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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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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유로 산다

[프레시안 books]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요즘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을 훑어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코로나 장기화와 백신, 부동산 문제, 대선을 앞둔 정치권, 낮아지는 출산율, 그에 따른 교육 문제, '이대남(이십대 남자)'과 'MZ세대(밀레니얼세대+제트세대)'의 고충, 주변국과의 갈등, 환경 문제 등, 어디 하나 잘 돌아가고 있는 분야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하여 특정 관점에서 구체적인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책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교육, 세대, 성, 종교, 외교, 재난 등 다방면의 사회 현상을 다룬 책은 거의 없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는 언어학자의 눈으로 이러한 현상을 살펴본 책이다. 인지언어학자로서 저자는 우리 한국인들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기제―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 책은 언어학 이론 자체를 상세히 다루기보다 누구나 아는 사회 현상을 묘사하는, 흔히 보아왔던 기사나 글에서 인용한 표현을 활용하여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개념적 은유를 파헤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념적 은유로 사회를 읽는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언어철학자 존슨(Mark Johnson)은 1980년 펴낸 자신들의 저술인 Metaphors We Live By라는 책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과 언어는 다분히 인간의 구체적인 몸의 체험에서 나오는 은유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1995년에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직역하면 We live by metaphors의 뜻에 가까운 '우리는 은유에 의해 살고 있다.'일 것이다. 마치 의식주처럼 은유는 우리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은유는 문학작품에서만 등장하는 특별한 표현이며, 따라서 일반적인 사고과정과는 상관없는 수사법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은유는 단지 언어의 표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늘 일상에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개념을 통해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사고의 기제"라는 것이 <삶으로서의 은유>에서 주장하는 개념적 은유 이론의 핵심이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에 나오는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이 개념적 은유 이론의 주장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교육'이라는 개념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아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상품'이란 개념은 일상에서 우리가 사고팔고 사용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교육을 상품의 거래로 이해하는 [교육은 상거래]란 개념적 은유가 작용하면 추상적이던 교육에 대해 더 분명하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교육의 품질', '명품 교사' '명품 대학,' '교육소비자인 학생' '교육수요자' 등(pp. 25-27)은 개념적 은유 [교육은 상거래]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이러한 개념적 은유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게 자주 사용되면서 우리 머릿속에 뿌리깊이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방 국가’ ‘선린’ ‘(국제 관계의) 영원한 적과 동지’(p.113)라는 표현은 물론 ‘성에 굶주리다’ ‘돈을 미끼로 여성을 낚다’ ‘춘향을 따먹으려는 사또’(pp.144) 등이 은유적인 언어 표현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전자의 표현들은 국제 관계를 이해하거나 서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는 사람] 은유(p.113)의 언어적 발현이고, 후자의 표현들은 성(특히 여성)을 상품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사고 기제인 [성적 상대자는 음식] 은유(pp.144, 147)의 언어적 발현이다.

문제는 이러한 은유적 표현의 사용이 단순히 우리의 언어생활에 국한되지 않으며, 대상을 어떤 은유를 통해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결정된다는 데 있다. 은유는 우리 인식의 틀과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은유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은유는 대부분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은유이다. [입시는 전쟁]이고 [결혼은 상거래]이며, [세금은 폭탄]이라는 은유를 기반으로 하는 언어 표현이 넘쳐나는 현 상황은, 우리가 그 현상에 대해 가진 인식을 보여주며, 반대로 이러한 표현의 일상적 사용은 그러한 우리의 부정적이고 삭막한 인식을 더욱 굳건히 한다.

그래서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기사들에 나오는 표현을 보면 ‘나는 대립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보수와 진보’나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전통적(?)인 대립은 훨씬 세분화되어 다양한 층위에서 분열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갑과 을, 5080세대와 MZ 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서울대와 지잡대, 서울에 집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등 그야말로 온갖 분야에서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대립 구도가 과연 필연적인지, 과연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며 살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 조금만 살펴보면 세상은 이렇게 이분법적이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두 대립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상생에 가치를 두어 일어나는 일도 많다. 경쟁과 대립의 은유에 의해 밀려났을 뿐. 저자는 삭막하고 피곤한 기존 은유에 반대하고 대안적 은유를 제시한다. [교육은 식물재배/여행/건축], [세금은 공동자산]이란 은유가 자리 잡으면, 교육은 삭막한 상거래나 전쟁이 아닌 인재를 양성하고 함께 나아가고 함께 미래를 건설하는 교육의 본질에 더욱 다가서게 된다. 세금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폭탄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사용할 우리 모두의 꼭 필요한 자산이 된다.

이 책에 나타나는 개념적 은유에 대해 고민해 보면서 어쩌면 은유를 통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적 은유는 구체적 정책이 아니기에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개념적 은유란, 인과 혹은 필연의 관계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잦은 사용으로 인해 관습적으로 굳어진 것들이며, 때로는 인위적 선택에 의해 자리 잡는다.

예컨대 교육이 반드시 상거래일 이유나 세금이 폭탄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사람들이 선택하여 계속 그렇게 사용하고 인식해왔을 뿐이다. [교육은 식물 제배]란 은유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교육은 상거래]라는 은유에 의해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되고 있다. 또한 [국가는 엄격한 아버지]나 [신은 엄격한 아버지]는 보수 진영이 전략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은유이고, [국가는 자애로운 부모]나 [신은 자애로운 부모]는 진보 진영이 선택해 전면에 내세운 은유이다. 기존의 은유도 이처럼 전략적으로 선택되어 깊숙이 자리 잡고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었던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이런 분열적이고 삭막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 사실 지금의 우울한 은유를 고착화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제안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담긴 구체적인 은유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공부하는 인지언어학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바탕으로 언어 지식이 형성된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언어적 근거도 많다. 마찬가지로 상생의 은유를 자주 사용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한뼘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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