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굴뚝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 올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감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한쪽은 한국 사회가 선진적 기술 시스템을 갖춰 대량생산을 이뤄낸 징표를 보는 듯 뿌듯해하고, 다른 한쪽은 미세먼지 등 호흡기 질환, 기후변화를 유발하지 않을까 하며 불안감을 느낀다. 앞선 반응이 발전과 성장을 생각하는 '산업사회'의 관점이라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위험사회(risk society)'의 관점이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지(만 현실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위험사회'라는 개념은 1986년 출간되었고 1997년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저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홍성태 옮김, 새물결 펴냄)를 통해서 알려졌다. 1986년 소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발생을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소환되어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서 '위험(risk)'이라는 용어는 재해 그 자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험에 대한 예견이나 예측을 함께 의미한다. 어떤 종류의 사고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 불확정한 상황에서 발생 가능성과 그 사고로 인해 생기는 손해를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활동을 말하며, 영어 발음 그대로 '리스크'라 표현하기도 한다. 위험이 발생하는 시기와 위험을 예상하는 시기가 다르고, 산술적으로 계산해 '비용'으로 표현하려는 이 같은 특성은 보험 산업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손실을 볼 것인가를 기업 입장에서 계산하는 산업사회의 제도들은 위험을 경제적 비용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험의 실재적 차원, 즉 발생 가능성과 파괴력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 울리히 벡의 진단이다. 위험을 축소하려는 사회 제도와 실질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개인이 대립하게 된다. 개인의 '위험 인식'이 제도적으로 과소평가된 '위험인식'과 대립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사회가 번영하면서 초래한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대 산업사회의 '제도화된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이처럼 '위험'을 개인 스스로 인지하고 해석하고 처리하는 시대가 오면서 개인은 선택해야하는 불안감에 처하고, 저항의 형태 역시 조직적이기보다는 개인화되고 다양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옥시싹싹 불매운동'을 한다든가,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에 포스트잇으로 추모한다든가, 일자리 위험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위험'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파괴력이 크고 무차별적인 재앙은 원자(Atom), 생물학(Biology), 화학(Chemistry)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이 스스로의 능력을 뛰어넘는 위험을 만들어낸 것이다. 과학이 '지식'과 '무지'를 동시에 생산한 셈이다. 무차별적인 이들 위험을 비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미래세대나 주변부의 빈곤국가에게 위험을 떠넘겨왔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건 은행의 관리자였는데, 국민 세금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고 일반 납세자들에게 비용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래세대로 비용을 떠넘기기만은 어려운 형편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나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면서 이들이 다시 유럽으로 침투한다. 외부로 떠넘긴 위험이 수평선을 타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위험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위험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할 뿐 아니라, 위험사회의 도래가 가져오는 개인의 문제에 주목한다. 개인의 자율성이 증대됐지만 '위험'이 사회적·제도적 틀에서 관리되지 못하고, 개인이 선택해야하는 '불안'을 안겨주었다. 산업사회의 번영과 함께 현대적 사회제도가 가져오는 위험에서 개인주의화의 증가가 낳고 있는 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이중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악성 위험사회
'1:29:30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1건의 대형사고 이전에 29건의 중규모 사고들이 발생하고, 그 이전에 300건 정도의 조짐과 예후들이 나타난다는 원리다. 예를 들어 잠실의 롯데백화점 주변의 싱크홀과 지하의 균열 등 작은 조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더 큰 사고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고 무시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 위험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인리히 법칙에 입각해서 작은 징후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 붕과 사건과 세월호 참사,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과 썬연료 공장 소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안타까운 사건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의 결과가 우리와 우리 후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정확하게 예견하기 어렵고, 자연재해에서 비롯되는 원전 폭발사고의 재앙 가능성을 떠안으며 살고 있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 어떤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채 밝혀지기 전에 식탁을 채우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밀양 화재 사건이 하인리히 법칙의 29에 속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진단이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적경제, '위험사회'의 렌즈 장착
산업사회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쌓아 올린 '근대화' 사회라고 하지만, 조직이나 생활 영역에서는 여전히 관료제나 계급적인 측면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른바, '반쪽 근대성'이라 불리는 산업사회의 이러한 경직성은 위험 요인을 사회적·제도적 수준에서 더불어 함께 답을 찾기보다는, 개인 각자가 위험사회에 대처하도록 방치해왔다. 울리히 벡은 개인의 위험 인식이 산업제도에 의해 축소되지 않고 돌파하려면 '진지한 성찰'과 '민주주의'가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진지하게 성찰한다는 것은 확률 숫자의 크기로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확률과 연관된 사건의 심리적 파급 효과, 사건의 위험이 알려지거나 관리되는 방식 등 모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위험사회를 진단한다>(아로파 펴냄)의 저자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한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하다"며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성찰적 반성을 강화하고, 하위정치·시민정치를 활성화하여 제도정치에 일정한 변화를 주자는 의미다.
사회적경제 영역은 '위험사회'가 요청하는 성찰적인 위험 진단과 이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같은 위험사회를 살면서도 개인의 위험 인식과 대응 방식이 고립되지 않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적극적인 실천 대안을 제시한다. 제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거나 소홀하게 다뤄지는 위험의 인자들을 진지하게 '위험'으로 인식하게 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사회적경제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 파괴 등의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민주적 원리로 운영되는 호혜적인 경제 조직을 의미한다. 위험사회와 산업사회의 구분에 비춰보면 사회적경제 기업은 태생적으로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안전을 고민하는 사회적경제 조직
사회적경제는 우리를 둘러싼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안전'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를 둘러싼 여러 변수들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기도 한다.
'위험'이 숫자로 표현되지 않아도 불평등과 공동체의 회복, 안전한 먹거리, 에너지 문제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지 않고,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경제 전 영역은 '위기사회'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인식하고,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이 요청한 자발성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주체적 노력이 사회적경제 영역의 방법론을 통해 전면화되기를 바라본다. 재난에 대비하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를 사업적으로 구현하거나 그 활동을 돕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손가락 절단사고 응급키트 제작업체 'Finger119'
지난해 7월 근무 중에 절단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자살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9년 2월 당시 27세였던 김 모 씨는 필름 커팅 작업을 하다 칼날에 손가락 6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손가락 접합수술 등 1년 넘게 4차례 입원치료와 3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고 12등급의 장해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큰 절망에 빠져 2010년 초 조울증(양극성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고, 이후 환청과 망상, 불면증 등으로 3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다 2014년 3월, 거주하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안전보건공단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신고 되는 절단 사고는 연 8000여 건 정도다.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한 뒤 직장에 복귀하는 노동자 비율은 23.5%에 불과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릴 경우 가정은 파괴되고 자존감은 상실된다. 하지만 영세업체의 경우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연 2만 건 정도의 절단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산업 현장의 응급처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고, 최근엔 절단 사고 환자의 상당수가 이주노동자다.
절단사고 중 80%가량은 손 또는 손가락 사고에 해당한다. 절단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빠르고 바른 응급 처치를 받고 절단된 손가락을 안전하게 보관해 병원까지 이송해갈 경우 80% 이상이 소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잘못된 응급 처치와 잘못된 보관 방법으로 인해 수술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절단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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