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시의회 이동현 의원의 대표 발의로 '서울시교육청 학교도서관 운영 및 독서교육 진흥 조례안'이 발표되자 학교도서관 주변이 소란스럽다. 해당 조례안은 학교도서관을 내실 있게 운영하고 교육적 역할을 강화하며, 학교의 독서문화와 독서교육을 진흥하고, 그 일환으로 방학 중에도 학교도서관을 운영하자는 것이 골자다. 현재 전국적으로 서울, 대구, 강원만 방학 중 학교도서관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조례안에 대해 정규직 교사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방학 중에도 사서교사가 출근함으로써 자율연수의 권리가 위축된다는 이유가 핵심이다. 반면 비정규직 사서들은 방학 중 정규직 사서교사의 자율연수를 보장하면서도 방학 중 도서관 운영은 필요하다며 보완을 통한 조례 시행을 원한다.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와는 별개로 그만큼 학교도서관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다. 또한 독서는 모든 교육활동의 근간이기에 학교도서관 교육의 필수성과 그 강조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다. 시중의 통념과 달리 학교도서관은 장서를 관리하고 열람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학교도서관은 교수·학습 지원센터로서 학생 외에도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며, 독서교육이 이루어지고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공간이다. 때문에 학생이 언제든 가깝고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공공도서관과 달리 교육과정에 필요한 자료를 맞춤형으로 갖춰 제공한다. 나아가 도서관 기반 교육은 정보활용 교육의 성격도 있어서 초정보화시대 적응에도 중요하다.
이처럼 중요한 학교도서관의 운영은 서울과 대구, 강원에서만 방학 중엔 중단된다. 부분 운영하더라도 전문인력 없이 열람만 가능한 정도에서 형식적으로 운영한다. 이는 독서교육의 부실이나 지역 간 불평등 문제로 지적받아 오기도 했다. 돈 벌이에만 바쁜 한국의 독서문화가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오래된 병폐다. 학생들의 독서환경도 마찬가지여서 성장할수록 입시학습에 속박당하고, 학기 중에는 수업과 학원, 과외로 독서교육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독서를 해도 입시를 위한 독서, 사실상 암기학습으로서 창의적 발상이나 깊은 사유 능력을 이끌어내진 못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 독서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방학은 어찌 보면 학교도서관을 거점으로 한 독서교육의 적기라 할 것이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도서입수 경로 중 두 번째가 학교도서관 이용으로 직접구입에 이어 23.9%를 차지했다. 그러니 방학에도 학교도서관을 연다면 학생들이 굳이 집에서 먼 공공도서관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 서울은 공공도서관이나 아파트의 작은 도서관 등 기반시설이 잘 구축됐다지만, 모든 학생이 고르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공공도서관은 보호자 없이는 접근도 이용도 어렵다. 게다가 저학년은 방과후교실이나 돌봄교실 이용을 위해 방학 중에도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 경우에도 학교도서관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방학 중 더욱 갈 곳 없는 아이들이 학교 밖을 배회하지 않고, 안전하고 익숙한 학교도서관에서 책과 가까이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제공할 필요도 커졌다.

한편, 방학 중 학교도서관 미운영은 전문인력, 즉 비정규직인 교육공무직 사서(이하 사서)에겐 생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도서관은 사서교사나 사서가 운영하는데, 오히려 비정규직인 사서의 비중이 더 많다. 사서는 사서교사와 더불어 학교도서관진흥법으로 규정된 전문인력이다. 그럼에도 노동조건은 격차가 뚜렷하다. 교육공무원법을 적용받는 정규직 교사는 '제41조 연수'라 하여 방학 중 출근하지 않고 자율연수를 할 수 있고 당연히 임금은 지급된다. 반면 공무원이 아닌 비정규직 사서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적용 대상이 아니며 방학 중에는 저임금인 월급조차 없어서, 학교비정규직에게 나타나는 특징적 문제인 방학 중 보릿고개를 겪어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이나 이러한 노동 격차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방학 중 학교도서관 운영 조례는 긍정적 방안이다.

공공도서관은 여러 명의 사서가 업무를 분담하지만 학교도서관은 여러 업무를 사서 1인이 홀로 감당한다. 이런 조건이기 때문에 연중으로 해야 할 업무를 사서들은 학기 중에 몰아서 압축노동을 해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없는 여건이기도 하다. 그 결과 학기 중에도 학교도서관은 충분한 교육적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주변화로 이어진다. 그러니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률이 낮다는 우려는 더 늘고, 방학에는 이용률이 더 낮다면서 문을 닫아 걸자는 정책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상시 문을 여는 가게가 손님을 끌 듯 도서관도 마찬가지며, 이용자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바로 도서관다운 운영인 것이다.
방학 중 학교도서관 운영은 사서교사의 방학 중 자율연수 기회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사서교사는 학기 중 수업도 맡아야 하므로 다른 교사들처럼 독서교육을 연구하고 수업을 개발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방학 중에도 학교도서관을 운영하자는 이번 서울시의회의 조례는 사서교사의 자율연수 기회를 다른 교원들처럼 동등하게 보장하도록 보완하면 된다. 그럼에도 조례의 일부 문구를 이유로 조례의 취지와 방향성 전체를 부정하며 철회시키는 건 교육적이지도 않고 자칫 이기적이라는 사회적 질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방학 중 학교도서관을 운영한다고 입시교육에 짓눌린 독서교육이 단번에 살아날 순 없다. 교원의 제41조 연수는 아니더라도 역시 전문인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사서에게도 방학 중 연수의 기회를 보장하고, 학교도서관 운영이 도서 열람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나 인력확충 방안, 방학 중 프로그램도 보완돼야 한다.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은 2016년부터 학교도서관 상시운영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해왔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진전은 없다. 여러 이유와 핑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 서울시의회의 조례안도 여러 제약 조건을 검토하고 관계 당사자들과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실행하면 된다. 그렇게 조례안의 취지와 방향성을 살리는 지혜로운 독서교육의 길을 찾길 바란다. 이미 대다수 지역에서 방학 중 운영을 하고 있다. 해법을 찾는 게 어려울 건 없으며 이건 분명하다. 학교도서관 문을 걸어 잠그고 방학 중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독서교육을 위한 선택일 순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