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애쓰고 계신 김명수 대법원장님께 첫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지으며 주경야독하고 있는 농부인데, 지난 30여 년간 '제주4‧3사건'을 공부해온 인연으로 4‧3희생자유족회 자문위원 또는 국무총리소속 제주4‧3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현재 그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공개편지를 드리는 까닭은, 유족들이 4‧3사건으로 인해 뒤틀린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대법원 규칙'이 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가족관계등록부를 과거엔 '호적'이라고 했고, 이것이 잘못 기재된 시점에는 호적이라 했으므로 이 글에선 편의상 호적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제주4‧3사건'은 미군정 때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사건입니다. 이때 제주도 인구의 1/10가량인 약 3만 명이 대부분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증조할아버지 밑으로 호적 등재돼 아버지보다 위 항렬이 된 유족
한편 사건이 장기간 지속되는 바람에 유족들 중에는 호적이 사실과 다르게 잘못 등재된 분들이 많습니다. 굳이 4‧3사건 때문이 아니더라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 등으로 인해 요즘처럼 태어나자마자 호적 등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 호적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등재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4‧3사건 때 아버지를 잃은 어린 유족들은 불가피하게 큰아버지 또는 작은아버지 밑으로 호적이 등재됐습니다.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 희생된 경우엔 5촌삼촌이나 7촌삼촌 밑으로 등재됐습니다. 희생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외아들이어서 가까운 친족이 없는 유족들은 외가 쪽에 등재돼 성(姓)이 바뀌었고, 심지어 증조할아버지 밑으로 등재되어 아버지보다 오히려 한 항렬 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호적도 있습니다.
호적 정정은 정체성과 뿌리 찾는 인륜의 문제…보상금 지급에도 불합리 발생
최근 제주에서는 뒤틀리고 잘못된 호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엔 4‧3유족회가 주최하고 제주도‧도의회‧교육청‧4‧3재단‧제주지방변호사회가 후원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가 열렸고, 최근엔 신문과 방송에서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개최된 제74주년 4‧3추모제는 전국에 생방송됐는데, 이때에도 '뒤틀린 호적을 바로잡아 올바른 가족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아나운서 멘트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장님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호적을 회사의 사원증이나 재직증명서처럼 단순한 신분관계를 나타내는 서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유족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잘못된 호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으려는 애끊는 호소입니다.
한편 국회에서 개정된 4‧3특별법이 며칠 후인 4월 12일부터 시행되어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게 되는데, 호적이 잘못 등재된 유족들은 아버지가 희생되었음에도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따라서 보상금도 엉뚱한 사람이 받게 되는 불합리가 곧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도 호적 정정이 시급한 까닭입니다.
호적 정정하려면 무덤 2기 파묘해 유전자 검사해야…행방불명인은 불가능
호적을 정정하려면 매우 어려운 소송을 두 번이나 해야 합니다. 호적 정정은 신분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고, 이로 인한 재산권 분쟁 등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엄격한 검증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주4‧3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호적 오류에 대해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과 위험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두어 쉽게 정정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민법에 따라 호적 정정을 하려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와 '인지청구의 소' 등 두 개의 소송을 해야 합니다. 대법원장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이 글이 공개 편지이므로 독자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호적상의 아버지'가 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소송을 해야 합니다(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 그런데 이를 정확히 검증하기 위해 민법은 '혈액채취에 의한 혈액형 검사, 유전인자의 검사 등 과학적 방법에 따른 검사결과'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호적상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혈액 및 유전자 검사가 쉽겠지만, 사건 발생 70여 년이 흘렀기 때문에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무덤을 파내 유해에서 유전자를 채취‧감식을 하여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호적상으로는 형제 관계인 사촌, 육촌, 팔촌이 자신들의 아버지의 무덤 파내는 일을 쉽게 허용할지도 의문이고, 허용한다고 해도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유전자 감식이 쉽지 않습니다.
호적상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어렵게 입증했다면,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 검사(檢事)를 상대로 자신이 '친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해야만 합니다(인지청구의 소). 그런데 4‧3희생자인 친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친아버지의 무덤을 파내 유해에서 유전자 채취‧감식을 하여 이번에는 '유전자가 일치함'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는 4‧3사건 때 친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무덤을 조성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군‧경 토벌대에 끌려간 후 어딘지 모를 곳에서 희생됐거나 또는 당시 엉터리 군법회의의 결과로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중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당하는 바람에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했다면 유전자를 채취‧감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영원히 호정 정정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4‧3특별법의 호적 정정 특례 규정, '대법원규칙'으로 무력화
이상 말씀드린 호적 정정의 어려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4‧3유족들을 위해 국회는 4‧3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쉽게 호적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4‧3특별법 제12조(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는 "제주4‧3사건 피해로 인하여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에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기록을 정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4‧3위원회의 결정으로 호적(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이 가능토록 한 것입니다. 또한 제20조(실종선고 청구에 대한 특례)와 제21조(인지청구의 특례) 등 특례 규정을 두어 현행 민법으로는 불가능한 호적 정정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4‧3특별법의 '특례' 규정이 호적 정정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단지 정정 신청 시기의 제한을 조금 풀어줬을 뿐입니다. 가령 민법은 제864조(부모의 사망과 인지청구의 소)에서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4‧3사건 때인 70여 년 전 사망한 사건에 대해선 소를 청구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지만, 4‧3특별법은 제21조를 통해 "<민법> 제864조에도 불구하고 이 법 시행일(2022년 4월 12일을 말한다) 이후 2년 이내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향후 2년간 호적 정정이 가능하도록 했을 뿐입니다. 특히 4‧3특별법 시행령에는 '정정 신청서'(별지 제7호서식)가 첨부돼 있는데, 정정 대상자를 쓰는 란에 유족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호적 정정을 하기 위해선 차제에 4‧3특별법과 시행령(대통령령)의 애매하고 미흡한 점을 반드시 보완해야만 합니다.
