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2만이 넘는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일은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며 "이들은 통일 후 북한 지역을 이끌어 나갈 미래의 지도자들"이라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북한 지역의) 지도자가 되도록, 충분한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북한 이탈 주민, 즉 새터민이 통일 후 북한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로, 이는 북한 붕괴를 전제한 발언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를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은 남북간 비밀 접촉 등을 폭로하며 이명박 정부와 극도의 갈등을 빚고 있다.
황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통일된 선진 강국'"이라며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북한 체제 붕괴를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황 원내대표는 이어 "억압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의 인간다운 삶과 인권이 개선되도록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통일 준비의 중요한 과제"라며 "작년 2월 외통위에서 법사위로 회부된 '북한인권법안'을아직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상정하여 토론하기로 합의했다. 만약 이번 6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국민적 저항과 국제적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법 관련 여야 합의 당시 황 원내대표는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함께 법안을 '북한민생인권법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날엔 '민생'을 빼고 '북한인권법'으로 바꿔 불렀다. 이는 황 원내대표가 북한인권법에 인도적 대북 지원 등의 내용까지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려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유엔 인권 선언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 일본의 북한인권법에 연이어, 우리 국회에서도 이 법이 제정되어 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는 다만 "통일을 위해서 정부는 의연한 자세로 북한 정권의 위협과 도발에 대처하는 한편, 북한 주민을 위한 민간 차원의 교류와 인도적 지원은 지속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통일'이라는 단어를 9차례 사용했다.
한나라 "북한, 지금이라도 천안함·연평도 사태 사과하라"
이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도 발칵 뒤집혔다. 남북 비밀 접촉 등을 폭로한 북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나왔다.
정의화 위원장은 "남북관계에서도 신뢰 구축이 중요한데, (북한의) 왜곡된 주장은 남북 관계의 신뢰를 허무는 일"이라며 "북한을 돕고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회담을 구걸한 것처럼 왜곡해서 과장한 데 대해 실망했다. 북한의 선전에 우리 국민이 (남남갈등에) 휘말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비난했다.
정 위원장은 "야당은 북한의 의도가 남남 갈등에 있는 것이 확실한 만큼 초당적인 협력을 하고, 북한에 따끔한 질책을 해야 한다"고 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원유철 비대위원은 "김정일 체제의 북한 정권이 얼마나 상대하기 힘들고 불안정한 집단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자신들이 바라는 6자회담 재개와 북미관계 정상화는 남북관계 진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대해 분명한 사과를 하는 등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한나라당 인사들의 속내는 복잡한 상황이다. 당 내부에는 크게 두 가지 우려가 공존한다. 먼저 "돈봉투"를 제안하며 "구걸했다"는 식의 강력한 표현이 북한 측으로부터 나온 만큼,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비판하던 한나라당의 논리에 틈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는 한나라당 매파들이 갖고 있는 우려다. 전통적 지지층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북 정책 전환을 요구해왔던 비둘기파 인사들도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사실 여부를 알수 없는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서 정부에 정책 전환을 촉구할 수도, 북한의 태도를 마냥 비난만 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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