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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술핵 공유하자고? 나토식 '핵 공유'의 민낯과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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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술핵 공유하자고? 나토식 '핵 공유'의 민낯과 허상

[기고] 홍준표의 '서독 전술핵 배치' 오해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진영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독일의 경험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 대선주자 중 한 명인 홍준표 의원은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수상의 요구에 미국이 굴복해서 서독에 전술핵이 배치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 주장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역사적 맥락을 오독한 위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급한 사례는 1979년에 소련이 중거리 핵 미사일을(SS-20) 배치하자 슈미트 수상이 미국에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했던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이 퍼싱-II 미사일 및 지상발사순항미사일(GLCM)을 추가 배치하긴 했는데 이것이 서독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주장은 서독에 전술핵이 배치되었던 전체 역사적 맥락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주장이다. 맥락을 알면서도 한 주장이라면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선동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유일하게 핵무기를 갖고 있던 나라였다. 미국의 핵 독점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 것은 1949년 소련의 첫 핵실험에 성공과 이어 1953년 400킬로톤에 달하는 핵무기(RDS-6) 실험에도 성공하면서부터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은 1954년 9월부터고, 서독에 전술핵무기를 처음 배치한 것은 1955년 3월이다.

이후 1974년까지 순차적으로 19종의 핵무기가 배치됐는데, 슈미트 수상 재임 기간(1975-1982년)에 2종류의 중거리 전략 핵무기가 더 배치됐다. 홍준표 의원의 말처럼 슈미트 수상의 요구에 미국이 굴복해서 그의 재임기간에 전술핵이 배치된 것이 아니다.

전술핵 배치에도 불구하고 핵 무장 주장한 서독 보수세력

그렇다면 미국은 전술핵을 배치하면서 서독 정부와 협의를 하고 핵공유협정이라는 것을 맺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서독은 2차대전 전범국임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49년부터 나토회원국에 편입이 되기는 했지만 다른 회원국들과 같은 지위를 갖지 못했다. 특히 원자력에너지 및 핵무기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 단적인 예가 원자력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및 개발을 위해 1958년 창설된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에서의 서독정부 배제 논란이다. 당시 프랑스 드골정부 및 다른 회원국가들이 서독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 따라 미국은 서독 지역에 전술핵을 배치하면서 장소나 수량 등에 대해 서독 정부에 전혀 통보하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이 서독정부와 전술핵 관련 제한적인 협의라도 시작한 것은 존슨 행정부 마지막 해인 1968년 가을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제한적 협의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당시 서독의 보수정치세력은 소련의 핵무기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서독의 독자 핵 개발 요구를 핵확산방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으로 억제하려 했고, 그 반대급부로 서독 내 전술핵 관련 부분적인 정보 공유를 합의해 주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서독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서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핵공유협정을 맺은 것이 아니다. 서독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술핵이 배치됐고, 서독보수세력의 핵무장 주장은 서독을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도록 하는 미국의 압력으로 작동되었다. 핵공유협정에 불구하고 전술핵에 대한 통제권 및 핵사용 결정권은 여전히 미국에 속한 권한이었음 물론이다.

통제권 없는 단순 운송, 나토식 핵공유의 민낯 

그렇다면 지금은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별로 그렇지 못하다. 유럽내 전술핵무기는 미군 탄약지원대대의 전적인 관리와 통제하에 놓여 있으며 해당국 정부나 군 당국은 접근 권한이 없다.

나토 동맹국들의 역할은 다만 이들 핵탄두를 자국 전투기에 실어 적군에게 떨어뜨리는 운송 임무를 담당하는 정도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나토식 핵공유의 현실이다.

또한 현재 30개 나토 회원국 중에 미국 주도의 핵공유체제에 참여하는 국가는 5개 국가에 불과하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에 각각 20기의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본래의 핵 억지라는 군사적 목적 보다는 나토의 기존 핵공유체제를 유지한다는 정치적 의미가 훨씬 더 크다.

게다가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서는 전술핵 전면 철수 요구가 거세다. 특히 독일국민의 절대다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66%에서 83%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전술핵의 전면 철수를 지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9월 말로 예정된 총선거에서 주요 2개 정당인 기독교사회민주당(CDU)과 녹색당이 전술핵 전면 철수를 공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21세기 한국이 직면한 핵확산방지체제의 상황은 서독이 직면했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21년 현재 핵확산금지조약에는 191개국이 가입해 있는데, 이 조약의 제1조와 제2조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의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장치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양도하거나 양도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한국에의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세계적 수준의 핵확산금지체제를 포기하겠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미국 입장으로서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 극구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가하면 그에 상응하는 똑같은 보복이 가장 정의로운 것이라는 의미로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문제에 대해서 이런 형식논리를 적용해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이미 철수한 전술핵이 재배치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재배치된다고 하더라도 그 핵의 운용 및 사용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정부에 속하게 된다.

'한미핵계획그룹' 주장도 나오는 모양인데 나토(NATO)의 경우에도 '핵계획그룹'은 주로 미국의 핵전략 변화를 확인하고 각 회원국의 대응 조치를 논의하는 정책협의의 성격으로 운용될 정도다. 전술핵 운용의 실제 키는 미국이 독점한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성급하게 서독의 전술핵 배치나 나토식 핵공유가 마치 서유럽 나토 회원국들의 압력에 미국이 굴복하거나 혹은 실질적인 핵운용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대중을 그롯된 인식으로 오도하는 대단히 무책임한 행위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가겠다는 정치지도자라면 핵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관점에서 냉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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