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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할 때만 되면 '보수의 심장'이라는 담론으로 호명되는 대구….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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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할 때만 되면 '보수의 심장'이라는 담론으로 호명되는 대구…. 이대로 괜찮은 걸까?

[김욱한 칼럼] '대구'를 지칭하는 화려한 수사는 정치인들의 셈법이 만든 환상인가, 역사적 실체인가

영화에 장르가 있듯이 선거에도 장르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장르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상투적이고 세속적인 의미의 장르다. 흔히 말하는 장르물 영화는 수없이 반복되어 온 문법 속에서 스토리와 스타일을 끝없이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상업영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보수의 심장' 대구, 이대로 괜찮나?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선거는 바로 이런 장르 영화의 속성을 닮아있다. 우리나라의 선거판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장르들을 열거하자면, 인물론·일꾼론·개혁론·경제론·서민론·대세론·계승론 등등 아주 친숙하고도 익숙한 담론들이 넘쳐 난다.

그런데 이런 장르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담론이 '지역론'이 아닐까 싶다. 이 지역론 장르 속에서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클리셰'로 기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보수의 심장, 대구' 혹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 등등의 마법의 단어들이다. 그리고 이 마법의 단어와 같이 등장하는 장소가 '서문시장' 과 '금남로'이다.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악숙한 풍경이다.

서문시장은 전 국민의 명소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시장이 불쑥불쑥 유명해지는 이유는 선거가 한창일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방문 기사를 신문과 방송으로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과 총선의 고비마다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늘어나고, 뉴스에서는 이곳 상인들의 선거 품평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차지한다. 너무 오랫동안 봐왔던 익숙한 장르 혹은 장면이 아닌가.

선거철마다 보수는 집토끼를 잡기 위해 대구를 향한 오랜 애증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내뱉는다. 그리고 진보는 보수 세력에게 향할 그 몰표가 두려워 너나없이 대구의 정신을 추켜세운다. 여기까지는 보수의 심장을 가진 대구 시민들에게 뿌듯한 자부심을 선사하는 스토리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이 가질 수밖에 없는 허탈함과 씁쓸함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선거가 끝난 뒤의 대구는 선거 이전보다 더 큰 공허를 마주한다. 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거의 주인공은 시민이어야 하지만 정치와 선거는 그렇지 않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언변과 극적인 연기를 보여준 위정자들이 주인공 노릇을 하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타자화된 개체의 시선으로 텅 빈 무대를 지켜볼 뿐이다. 그들은 서울로 떠나고 못난 소나무는 또다시 선산을 지키며 살아간다.

▲서문시장 댜간 유세 현장 ⓒ연합뉴스

요즘은 '보수의 심장' 이라는 표현을 넘어 '보수의 성지' 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반복되는 장르를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이고 새롭게 보일까 고민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만든 수사일 것이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본다면 대구는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쳐 분단 이후 군사 독재가 장악하기 전까지 진보의 성지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1907년 일제에 맞선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 바로 대구의 중앙로였으며, 미군정의 수탈에 맞선 10월 항쟁도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승만 독재 정권에도 번번이 맞섰고, 1960년 자유당 부정선거에도 맞선 곳이 대구였다.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의 2·28 의거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28 민주운동 자료 사진 ⓒ2·28 민주운동 기념사업회 제공

대구가 진보의 성지인지 보수의 심장인지 판별하는 것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니 잠시 미뤄두고, 지금은 정치권에 영수증을 내밀 때이다. '보수의 심장' 이라는 말의 성찬은 배부르게 먹어왔지만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살림살이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헌사가 부끄러울 정도로 활력을 잃고 박동이 멈출 지경까지 왔다. 이제는 우리가 정치권과 주고 받은 계산을 냉정히 정산해야 한다.

대구와 서문시장에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연단이 아니고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이다. 선거 때만 구애를 일삼는 정치인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또다시 똑같은 장르 영화를 때 묻은 영사기 돌리듯이 틀어 댈 것이다.

여러 번 본 영화를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다시 보고 나서 맥 없이 돌아서서는 안된다. 그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들 하나 하나를 기록하고 그 표정과 몸짓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과 행동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다시는 영화판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식상한 영화는 조금 더 재밌게 진화하지 않을까?

앵콜도 한 두 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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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

대구경북취재본부 김욱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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