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어린이날엔 진짜 놀이터 가요?”
익산의 한 초등학교 2학년 A군은 올해도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진짜 원하는 건 장난감도, 선물도 아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랑 놀이터에 가보고 싶어요. 근데 엄마는 한국말을 잘 몰라서 못 가요.”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모든 아이가 행복해야 전북이 웃는다”는 구호 아래 전북에서도 다양한 아동복지 정책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정책의 변두리에 놓인 아이들이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다문화 아동 비율을 가진 전북이지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는 통계가 아니라 아이입니다”…전북 다문화 아동 9010명
전북도교육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북지역 초·중·고교 재학생 17만8795명 중 다문화 학생은 9010명(5.03%)이다. 2022년 4.36%(8228명), 2023년 4.71%(8664명)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수치다. 이 가운데 약 91.4%는 국내 출생이지만, 최근에는 중도입국 학생과 외국인 부모를 둔 아동의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언어·문화 장벽 탓에 복지 참여, 학습, 또래 관계 형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10명 중 1~2명은 다문화 아동”… 농촌 소멸 막는 아이들
전북 다문화 학생의 65.4%는 전주, 군산, 익산, 정읍, 완주군 등 5개 시군에 몰려 있다. 그러나 비율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장수(17.3%), 진안(17.0%), 임실(17.0%) 등 인구소멸 우려 지역일수록 다문화 아동 비율이 현저히 높다. 한 학급에 10명 중 1~2명이 다문화 가정 아동일 정도다.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농촌 학교들이 다문화 가정 아동들로 버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에서 운영되는 정책은 대부분 센터 중심의 일회성 행사나 기초 한국어 수업에 그쳐, 실질적인 돌봄이나 통합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 교사와 학부모들은 놀이, 정서 지원, 부모 참여, 복지 연계 등 일상 속 통합 돌봄을 요구하지만,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행사가 있다고요?”… 어린이날조차 소외되는 아이들
전북지역 대부분의 지자체는 어린이날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와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 아동들에게 이 축제는 반갑지만은 않다. 정보 접근부터 신청 과정까지 진입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정보의 벽이다. 다문화 가정의 많은 부모가 어린이날 지역 행사나 복지 정보 자체를 알지 못한다. 알아도 언어장벽 탓에 신청이나 참여가 쉽지 않다.
익산에서 활동 중인 한 다문화 지원단체 관계자는 “이주 여성들은 지역 안내문을 읽기 어렵고, 사전 신청 절차도 익숙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행사 참여는커녕 존재 자체를 몰라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장벽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친구들이 행사에서 받은 선물이나 다녀온 이야기로 들뜬 사이, 일부 아동은 “나는 한국 어린이가 아니라서 못 간다”는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또 다른 다문화 가정 아동은 “선물이나 체험이 부럽다기보다, 왜 나만 빠졌는지 모르겠는 게 속상하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같은 지역에서 함께 자라고 있지만, 정작 ‘지역 아동’으로서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보편적 아동 정책’이 다문화 아동에게는 여전히 비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라진 ‘차이’… 보편 복지 속에서 배제되는 아이들
전북자치도는 올해 아동복지사업에 총 2375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운영, 드림스타트, 급식 지원, 자립정착금 지원 등 아동 전반을 아우르는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 대부분은 ‘보편 아동’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다문화 아동이 처한 특수한 현실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 아동은 언어, 문화, 심리, 가족구성 등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갖고 있지만, 이를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나 별도 안내체계는 극히 드물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아동에게 열려 있지만, 실질적인 접근성은 낮은 셈이다.
전북지역 다문화 아동 지원 활동가는 “드림스타트나 아동급식카드 같은 복지 제도는 다문화 아동에게도 원칙적으로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언어 장벽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부모들이 제도를 이해하거나 신청서류를 준비하는 데 부담을 느껴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제도의 울타리 밖에 머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 정책은 있는데, 아동정책은 없다
전북 14개 시·군에는 모두 다문화가족지원을 위한 가족센터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들 기관의 주요 기능은 여전히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한 부모 대상 상담·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단발성 문화체험 행사나 한국어 보완 수업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정서 지원이나 일상 돌봄으로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전북 진안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정작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 사이에서 언어·문화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심리 상담이나 놀이·돌봄 서비스는 거의 전무하다”며 “특히 중도입국 아동이나 국적 취득 전 아동은 행정적 신분 미비로 인해 각종 서비스에서 배제되기 쉬운 구조”라고 우려를 표했다.

보편 복지, 그러나 비보편적 접근
전북도는 드림스타트, 지역아동센터, 방과후 돌봄, 급식카드 등 다양한 아동복지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보편적 아동’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다문화 아동의 특성과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다문화 아동은 언어와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제도적 지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북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관계자는 “다문화 아동도 제도상 복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만, 언어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실제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특히 부모가 외국 국적인 경우 행정서류 작성부터 상담 과정까지 진입 자체가 어렵다. 이러한 장벽은 다문화 아동들이 필요한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다문화 아동들이 복지 서비스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언어·문화적 접근성을 고려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날, 다문화 아동들도 그저 ‘한 명의 아이’로서 차별 없이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전북의 현실은 여전히 이들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제도적 존재 확인을 넘어, 다문화 아동이 정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접근과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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