대법원규칙, 등이 가렵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배를 긁어주는 격
그런데 비록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조문이긴 해도 4‧3특별법은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결정과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호적을 정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절차를 위임받은 대법원은 대법원규칙을 통해 유족들이 호적을 정정하지 못하도록 그 길목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즉 대법원규칙(4‧3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 제2조에는 호적 정정의 대상자를 '희생자'로 한정시킴으로써 '유족'이 호적을 정정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현실을 전혀 살피지 않은 채 작성한 조문이며, '등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는데 손이 닿지 않아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배를 긁어주는 격'입니다. 호적이 잘못된 사람은 '희생자'가 아니라 대부분 '유족'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호적의 귀책사유는 국가에 있다…입법‧행정‧사법부가 모두 나서야
호적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국가기관이 모두 나서야만 합니다. 국회는 4‧3특별법을 개정하고, 정부는 시행령(대통령령)을 개정해 모호한 호적 정정 관련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대법원규칙을 개정해 '유족'의 호적을 정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국가가 유족들의 호적을 바로잡아주는 일은 시혜를 베풀어주는 게 아니라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호적이 잘못된 귀책사유가 바로 국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4‧3유족들이 '게을러서' 호적 등재를 늦게 한 것이 아닙니다. 또는 '착각을 하여' 친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 밑으로 호적을 등재한 것이 아닙니다.
4‧3유족들은 미처 호적에 등재되지도 못한 10살 안팎의 어린 나이에 국가폭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고, 무려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4‧3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호적 등재를 못한 채 무호적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진학 등으로 호적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호적 등재를 하려 했지만, 친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 밑으로 호적 등재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책사유가 국가에 있기 때문에 호적 정정의 책임을 유족들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지고 호적 정정의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호적 불일치 관련 토론회' 때 제가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했는데,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분이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싶다는 의지를 몸과 표정으로 역력하게 보여 주기에 그분께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그분은 "나는 작은아버지의 딸로 호적에 잘못 등재돼 있다. 친아버지 밑으로 호적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변호사를 찾아갔더니 '유전자 검사를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 좌절했는데, 그 후 집안에서 친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게 되자 그 기회에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실패했다. '유전자 20가지 중에서 4가지가 달라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울먹이면서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애태우며 눈물을 흘리는 4‧3유족이 너무 많습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이분들의 눈물을 닦아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4‧3특별법은 위원회 결정으로 호적 정정을 하되, 그 절차는 대법원규칙을 따르도록 대법원에 위임했습니다. 이는 제가 오늘 대법원장님께 편지를 드리는 까닭입니다.
비상한 시국에 발생한 오류는 비상한 방법으로 해결해야…인우보증으로 정정
호적이 친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 밑으로 등재된 경우 외에도 많은 4‧3유족들의 호적에는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게 많습니다. 가령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신고도 미처 하지 못한 채 사실혼 관계로만 있을 때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엔 아귀를 맞추기 위해 어머니가 이미 사망한 남편이 살아있는 것인 양 혼인신고를 하고, 그 후에 어린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그 후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이 가장 흔한 사례일 것입니다.
이러한 호적 내용 때문에 최근에는 형무소 수감 중 사망한 4‧3수형인에 대한 유족들의 재심청구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해당 수형인이 4‧3사건이 끝난 후인 197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된 호적'과 아귀가 맞지 않아 형사보상금을 청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족들이 호적 정정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안은 채 변호사를 선임하고, 무덤 2기를 파헤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친아버지가 행방불명된 경우엔 무덤을 파서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4‧3 당시 마을이 깡그리 불타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극이 벌어졌고, 이런 일들이 7년 7개월 동안 지속됐던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4‧3사건 때문이 아니더라도 당시엔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하고 결혼하자마자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비상한 시국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한 오류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역시 비상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처럼 정상적인 상황을 상정해 소위 '법대로 하자.'는 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엔 요즘처럼 부동산 매매와 동시에 등기이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등기부등본상 토지 소유주가 사망하면 실제 토지를 샀던 사람이 뒤늦게 등기이전을 하고 싶어도 이미 죽은 사람과 매매계약을 할 수 없어 등기부의 불일치가 발생했고 정부에서 세금을 매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인우보증(鄰友保證)으로 부동산등기의 길을 터주었습니다. 물론 이때 남의 재산을 탐내어 허위로 매매주장을 하여 등기이전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당사자는 물론 인우보증을 섰던 사람들까지 처벌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었지요.
4‧3희생자 및 유족의 잘못된 호적의 정정도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을 준용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친아버지와 친아들의 부자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친척입니다. 친척들의 인우보증으로 호적을 정정할 수 있도록 대법원규칙을 개정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고의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제주4‧3 당시의 실정을 잘 헤아려 대법원규칙을 개정해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법부의 정의를 위해 더욱 애써 주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이 글은 제주의소리에 함께 실렸습니다.
필자 김종민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전 제주신문과 전 제민일보에서 취재기자를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4.3 현장취재와 4.3중앙위 전문위원으로서 지난 30년을 오롯이 제주4.3의 진실규명에 천착해온 대표적인 4.3 전문가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 자료집> 전11편 편찬에 참여, <4.3은 말한다> 전6권 집필에 참여했다. 현 국무총리 소속 4.3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고 주경야독하며 고향 제주에서 농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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