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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이 말하는 성장과 통합 담론이 은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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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이 말하는 성장과 통합 담론이 은폐하는 것

[시민건강논평] 민주주의와 정치의 상상력을 넓히자

조기 대선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정치권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으로 요동치고 있다. 각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비판이 쏠리는 과정에서 사법부와 검찰 등 기존 국가 권력 기관의 통상적이지 않은 권력 행사에 대한 불만, 비판, 개혁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권력 기관 개혁은 단지 정치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집권 이후의 국정 비전과 방향,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는 정책들에 대한 관심과 검토 역시 절실하다.

이재명 후보는 국정 비전으로 '성장'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이나 구체적인 실현 과정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 키워드들이 여전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덕수 전 총리도 '통합'을 언급하고, 김문수 후보 역시 '성장'을 강조한다. 정당이나 후보들 간 뚜렷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공약이나 비전이 예술작품처럼 창의성이나 신선함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것, 그리고 대중이 원하게 만들고 싶은 것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지금의 유사성은 사람들의 인식과 담론의 지형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 후보의 국정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 담론 지형에서 '상식'이 되어버린 '성장'과 '통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경제 성장은 수십 년 간 한국에서 통치 정당성의 핵심적 논리였다. 이는 한국 사회의 물적 토대를 구성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민주주의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불평등의 핵심이기도 하다. 국가 경제 성장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 뭉뚱그려 이야기되며 오랫동안 불평등과 착취를 가려왔다. 예컨대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중공업 중심의 자본집약적 성장 전략은 비수도권 농민들이 저곡가정책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강요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이념 없는 '실용주의'를 내세워 경제 성장을 도모하자고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념이며 현재 구조가 감추고 있는 문제들을 외면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 성장 담론과 밀접한 것이 기술 혁신 담론이다. 한국이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 경제를 위협한다는 위기 담론은 '기술 혁신'을 요구하는 배경이 된다. 이런 위기감이 강조되는 맥락에서 추진된 반도체특별법은 장시간 노동 문제뿐 아니라 재벌 대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고 책임을 면제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추상적으로 언급되는 성장이 누구를 벼랑끝으로 내모는지, 누가 그 혜택을 독점하게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술 혁신이 곧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는 전제는 타당한가. 이때 말하는 기술 혁신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비자본가의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은 자본 성장에 기여하는 기술만을 의미한다. 자본이 이윤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대체하는 기술도 '혁신'으로 인정받지만 삶의 질이나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어도 시장성이 낮은 기술은 주변화된다. 공공성, 돌봄, 문화 등의 영역에서 혁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신의료기술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안전성 검증도 미비한 채 시장에 진입하지만 말라리아나 결핵처럼 글로벌 사우스에서 절실히 필요한 신약 개발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다. 이처럼 현재 기술 혁신의 목적은 자본 성장이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 통합'은 발전국가 모델의 주요 수사였다.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목표 아래 강조되어온 개념이다. 친위 쿠데타와 극우 세력의 부상 이후 내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통합'은 또 다른 의미로 호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통합의 작동 방식은 우려스럽다. 통합을 내세운 유력 후보가 독재자를 참배하고, 선거대책위원회에 용산참사를 모욕한 인물을 포함시키며 반대 정당 출신 인사 일부 기용하는 것이 실질적 통합의 전부일 수 있다. 즉, 통치를 위한 기득권 간 통합일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는 '통합'이 수사로서만 작동할 것이라 짐작한다. 통합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통합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건강하고 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국민 뿐이었다.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몸, 필수노동을 맡은 이주노동자는 통합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통합은 대립을 끝내자는 명목으로 비판적 목소리와 주변화된 계층을 다시 주변으로 몰아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척하며 문제 제기를 무력화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합리적이고 공정한 중재자인것마냥 노동자가 자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이유 없는 불신으로 취급하고 갈등을 덮어버리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유력 정당들이 내세우는 개헌이나 개혁이 그럴듯한 수사를 덧입고 있더라도, 그 핵심은 기득권 내부의 재편 이외에는 권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사람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이 상식에 균열을 내는 것이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복지국가 담론이 지금보다 힘을 발휘했던 시절, 보수 정당조차 무상급식과 맞춤형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듯이 평등, 차별금지, 생태, 일터 민주주의 등이 상식으로 자리잡게 만들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조기 대선을 기존의 상식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담론 지형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로 전환해야 한다.

거대 정당들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4월 30일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후보로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선출됐다. 지난 겨울 광장의 외침을 정치로 옮기기 위해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통합 후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게 되면서 '좌든 우든 뒤로만 가지 말자'는, 이미 뒤로 간 담론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이 양극화와 불평등, 분배, 복지, 기후위기, 차별금지법 등을 말하는 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차별성이 큰 이들의 가치와 비전, 정책은 단순히 선택지를 하나 추가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치의 상상력을 넓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당선 여부를 떠나 많은 관심이 뒷받침 된다면, 점차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흐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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