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지만 정작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4.2 재보궐 선거 직후인 이달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급한 내용의 한 대목이다.
이 전 대표는 전남 담양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에 민주당이 패배한 것과 관련해 "담양의 민심은 더욱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이번 선거기간 동안 많은 호남의 시민들께서 '매번 민주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지만 정작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호된 질책을 내려주셨다"고 썼다.

민주당은 전남 담양군수 재보선에서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김민석·김병주 최고위원, 박지원·주철현·양부남 의원 등 굵직한 인사들에 대거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장철원 후보를 낸 조국혁신당에 호남 기초단체장 1석을 내주었다.
민주당의 양지 텃밭인 호남에서 담양군수 자리를 내준 것은 자칫 내년 6월 3일에 있을 '제9회 지방선거'의 암울한 전조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당의 중진들이 총력전을 경주했음에도 호남의 한쪽이 맥없이 무너졌고 이재명 전 대표마저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할 정도로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조국혁신당의 1호 단체장 배출은 전북 정치권에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당장 조국혁신당 전북자치도당에는 차기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입지자들의 축하 전화가 쇄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지역 승인이 전북 등 호남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섞인 축하 메시지였다.
조국혁신당 소속의 한 입지자는 "지난해 하반기에 있었던 전남 영광·곡성군수 재보선에서 기대를 모았던 조국혁신당 후보가 낙선할 때만 해도 충격이 심했다. 민주당 아성을 깨기 힘든 것 아니냐는 불안감과 좌절감이 컸다"며 "하지만 담양군수 선거를 통해 혁신당의 '가능성 지평'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이 입지자는 "담양군수 선거 승리는 혁신당에 단순히 기초단체장 1석을 안겨준 것이 아니라 입지자 전체에게 희망을 부여한 것"이라며 "21대 조기대선 이후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할 경우 혁신당에 노크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사실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이반 조짐은 담양군수 선거가 처음은 아니다. 정확히 1년 전인 작년 4월의 22대 총선에서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기도 했다.
전북의 경우 지난해 4월에 진행된 22대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내걸 민주당이 10석의 지역구를 모두 석권했지만 정당지지율에서는 37.6%에 불과해 조국혁신당(45.5%)에 한참 밀렸다.
물론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를 뽑고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선택하자는 이른바 '지민비조'의 신조어가 떠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정당 지지율을 양보한 것도 아니었다.
이를 놓고 "만약 조국혁신당이 전북에 총선후보를 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확대해석까지 나오는 등 설왕설래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상처투성이의 전북 민심이 있었다.
전북은 22대 총선 직전 해인 2023년 8월 '새만금잼버리 대회'의 파행 이후 새만금 관련 예산이 78%나 삭감되는 수모를 당했고 주요 SOC 사업은 재검토의 늪에 빠져 8개월을 허송하는 최악의 상황을 목도했다.
중앙정치권의 논란에 22대 총선 직전까지 전북 10석 붕괴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등 곳곳에서 전북 정치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인 22대 총선은 '정권심판론'이 지배했고 전북에서도 민주당 인물을 뽑되 정당까지 표를 몰아줄 순 없다는 심리가 작동해 혁신당 정당 지지율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아무튼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전북의 10석을 무난히 손에 쥐고도 정당지지율에서 혁신당에 대패했다는 점에서 뼈아픈 충격이었다. '숨어있는' 민심이반은 언제든지 용암처럼 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2024년 총선에서 정당 지지율을 혁신당에 내주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민주당의 호남 분석 결과가 바로 올 4월의 담양군수 재선거 패배로 이어진 것"이라며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가면 올해 조기대선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 해도 내년 지방선거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40대의 K씨는 "지난 30년 동안 민주당이 전북을 장악했지만 전북은 인구절벽을 마주하는 등 쇠락의 길을 걸어왔고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주변의 푸념이 많다"며 "민주당이 더 이상 전북과 호남을 '잡을 물고기'라고 생각한다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최전방에 섰던 전북시민단체는 완벽한 정권교체를 위해 총력전을 경주하고 있다. 친명계의 대표적인 조직인 더민주 전북혁신회의 등 원외 조직도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전북지역민들은 21대 대선과 함께 정확히 1년 이후에 치러질 내년 6월 3일 제9대 지방선거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50대의 S씨는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낙후 전북의 변화와 지역민들의 삶이 바뀌는 전기가 마련되길 희망한다"며 "수도권이 아닌 지방, 지방에서도 낙후지역 주민의 삶이 바뀌면 국민 전체의 삶이 바뀌는 것인 만큼 균형발전의 획기적인 발판이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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