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조국혁신당 고위당직자 A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피해사실을 접수한 이후에도 A씨와 피해자 B씨 등을 한 자리에 모아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방지 교육'을 진행하려 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분리 조치와 피해자 보호 등 후속 조처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혁신당은 지난달 28일 한국능률협회에서 정무직 당직자를 포함한 당내 당직자 전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방지 관련 안전한 조직문화 교육'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고위 당직자인 A씨와 피해를 제기한 B씨 등 정무직을 포함한 중앙당 상근자들 모두가 필수 참석 대상이었다.
앞서 혁신당은 A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B씨를 두 차례 추행하고 성희롱 발언을 지속했다는 제보를 지난달 14일 구두로, 같은달 17일에 서면으로 접수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고위당직자 C씨의 성 비위와 직장 내 괴롭힘 등 두 건의 사건도 추가로 접수했다. 서울경찰청은 A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지난달 28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은 관련 피해사실을 인지하고도 A씨와 B씨를 한 자리에 모아 '성희롱 방지 교육'을 진행하려고 한 셈이다. 교육 당일 A씨는 참석했지만, B씨는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다. B씨 측은 "성희롱 방지 교육에 참석하려면 사건 관련자의 얼굴을 보아야 하는 상황이 모욕적이고 기만적으로 느껴졌다"며 "분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당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제보했던 D씨도 가해자로 지목한 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자 이날 교육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선민 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 측은 이들을 한 자리에서 교육을 받도록 한 상황에 대해 "그것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죄송하다"며 "신고가 들어온 이후 당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교육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분들은 (교육에) 안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분들과는 겹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혁신당의 사건 진행 대응이 신속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혁신당은 사건 접수 15일이 지난 지난달 29일에야 관련 조사를 진행할 법무법인을 확정했다. 성폭력 처리와 관련한 당내 전담 기구가 없고, 관련 당헌·당규가 정비되지 않았기에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당 측은 설명한다. 또한 당이 성폭력 신고를 접수한 지 약 2주 만인 전날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당직자 A씨를 직무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사건 조사 주체 문제에 대한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당은 최초에는 B씨 측이 추천한 법무법인을 조사기관으로 선정됐다가 '정무적 이유' 등을 들어 다른 법무법인으로 조사기관이 변경, B씨 측이 이의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재관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전날 국회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의 조치가 부족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선 겸허하게 수용하고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다만 당에서 인지할 수 있던 내용에 극히 한계가 있던 점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4월14일 신고를 받고 15일 당 윤리위원회에 사건을 직회부했고, 윤리위를 통해 당사자 의견을 들어 외부기관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외부기관이 선정돼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조국혁신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국민의힘도 당 내에서 성폭력 사안들이 적지 않게 발생하는데 당규나 지침이 원활히 관리되지 않는것 같다"며 "국민들도 공당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성평등의 관점에서 알 권리가 있고, 정당별로 당내 내규와 메뉴얼이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도 "피해자가 수사기관 뿐 아니라 당에도 신고를 한 것은 당이라는 공동체가 성폭력 문제를 단호히 처리해주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라며 "당 안에서 성폭력 문제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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