다는 구조적 적폐에 대한 분노, 변화를 위한 실천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출범한 새 정부가 방식이야 좀 다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성주 소성리에서는 서북청년단, 엄마부대 등 박근혜 비호세력 보수단체들이 내려가 주민들을 모욕하고 증오의 폭력을 휘두르는 '백색테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은 빨갱이 낙인과 증오 선동을 통해 분열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야할 세상은 모두가 다르지만 한명 한명이 주인공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촛불 그 다음은 어때야 할까요? 다시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차별금지의 원칙"을 만들어 공유하고 존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차별금지의 원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동등한 참여"입니다. 동등하게 참여하려면 "평등"이 그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지금껏 용인되어온 갖가지 차별과 혐오를 거두어내고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과정이며, 힘없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공식적 약속입니다.

우리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제가 일하는 민주노총 안에만 해도 수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촛불을 현장에서 이어가는 것은 바로 차별에 맞서고 현실을 바꾸어내는 노력을 늦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이 국가가 나서서 이러한 권리를 보장한다면 더 빨리 확산될 수 있는 변화입니다.

퇴진 촛불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상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광장의 촛불은 내가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의 힘"이란 민주주의의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또한 최근 가시화와 주체화에 대한 욕구가 더욱 커졌습니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광장의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하는가, 계속 질문하고 이야기해야할 때입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은 자랑스러운 촛불시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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