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진정을 다한 순결하고 간절한 기다림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단다. 그 아름다움은 이 남루하고 초라한 배추 껍질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꽃을 피우지.’('네가 기다림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중에서)
동화의 감성이 짙은 최명희(1947~1998)의 콩트 두 편이 5월부터 최명희문학관 마당에 전시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명희의 작품 중 알려지지 않은 산문을 찾아 소개하는 ‘최명희 작품 나눔’. 한국문학관협회와 함께하는 상주작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야외에서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작가가 중학교 1학년 때 쓴 '완산동물원'(1960)과 '신동아'에 '혼불'을 연재하던 40대 중반에 쓴 '네가 기다림을 바라지만 않는다면'(1991)이다.
전주사범병설중학교의 교지 '학'에 실린 '완산동물원'은 현재까지 밝혀진 최명희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족의 출생 띠(12간지)를 소재로, 돼지띠라고 동생에게 놀림당하는 자신과 소띠라서 소 흉내를 내는 남동생, ‘나무 잘 타는 원숭이띠라서 무용가가 될 것’이라는 여동생 등이 등장한다.
작품 제목인 ‘완산동물원’은 당시 작가가 살던 동네가 전주시 완산동이고, 가족이 여러 동물의 띠로 모여 있어 동물원이 된 것이다.
'네가 기다림을 버리지만 않는다면'은 배추의 넋두리와 햇살의 위로로 이뤄졌다. 배추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살지고 아름답고 푸른 너울을 겹겹이 두른 싱싱한 배추가 되는 것.
청옥같이 푸르게 자라던 배추에 느닷없이 배추벌레가 찾아와 배추의 꿈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 배추벌레는 오직 배춧속에서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어이없이 사라진 배추벌레가 밉고 야속한 배추는 그 마음을 햇살에 토로하고, 햇살은 ‘낡은 상처의 배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꽃으로 필 수 있다면 배추벌레는 눈부신 나비로 찾아온다.’라는 희망을 전한다.
1991년 '풍림' 7·8월호와 1992년 '전북 시대' 5월호에 실렸으며, 작가가 발표한 20여 편의 콩트 중에서 동화의 형식을 가장 많이 빌려 쓴 작품으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전시는 작품 원본과 상주작가인 김근혜 동화작가가 짧게 각색한 두 가지 형태로 선보인다. 삽화는 김헌수 시인이 그렸다. 22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박서진·전은희 동화작가를 초청해 함께 작품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최명희문학관 최기우 관장은 "야외 전시뿐 아니라, 삽화 전시, 낭독 영상물 제작 등 다양한 매체로 작가의 작품을 알리는 일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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