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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 섬업? 섬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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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 섬업? 섬다운?

[오동진 vs 김영진의 메신저 토크] 영화의 진정성

영화전문기자 오동진과 중견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개봉영화 가운데 한편을 골라 벌이는 사이버 영화논쟁을 매주 게재한다. 이번 주는 오석근 감독, 전미선 주연의 〈연애〉란 작품이 도마에 올랐다.

이 영화는 평단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두고 두 사람이 공감했던 것, 그리고 달랐던 의견들을 살펴본다. 〈편집자〉

김영진 : 시작부터 이런 얘기해서 뭣하지만 난 〈연애〉를 그렇게 좋게 본 편은 아니다.

오동진 : 그렇게 좋게 본 편이 아니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를 의미하는 건가?

김영진 : 의도는 좋게 보지만 솜씨가 좀 아니었다라는 얘기다.

오동진 : 어디선가 그런 평을 썼더라. 이 영화가 80년대 호스티스 장르를 계승했다고. 한마디로 올드한 정서의 영화라는 얘긴데, 이걸 21세기적 정서로 바꾸는데 실패했대나 어쨌대나. 근데 난 그 호스티스 장르라는 게 따로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김영진 :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 묘사가 지나치게 상투적이라는 점에서는 그 같은 지적이 맞다고 본다. 룸살롱에서 보도방 여자들을 대하는 남자들 묘사는 옛날 한국영화에서 보여진 것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관성으로 묘사하는 연출의 안이함이 보였다는 지적일 거다.

오동진 : 다소 극단적인 신파의 정서가 배어 있긴 하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난 근데 오히려 그게 좋더라. 그리고 영화가 묘사하는 그 '보도방 현실', '남자들의 태도'가 실제로 바뀐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 있어 관점이 중요한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현실을 뛰어 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돼야 한다는 것도 평단의 강박증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안이함'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였다고 본다. 반대로 얘기하면 〈야수와 미녀〉나 〈광식이 동생 광태〉 등등 요즘 나오는 수많은 청춘영화들처럼 캐릭터들을 만화틱하게 묘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파조로 밀고가는 게 훨씬 받아들이기가 수월하다고 본다.

김영진 : 아니, 내 말을 왜곡하지 마라. 현실이 바뀌었다는 둥의 얘기가 아니라…. 이를테면 남자들이 술집에서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 하나같이 똑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너희들은 창녀야, 라는 식의 직접적인 대사도 나오고. 돈으로 여자들을 사는 남자들의 모습을 전형화시켜서 오히려 이 직업의 현실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거다.

오동진 : 여자들의 '직업'을 밑바닥의 것으로 아예 규정하고 들어간다 이거군. 맞다. 그건 인정. 그렇다면 그 남자들 캐릭터 가운데 어진(전미선)의 상대역 민수(장현성)의 캐릭터는 어떤가? 처음엔 그 캐릭터 역시 진부하긴 하다. 근데 그렇게 보면 나중에 민수가 어진을 배신하는 것 등등 모두가 다 진부한 얘기로 보인다.

김영진 : 난 그 민수라는 캐릭터가 가장 거슬리더라. 첫 대사부터 맘에 안 들었다. 백만송이 장미는 다 따셨어요?라고.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하는 남자…. 일단 매력이 없다.

오동진 : 난 영화 중반까지, 어진이 전화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그나마 제 정신을 갖고 있는 남자가 바로 민수라고 생각했다. 그런 착시는 다소 어줍잖긴 해도 일종의 연출적 기교라고 생각했다.

김영진 : 음…. 그런 건 있다. 근데 룸에서 계속 만나는 민수 캐릭터가 일단 매력이 없으니까 그들 관계에서 오는 긴장이란 게 없다. 저런 남자, 입체감이 전혀 없는 남자와 지속되는 관계에서 어진 캐릭터도 진화되지 못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

오동진 :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극중 여주인공이 겪게 되는 문제를 지나치게 여자의 '안으로만' 집어 넣으려고 했다는 데에 있다고 봤다. 영화가 여자 대 남자의 갈등구조, 특히 성적 관계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된 게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짐작컨대 원래 의도대로 이 여자가 잔인한 사회에 맞서 홀로 서게 된다는 식의 감정선이 균질하게 살아나지 못했다. 그게 아쉽다.

김영진 : 맞다. 우리가 그 남자에게서 받는 정보는, 룸살롱에서 만난 여자에게 존대말을 쓰고 애인 대하듯 정중한 신사이자, 반면에 직장에선 냉혈한인 듯한 그런 남자인데 그 양극만 있지, 도무지 그의 생활이란 게 느껴지지 않아.

