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지역의 200여 세대의 빌라 단지를 방문했다.
우아하고 교양이 넘치는 분위기의 중년 아주머니가 자녀에게 증여할 목적으로 해당 빌라의 시가 감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해당 여성은 3주택 소유자였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고, 30년 정도 경과해 오래된 빌라 단지이지만 주변 환경이 수려하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네다. 관련 데이터를 찾아 보니, 이 동네애는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 특징은 작은 면적이나 큰 면적이나, 면적당 단가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주택면적이 작을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세대구성이 바뀌고 가격이 급등하니 작은 면적이 선호되고, 중소형 평수의 선호도가 커지면서 작은 면적 주택은 분양단가가 더 높아진다. 건설사, 시행사들은 면적을 줄일수록 높아지는 분양단가와 높아지는 건축비를 비교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면적 구성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작은 주택이나 큰 주택이나 단가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두 번째, 이 지역의 아파트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간의 단가 차이가 크지 않았다. 보통은 아파트 가격이 훨씬 높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교통이 썩 좋지 못하다 보니 투자자가 유입되는 지역이 아니다. 신축아파트가 많지 않으며, 주민들도 부동산 가격에 민감하지 않다. 지역 주민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평수의 어떤 주택에 살든, 큰 차별이나 구별없이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라 한다. 이런 성향이 아파트 가격과 다세대주택 가격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거래 건수도 많지 않았고, 조용히 오랫동안 급등락 없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조용한 동네.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격 급등 여지가 적어 투기꾼들의 손이 타지 않은 동네인 것이다.
그런데.....
30년 된 이 빌라에 최근 재건축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안전진단 통과 3개월이 지나자 평당 1500만 원이 채 안 되었던 빌라 한 채가 평당 2500만 원으로 거래된 실적이 한 건 발생했다. 갑자기 높은 실거래가를 찍은 주인공. 그 매수자는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는 분일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동명이인인지 아닌지, 투자목적인지 아닌지, 허위 실거래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2배 실거래가가 찍히자 투기와 관련 없던 이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집주인들은 매물을 싹 거둬들였다. 감정평가를 의뢰한 아주머니의 사연을 밝힐 때가 됐다. 이 아주머니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증여세 절세 목적으로 자녀에게 증여를 하겠다고 알아보러 오신 것이다. 자녀는 이미 1주택자인데도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은 기대감에 증여를 선택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 공공재개발, 재건축은 이제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조용한 동네의 작은 서민주택 가격까지 모두 폭등시키고 있다.
역세권 건물주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올렸다. 서울 준공업지역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단독주택이나 토지 매물은 씨가 말랐고, 다세대, 빌라의 거래가격이 1년 만에 2억 원에서 4억 원이 되었다. 강북 변두리 저층주거지역 10평 다세대 주택은 1년전 3억 원에서 지금 5억 원이 되었다.
많은 다주택자가 증여하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선택한다. 가격은 더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3억 원이었다가 5억 원이 된 주택은 곧 8억 원이 되고 10억 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그렇게 가격이 오르는 모습을 문재인 정부 4년간 눈앞에서 지켜봤다. 내 이웃, 내 친구, 친척 중 누군가는 그렇게 벼락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벼락거지가 되었다.
국토부는 공공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공급을 확대한다며 LH공사 등의 권한을 대폭 확대했으나, 이미 발생한 토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개발원가는 더 높아지고, 높은 가격에 매물을 잡은 투자자들과의 갈등은 극대화될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지침을 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가가 아닌 시가를 반영하도록 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벌써부터 정부는 공급확대를 명분으로 분양가상한제를 무력화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의 각종 규제들을 완화해준다고 한다(2.4 대책).
규제가 완화될수록 개발의 기대감은 더 커지고, 개발로 인한 기대 이익 실현이 확인될수록 부동산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다. 정부 발표 이후 시가가 폭등하고 있는 준공업지역과 저층 주거지의 부동산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주택 가격이 정부정책 실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공급 확대라는 강력한 태풍을 몰아쳐봤자, 나그네는 점점 더 옷을 두껍게 껴입을 뿐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방법은 공급확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저금리 상황에서 투기수요를 억제하기는커녕, 임대사업자혜택 강화, 장려 등을 통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더구나 마지막 단추 또한 더 엉뚱한 곳에 끼우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4일 83만호의 대규모 주택공급을 발표하자, 건설업계는 화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장관이 달라졌다, 변창흠 반기는 건설업계, 머니투데이,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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