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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그날 친구를 배웅하러 갔을 뿐인데"…순천 묻지마 살인사건 후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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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그날 친구를 배웅하러 갔을 뿐인데"…순천 묻지마 살인사건 후 6개월

아버지, 휠체어에서 눈물의 탄원서 제출…베트남 출신 어머니, 자궁 근종 치료 거부한 채 '시름'

"딸은 단지 친구를 배웅하러 나간 거예요. 그리고…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24년 9월 26일 밤.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서 길을 걷던 17세 여고생 A양이 무차별 흉기 공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A양은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평소와 다른 길로 1㎞ 남짓을 걸었다. 그녀를 뒤따라간 가해자 박대성은 길 한복판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고 A양은 주차장 아스팔트 길 위에서 쓰러졌다.

▲순천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사망한 A양이 잠들어 있는 순천의 한 추모공원에 추모객들이 참배하고 있다.2025.04.08ⓒ프레시안(김보현)

"딸이 죽기 10분 전쯤, '딸이 죽는다'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어요. 설마 했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A양의 아버지 B씨는 아직도 그날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하늘에서 소리를 듣자마자 딸에게 전화했더라면…'

딸의 친구는 B씨에게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전했지만 마주하게 된 현실은 훨씬 더 버거웠다.

B씨는 "6개월 동안 몸도 마음도 다 망가졌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다. 이달 안으로 수술도 예정돼 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었지만 여전히 걷기가 어렵다.

딸의 방은 여전히 그날 이후 책상만 치웠을 뿐 사건 후 그대로다. B씨가 기억하는 딸은 붙임성이 좋아 전국 곳곳에 친구들이 있고 명문대를 꿈꾸며 공부하던 밝은 소녀였다.

딸의 장례식장에 친구가 많이 찾아와 장례비용이 예상보다 200만원은 족히 더 나왔다고 했다. B씨는 감사한 마음에 딸의 친구들에게 밥도 사주고 교통비도 챙겨줬다.

하나 뿐인 딸을 잃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역시 삶의 의지를 잃었다. 사건 후 자궁 근종과 갑상선 결절을 진단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B씨가 기억하는 딸은 늘 자신보다 아버지를 먼저 챙기던 아이였다. 밥상을 차려주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딸.

바다를 좋아했던 딸을 위해 코로나 시기가 겹쳐 유일하게 못 간 제주도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안 가 본 바닷가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의 눈에는 딸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내내 눈물이 가득 고였고 끝까지 울음을 참았다.

▲피해자 유족이 항소심에 제출한 탄원서 출력본 일부.2025.04.08ⓒ유가족

올해 1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 박대성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사형이 정당화될 특별한 사정이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B씨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해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다. 2심 선고일에도 다시 법정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가 꾹꾹 눌러 쓴 여러장의 A4용지에는 딸을 잃은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담겨 있다.

그는 "딸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는데, 살인자는 법정에서 선처나 구하고 있는 이런 현실이 말이 되냐"며 "사형이 아니라면, 이걸 누가 멈출 수 있냐"고 가슴을 쳤다.

B씨는 사건 당일, 순천과 광주의 병원을 전전했다. 병실에 보호자조차 들어가지 못했고, 광주 병원에선 딸의 등에 찔린 칼자국에서 거즈도 없이 피가 흘러내리는 장면을 그대로 마주해야 했다.

"등에 거즈도 없이 피가 그대로 흐르고 있었어요. 광주까지 갔는데도… 딸의 죽음이, 딸의 몸이,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A학생과 아버지 B씨가 자주 산책 나왔던 공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내기를 했고 늘 딸이 이겼지만 딸은 아이스크림을 먼저 사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프레시안(김보현)

"절대 포기하지 말자. 절대 주저앉지 말자. 다시 일어서자."

딸이 자주 하던 말이다. B씨는 지금도 이 말을 붙잡고 버틴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딸의 사진을 차 운전대 앞에 두고 다닌다. 딸이 좋아하던 바다를 따라 전국을 돌던 날들, 딸의 어린 모습, 밝게 웃는 딸,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속 또렷한 눈빛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

"딸은 언제나 함께 있어요. 해가 저물면 딸 아이 방 불을 켜고 해가 뜨면 불을 끕니다. 잘 자라고 인사도 해요."

B씨는 수술을 마친 뒤 항소심 선고를 보고, 딸이 잠든 추모공원에 가서 떳떳하고 건강하게 인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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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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