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는 수출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는 지대했다. 이후 20년간 지속되는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인한 제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이었다. 1970년 이후 20년간 제조업 수출과 고용은 각각 연평균 12.4%, 7.4% 성장했다. 1990년대 이후는 기술발전으로 정보통신산업 자본집약적 첨단산업으로의 전환되고, 노동은 자본과 기술에 의해 대체된다. 따라서 제조업 고용 수준은 1990년대 이후 오히려 감소하기 시작했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1980년대 초기 수준으로 회귀한다. 2000년대 이후는 FTA 확대 등으로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고용은 오히려 감소한다. 1990년 이후 20년간 수출은 연평균 7.8% 성장했지만, 제조업 고용은 연평균 0.2% 감소하였다.
수출증가와 고용유발효과는?
올해는 최고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번달 1일 산업통상자원원부는 무역 역사상 최초로 월간 600억 불을 돌파하였다고 했다. 12월 중순에는 수출액 6,049억 불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이 기대된다고 한다. 물론 국제유가와 원자잿값 상승에 따라 수출 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에 총수출 금액이 늘어났다는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수출실적은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이란 늪에 빠진 한국경제가 수출에 있어서도 역시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고용없는 성장'이자 '고용 없는 수출'이다. 201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수출이 국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 의하면, 수출의 고용 창출 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된 주요 원인으로 수출 산업의 구조(structure) 및 구성(composition) 변화, 생산의 글로벌 분업화(international fragmentation of production), 기술혁신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향상 등으로 꼽는다. 무엇보다 수출품목의 구조(구성)가 기술/자본집약적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수출의 고용 창출 둔화가 현상을 야기할 수 있고, 비교우위 산업이 노동절약적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출-고용 간 선순환 고리가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4차 산업혁명과 기술집약형 산업으로의 진행 과정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 속에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수출 중소기업의 고용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끊어진 수출-고용의 고리는 한국에만 존재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대기업의 산업 비중 대비 고용 비중은 매우 낮음을 알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는 자산 5조 원 이상인 우리나라 64개 대기업 집단의 매출 규모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84% 수준에 달하지만 고용 비중은 11%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다. 진보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체제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해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재벌경영체제와 대기업 독점, 고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특히 고용하지 않는 대기업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이 어느 만큼 고용을 해 왔는가? 지금이라도 어느 만큼 할수 있는가? 앞으로는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도 지난해 상위 10대 대기업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출액에서 10대 대기업의 비중이 35.4%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비단 지난해의 수출 상황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위주의 한국 산업의 지배구조와 더불어 세계 수출시장에서의 괄목한 성장을 이뤄낸 상황에서 대기업은 고용에 대한 책임을 다 했는가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의 고용 상황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이전까지는 지난 수십 년 중 가장 양호한 상태를 보여왔다. 코로나19라는 상황 변수를 제외한 통상적 비교를 위해 2018년의 각 선진국의 성장률과 고용/실업률의 추세를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8년의 경우, 미국의 실업률은 4.1%로 전년대비 4.7%보다 0.6%포인트나 낮아졌고, 실업률은 4.1%로 2000년 12월이래 최저수준을 보여였다. 일본도 2018년 1월 실업률은 2.4%로 전년대비 2.7%보다 0.3%포인트 낮아졌고, 2018년 1월 실업률 2.4%는 1993년 4월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전년 대비 개선된 상태를 유지하며, 실업률 3.6%는 1991년 이래로 가장 낮은 실업률이었다. 영국의 전년 4분기 실업률은 4.4%로 2016년 4분기 실업률 4.8%보다 크게 개선되었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호전 가운데서 고용이 개선되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OECD 38개 중 34개국의 실업률이 낮아졌다. 그런데 왜 한국만이 고용상태가 개선되지 않았는가? 앞서 말했듯 세계 수출시장의 점유율을 이렇게 높여가고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만이 고용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수출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수출증가 비중 중 대부분을 차지 하는 것이 바로 반도체, 석유화학과 석유제품 등이다. 반도체 부분만해도 약 45.7%를 차지하며, 다음으로 석유화학과 석유제품이 11%씩을 차지하고 있다. 즉 수출증가 규모의 68%를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과 같은 세 품목이 차지하고 있다. 이 세 품목은 거의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산업부분이며, 동시에 장치산업으로 고용유발효과가 낮은 부분이다 이라는 것이다.
