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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추방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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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추방할 권리가 없다

[기고]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은 비판을 수용해야만 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저한 <공산주의 선언>의 첫 줄이다. 그때 공산주의는 아직 실체 없는 망령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배계급을 불안하게 만들고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예감으로 유령처럼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유령은 곧 피로 물든 혁명의 실체로 나타났고 이후 냉전과 분단, 전쟁과 이념 대립을 통해 세계사의 한 시대 속에 실제로 존재했으며 이내 유령처럼 다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모두가 믿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마르크스 경제학이 점차 대학에서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는 수요 부족으로 인해 강좌 폐지를 결정할 태세다. 이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단순한 학문 영역의 축소, 혹은 커리큘럼의 개편이 아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살면서 아직 답하지 못한 미완의 질문들과 치유하지 못한 아픈 상처들을 그만 모른 척 덮어두고 그저 방치하겠다는 무책임한 선언과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위기를 낳고 또 그 위기를 스스로 봉합하며 스스로 연명하는 체제임을 간파했다. 소외된 노동, 반복되는 위기, 그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잔인한 승자의 독식, 그리고 그 독식이 초래하는 인간성의 몰락 등은 모두 마르크스가 이미 꿰뚫어 본 세계이며 이에 대해 자본주의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도 그가 꿰뚫어 본 그대로의 세상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 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경제의 수단이 되어도 좋은가?"

이 질문에 자본주의는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단호하게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 때만이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논한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내쫓을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을 찾지 못한 질문은 반드시 비판을 수용해야만 한다!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비판조차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념의 독단이자 폭력이 아닐 수 없으며 학문과 이성의 후퇴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부자를 꿈꾸며 '경제적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영끌’로 끌어 모은 대출 위에 세운,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그저 위태로운 ‘사상누각’ 위에 서있을 뿐이다.

너도나도 ‘갓생’을 산다는 말로, 실상은 태풍이 몰아붙이는 것만 같은 무한 경쟁 속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음을 애써 포장하고 있지만, 그 포장 아래 가려진 진실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소모와 불안’임은 깨닫지 못한다. 새벽부터 괜히 일찍 일어나 이단 종교의 주문처럼 외우는 "나는 100억 부자가 될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펴고 성스럽게 적어 내려가는 반복되는 주문 "나는 건물주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공허한 행동들의 강박적 반복이 '미라클 모닝'이라는 미명 아래, 무차별한 경쟁에 스스로 내몰린 안쓰러운 청년들의 위태로운 꿈을 지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무너지고 이뤄지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그들이 경쟁에서 도태됐거나 그들에게 운이 심하게 따라주지 않았을 때, 그들의 욕심이 화를 불러 오히려 그들이 주저앉게 되었을 때,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았던 그 거룩했던 ‘100억 부자의 꿈’은 오히려 악귀가 되어 그들을 잠식할 것임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그런 아름다운 꿈과 처절한 악몽 사이를 영원히 반복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누군가는 반드시 가르쳐줘야만 한다.

위기가 기회가 될 때 악귀처럼 더욱 잔인해지는 인간의 본능을 개인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면, 극한의 경쟁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의 연대의식이 자발적으로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조적으로라도 반드시 그 소외된 자들을 우리 사회의 제도권 안에 붙들고서 그들과 더불어서 함께 끌고 나가도록 강제해야만 한다. 아울러 그 도태되고 나약한 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안전장치를 제도화하여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온전히 건강한 공동체를 완성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누구나가 이런 생각을 당연하게 할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구천을 떠도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내쫓을 수 있을 것이다.

세금에 대해 "내가 번 돈을 국가가 왜 빼앗아 가느냐?"는 멍청한 소리를 아무도 하지 않을 때, 없이 사는 사람들을 향해 벌레라는 의미를 가진 접미어인 '충'을 붙여 부르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땅을 배회하고 있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단호한 퇴마식을 거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우리는 마르크스를 대학에서 내쫓을 자격이 없다.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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