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다 읽는 데 두 달이 걸렸어요. 한국행 비행기에서 겨우 책을 덮을 수 있었죠. 읽을 때마다 울었고, 오늘 광주에 와서야 비로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앞두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일본인 부부가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3일 오전 추모관에서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사토 스스무(75)·사토 마유미(72)씨가 해설사의 군부독재 등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12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부부가 바로 찾은 곳은 흔한 관광지가 아니라 광주였다.

이들은 우연히 TV에서 흘러나온 영화 '택시운전사'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1980년 광주항쟁을 처음 접했다. 이후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일본어 번역판도 찾아 읽었다. 마유미 씨는 "소설 속 장면에 감정이 북받쳐 도저히 한 번에 읽을 수 없었다"며 "눈물 나서 책장을 넘기지 못해 전날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야 겨우 완독했다"고 했다.
스스무씨는 "저는 남자라 이틀만에 다 읽었지만 아내는 두달이 걸렸다"며 "아픈 역사를 잊지 않은 작품 덕분에 많은 것을 느꼈고 특별한 여행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해설사는 묘역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씨, 문재학 열사 등 의 사연을 설명했고, 부부는 이야기를 들으며 몇 차례 눈물을 훔쳤다.
당시 광주상고(현 동성고) 1학년생이던 문재학 열사는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모델로 도청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옛 전라남도청에서 마지막 항전 끝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마유미씨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이 체험한 특별한 경험을 표현하려 했다.
그는 "사연에 대해 듣고 묘역을 돌며 읽었던 책과 영화 내용을 떠올렸다"며 "'아, 영화 그대로였구나' 체감했다"고 말했다.
스스무 씨는 "1980년 당시 일본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천황까지 만나며 환대를 받았다"며 "나 역시 텔레비전에서 양 정상간 악수 장면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환영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안타깝다"면서 "그때 재일교포들만 광주를 위해 모금운동을 했지만 일반 국민은 광주 학살을 전혀 몰랐다"고도 했다.
마유미 씨는 "섬나라인 일본은 지정학적 위기감이 적고, 그래서 시민 저항운동이 약한 편"이라며 "광주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묘역에는 사토 부부 외에도 여러 지자체와 기관에서 참배와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광산중학교 1학년 학생 80여 명이 자율학기제 현장체험학습으로 방문했다.
문재학 열사의 묘 앞에서 오월해설사의 설명을 듣던 김예린 학생(13)은 "'소년이 온다'를 읽었지만 다 이해는 못했는데, 직접 와보니 상상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산중 학생들은 박금희 열사 묘역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박 열사는 헌혈차에서 헌혈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에 숨졌다. 한 학생은 "아픈 사람을 위해 헌혈하려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자체와 관공서 직원들도 헌화와 묘비를 닦으며 참배했다. 청소와 정리, 각 묘역에 태극기를 꽂는 등 봉사활동도 벌였다. 묘역은 주중임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14일 국립5·18민주묘지에 따르면 1월 8329명, 2월 6405명, 3월 8094명, 4월 1만2287명, 그리고 5월 1일부터 11일까지는 2만2676명이 방문했다. 지난해 5월에만 20만840명이 참배한 것을 고려하면, 45주년을 맞는 올해 5월 참배객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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