위 201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이 높을수록 수출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큰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에서 수출과 고용의 선순환 고리가 대기업에 비해 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기업의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수출 비중 대비 대기업 수출의 고용 창출 능력이 크게 감소하였음을 역시 분석하였다. 더욱이 대기업에 편중된 수출 비중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고용 둔화 현상은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반복하며 강조하건대 대기업에 편중된 수출 증가로는 더 이상 고용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의 탈출구는 새로운 시장과 MBO(MDO: Market Development Organization)
결론은 중소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키느냐는 것이다. 국내 내수시장으로 생존하기 힘든 중소기업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서는 그나마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가져야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괄목할만한 강소기업들은 대부분 해외 시장을 겨냥하여 성장해 왔다. 대기업 의존에 의한 성장이 아닌, 시장 지향의 성장으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최근의 한 보수언론은 지난해 기사를 언급하며, 한국은 대기업 수가 G5 국가에 비해 부족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대기업을 늘리면 25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 비중은 전체 기업의 0.09%로 분석대상 OECD 국가 34개국 중 33위이며 기업 1만개 중 대기업이 9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터키(20위), 리투아니아(19위), 폴란드(16위) 등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작은 국가보다 낮은 수준이며, 1위 스위스(0.82%)와 비교하면 9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글로벌 대기업까지 성장하기 위해 총 275개의 규제에 직면한다”며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 규제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면 합리적인 주장인 것 같지만, 이는 현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을 위한 정책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대기업, 고용을 유발하는 대기업의 등장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규제의 문제가 아닌 국내 시장에서의 대기업의 횡포와 불공정거래 등의 문제였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해답은 규제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시장에 있다. 경쟁력있는 중소기업, 강소기업 등이 마음껏 새로운 시장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세웠다. 신남방 정책은 인도를 포함해 아세안 10개 국가들과 경제 협력과 상생을 위한 공동체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아세안 국가의 인구는 약 6억4천7백만 명 정도이고, 인도의 인구는 약 13억 명이다. 지나친 중국과 미국 의존도를 극복하고,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략적 동반자로서 신남방 국가와 함께 하는 미래 공동체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 나라는 젊고 역동적인 성장 지역이고 중산층 인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바로 새로운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마음껏 중소/강소기업들이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고용으로 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시장'은 국경선을 넘어 새로운 인구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 바로 아세안이고, 인도이고, 신남방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주요 기반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지만, 이제는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정책을 우선시해야 한다. 20억 인구의 신남방 시장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제품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먼저 시장을 열고, 뒤를 이어 대기업이 따라가서 시장을 장악하는 단계별 접근 전략을 펴야 한다. 대기업의 해외 매출 신장은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나, 중소기업의 매출 신장은 고용 및 고용 조건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통령직속 시장개발위원회(MDO: Market Development Organization)를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시장개발위원회는 새로운 인구 변화, 한류 및 다문화 등을 기회로 한국의 시장을 공격적으로 만들어가는 대통령 직속 최고 조직을 의미한다. MDO는 통상 교섭과 투자 분야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외시장을 정부 주도적으로 찾아내고, 그 시장에 국내기업이 진출하도록 하며, 해외투자와 IPO까지 지원하는 총체적 역할을 포함한다. 미국에는 USTR이란 조직이 있다. 10~2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들이 200명이 넘게 있다. 입사 이후 줄곧 통상 관련 업무만 담당한다. USTR 수장은 대통령 주재 각료회의의 장관급 고정 멤버로 19개 관련 기관으로 이뤄진 무역정책심의그룹(TPRG)을 총괄·지휘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사 조직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정부 측 5명, 민간 측 19명으로 24명(지원단 28명)로 구성되어 있으나, 시장 개발을 위한 조직으로 보기 어렵고 현존 하는 시장을 위한 전략적 조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지만 통상 관련 조직인 통상교섭본부장실은 산업통상자원부의 5개 실 중의 하나다. USTR은 장관급이 수장이지만 한국의 통상 조직 책임자는 차관도 아닌 차관보에 해당한다. 다른 부처와 원활한 공조는 당연히 어렵다. 순환 보직으로 인해 직원들의 이동이 잦아 전문성을 가지기도 쉽지 않다. 어떤 프로젝트든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책임지고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바뀌면 이들의 업무도 바뀐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문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조직, 대통령직속위원회로서 장보고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갈 전담 조직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조직으로서는 새로 개척해야 할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현지화 지원을 위한 정부 기관은 전무(全無)하다. 재외 공관 직원 1명, 산자부 직원 1명, KOTRA 지부 등은 일상적인 업무와 자신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장의 개척 조사와 발굴, 시장 요구형 제품의 연구개발, 현지화를 위한 전담 조직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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