오동진 : 맞다. 좀 더 외곽으로, 사회적 관계들로 개별 캐릭터들을 확장시켰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난,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가 용서되기 시작하더라. 뭐랄까. 감독이 12년 동안 연출을 쉬면서도 그동안 끊임없이 주류 영화권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객기 같은 것을 갖고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게 앞서의 어떤 평가처럼 12년을 쉰 탓에 12년 전의 호스테스 영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으로는 오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김영진 : 나도 그렇게 봤다. 결점이 많은 영화인데, 쓰리 섬(threesome : 세 명이 하는 섹스행위)을 겪은 후에 어진이 자기 아들을 시소에 태워주면서 제주도에 가서 살까 운운하는 그런 장면에선 진심이 느껴졌다.

오동진 :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당초 시나리오만으로는 영화가 정말 별로였을 거라는 생각, 그걸 오히려 연출로 최대한 다듬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까 당신이 얘기한 남자들의 대사를 시나리오상으로만 봤다고 생각해 봐라. 좀 끔찍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결국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영화 속에서 어진이 남자들로부터 억압받는 상황, 그 정서를 오석근 감독이 그동안 상업영화권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은 자신의 상황, 감정적 울분 등과 동일시 했구나, 그런 측면에서의 감정이입이 진정성으로 구현됐구나 하는 생각말이다. 당신이 느꼈던 진정성이란 바로 거기에 출발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일한 승부처는 전미선의 연기**

김영진 : 근데 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 보도방에 나가는 여성의 삶이라는 바로 그 설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보도방에 나가는 여자들의 삶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뼈다귀만 추려서 묘사하고 있는데, 그건 우리가 충분히 다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어진이 처음 룸에 나갔을 때 2차 나가느냐 마느냐로 여자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같은 것, 어진이 "이런 짓은 좀…"이라고 하니까 동료가 "왜 이런 짓이 어때서?"라고 반문하며 말다툼이 벌어지는 장면 같은 거 말이다. 70년대 창녀촌 영화에서 창녀들끼리 싸우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그런 감정들인데 거기에 감독이 뭔가 수직적인 연민을 보내고 있으며 그런 만큼 상투적인 함정에 빠졌다고 본다. 마치 남자들이 창녀를 돈 주고 사면서 섹스를 하기 전에 "너 왜 이런 데 오게 됐니?"라며, 절실하지도 않은 질문을 던지는 한심한 모습과 비슷한 것이라고 본다.

오동진 : 흠…. 인정.

김영진 : 그런 측면에서 난 전미선의 담담한 연기가 좋았다. 아쉬운 것은 영화도 그런 톤이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도방에 나가긴 하지만 그건 그냥 생활이라는 것, 삶은 대체로 엿같은 일 투성이고 가끔은 좋은 일도 있는데, 그래서 어쩌다 좀 괜찮은 듯한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그런 여자의 삶, 식으로 말이다.

오동진 : 맞다. 이 영화를 최대한 깔끔하게 만든 건 전미선의 연기였다. 톤 조절이 좋았고. 어쩌면 전미선의 연기야말로 이 영화의 유일한 승부처이기도 하고. 근데 감독에 대해 대신 변명을 좀 하자면…. 오석근 감독은, 예컨대 장선우가 〈나쁜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혹은 임상수가 〈눈물〉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 어진의 삶으로 자신 스스로를 동화시키는 게 역설적으로 위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럴 수 없는데 그런 척,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뭐 그런 거. 그래서 어쩌면 가장 상투적인 것이 자기가 알고,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전인수격 해석일까?

김영진 : 아니, 상투적인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대상이나 소재를 대하는 수직적인 자세가 문제였을 거다. 그 삶에 대해 수평적으로 가면 지금 영화의 상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적인 것을 만들어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동진 : 쉽게 말해서, 위에서 내려다 본다는 거지. 전지적 시점으로 말이지…. 그러니까 그건 오석근의 한계이자 우리사회 속 일부 지식인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진 : 그러니까 이런 것 같다. 이 여자는 불행하다, 계급적으로나 젠더 면에서나, 그러니까 이 여자의 삶에 공감을 보내야 한다. 난 근데 이런 자세부터가 수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자의 삶에도 담담한 기쁨과 슬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가정사에는 조금 그런 부분이 보인다. 특히 아들과의 관계에선. 근데, 가정을 벗어난 지점에선 모든 이가 어진을 대하는 태도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심지어 주인집 여자조차도 어진의 직업을 문제 삼아 아이를 양아들로 보내라고 은근히 협박한다. 난 이런 태도가 전미선 캐릭터가 갖고 있던 힘을 갉아먹고 있다고 봤다.

오동진 : 대체적으로, 아니 전적으로 당신의 얘기에 동의한다. 그래도 나는 자꾸 이 영화를 지지하는 쪽에 서고 싶다. 비록 텍스트의 불균질성이 있다 해도 이 영화에서는, 요즘 영화들이 잘 가지려고 하지 않는 하층사회의 항변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아우성같은 것이. 날 것의 느낌으로 말이다. 요즘 영화들에서는 그게 흔한 일이 아닌 게 돼버렸다. 근데 얘기하다 보니 당신은 어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어진의 직업에 대해서도 수평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은 매춘 합법론자인가?

