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친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추락 사고와 관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러시아가 국제항공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네덜란드와 호주는 ICAO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러시아에 배상을 촉구했다.
12일(이하 현지시간) ICAO는 "이사회는 오늘 러시아가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 격추 사건과 관련하여 국제항공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표결했다"며 "이는 ICAO 역사상 이사회가 분쟁 해결 과정에 따라 회원국 간 분쟁에 결정을 내린 최초의 사례"라고 전했다.
ICAO는 "이사회는 2014년 7월 17일 MH17편 격추 사건과 관련하여 호주와 네덜란드가 제기한 주장이 사실관계와 법률상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인정했다"며 "이 사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로 항공기를 격추한 행위가 국제민간항공협약 제3조 2의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1944년 체결돼 이른바 '시카고 협약'으로 알려진 국제민간항공협약의 제3조 2의 a항에는 "체약국은 모든 국가가 비행 중인 민간 항공기에 무기를 사용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ICAO는 "이 절차에는 여러 차례의 위원회 회의에 걸쳐 서면 의견 제출과 구두 심리가 포함됐다"며 "위원회의 결론에 도달한 사실 관계와 법률적 근거를 명시한 공식 결정문은 향후 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MH17편 추락사고는 당시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을 출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국제공항을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소속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을 지나가는 중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이다. 이 사고로 승무원을 포함해 탑승객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해당 여객기가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만큼 희생자 중 네덜란드 국적자가 19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말레이시아 국적자가 44명이었고 말레이사아를 경유해 호주로 가는 항공 루트가 자주 이용된다는 특성으로 인해 호주 국적자도 27명이나 있었다.
이에 네덜란드와 호주는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책임을 추궁했고 이 두 국가와 함께 말레이시아, 벨기에, 우크라이나 대표단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JIT)이 사건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3월 네덜란드와 호주는 ICAO에 러시아를 공동으로 제소했고 그해 11월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 법원은 관련자 3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의 전 민병대 지도자 이고르 기르킨(Igor Girkin)과 그의 부하 세르게이 두빈스키, 레오니드 하르첸코였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다른 피고인으로 기르킨의 부하 올렉 풀라토프가 있었는데, 그는 유일하게 변호인단의 변호를 받았고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당시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선고 이후 러시아 측은 자국민인 이고리 기르킨과 세르게이 두빈스키를 네덜란드에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사고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발표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2023년 네덜란드와 호주, 말레이시아, 벨기에, 우크라이나의 국제 조사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MH17편 격추에 사용된 미사일 공급 결정에 직접 서명했다는 "강력한 징후"가 있다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나섰고, 네덜란드와 호주는 이날 ICAO 이사회의 결정을 강조하며 러시아에 배상 협상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카스파르 벨트캄프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12일 "ICAO 이사회의 이번 결정에 매우 만족한다. 무엇보다도 MH17편 격추 희생자 유족들에게 이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결정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진실을 규명하고 MH17편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와 책임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벨트캄프 장관은 "ICAO 이사회는 앞으로 몇 주 동안 어떤 형태의 배상이 적절한지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네덜란드와 호주는 ICAO 이사회가 러시아가 네덜란드 및 호주와 협상에 참여하도록 명령하고, 이사회가 이 과정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니 웡 호주 외무장관 역시 "호주 정부는 ICAO 이사회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 위반 사항에 대한 구제책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이 끔찍한 폭력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직시하고 국제법에 따라 그들의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해 배상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측은 이번 결과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정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13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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