김영진 : 훅, 그런 위험한 발언을…. 당신은 종종 얘기를 아주 단순화시키는 버릇이 있다. 그걸 아직 못버렸군. 어쨌든 꼭 그런 건 아니고 매춘이 인정받을 만한 직업이든, 그렇지 않은 직업이든, 영화 속 어진에겐 먹고 사는 방편이었다는 거다. 그 먹고 사는 것의 준엄함을 위해 여자는 불가피하게 그 직업에 뛰어든 것인데, 그 직업에서의 삶을 밋밋하게 그리는 건 대상에 대한 실례라는 얘기다.

***건강한 정치적 태도, 낡은 표현 방식**

오동진 : 난 오히려 아주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이 영화가 상업영화권으로 풀리는 과정에서 전미선을 예쁘게 포장시켜, 마치 멜로드라마처럼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당신이 말한 '대상에 대한 실례 중의 실례'일 수 있겠다고 본다. 어쨌든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김영진 : 일단 내 학생들에게 반응을 물어봤는데 그리 긍정적이지 않더라. 얘들은 이걸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소재 때문이 아니라 아까 얘기한 대로 태도 때문에….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너무 선악 도식으로 멜로를 풀고 있다. 아까 "언제부터 이런 데서 일하게 됐니?"라고 묻는 남자손님의 태도에 대해 느끼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잘 알듯이, 대개 그쪽 여자들은 비웃는다. 싱거운 얘기니까. 이 세계에 들어와서 살 것도 아니면서 그냥 멀리서 갖는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의무적인 도덕적 부끄러움만 내세우는 꼴인데, 그 걸로는 안 통한다. 그 세계에 들어가야 해.

오동진 :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양면성, 양가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면, 지금 당신이 얘기한 대로 어진이 처한 현실상황을 구체성의 변증법으로 확장하지 못한 건 분명하지만 여자를 둘러싼 사회문제에 있어 이 영화의 궁극적인 모습은 비교적 '건강한' 정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영진 : 물론, 건강한 정치적 태도는 인정. 그것이 오석근 감독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다. 다만 그걸 구체화시키는 방식이 다소 문제였다고 본다. 김여사 캐릭터(김지숙)도 남편에게 마구 얻어맞는 모습 다음에 자살로 끝난다. 그게 난 공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그랬다면 어떻게든 그 여자를 화면에서 죽여서는 안됐다. 그거야말로 그런 세계의 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동진 : 그건 나도 인정. 그 여자가 끝까지 살게 했어야 했다. 어쩌면 바로 거기서 이 영화에 있어, 오석근의 올드함이 묻어나긴 하지. 당신의 지적대로, 영화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해도 거기까지 이르는 길을 잘 선택할 필요는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실패한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 '티피컬한 점'을 예상외로 무리없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 점에 난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의 기묘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연애〉는 썸업!**

김영진 : 이 영화에서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잡놈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때론 과격한 선동가가 만든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뿌리는 무르다. 이 여자들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을 못 찾은 것 같다. 근데 그 비극적인 방식이 신문 사회면 기사 이상의 구체성이 없다. 조금이라도 입체적인 주름이 없으면 선악 도식은 성공하지 못한다. 대중들도 그렇게 단순한 도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긴 힘들 거라고 본다.

오동진 : 신문 사회면 이상의 구체성이 없다…. 오석근이 들으면 무지하게 섭섭해 하겠다. 그래 맞다. 아무리 예쁜 연애담으로 속이려고 해도 관객은 속지 않을 거다. 얼마 전에 〈나의 결혼원정기〉를 봤는데 그 영화야말로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얘기하려고 하는 것을 슬쩍 감추면서도 오히려 점증법적으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 그것이 어찌 보면 연출의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지.

김영진 : 〈원정기〉에서 관객의 감정을 울리는 장면은 영화 초반 시골 장면, 밥상머리에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노총각 아들이 밥 먹는 장면 같은 거다. 또는 영화 중 후반에 주인공 만택이 달리는 장면 같은 거…. 그런 것들이 관객의 정서를 울린다.

오동진 : 〈원정기〉에서 대중들이 가장 많이 울 장면은, 공항 장면일 걸? "다 자빠뜨려요!"하는 장면.

김영진 : 인정.

오동진 : 그거 마치 〈JSA〉에서 송강호가 '김정일 장군 만세' 하는 장면같지 않았나? 비장미가 팍팍 느껴졌다.

김영진 : 음…. 또 인정. 그러니까 영화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할 요량이라면 〈원정기〉같은 영악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오동진 : 인정. 백배 인정. 아무튼 〈연애〉는 썸 다운(thumb down)이라 이거지?

김영진 : 아니 업이라니까…. 태도는 아쉽지만 전미선 캐릭터의 힘을 사서 업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일수록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이 있다. 근데 그게 잘 안 이뤄지니까 관전자 입장에선 좀 각박해졌을 뿐이다.

오동진 : 아무튼 나도 썸 업이다. 아까 당신이 얘기한 대로,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의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일부 사람들이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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