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일정에서 제외된 이스라엘이 이에 반발하듯 가자지구에 맹폭을 퍼부어 15일(이하 현지시간) 하루 만에 100명 이상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순방에 맞춰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며 휴전 협상 진전도 기대됐지만 여전히 교착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소유" 발언을 반복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3월부터 가자지구 식량 반입을 막고 있는 가운데 이달 말로 예고된 미국 주도 구호품 배분 계획도 도마에 올랐다.
미 CNN 방송을 보면 가자지구 민방위 대변인 마흐무드 바살은 15일 남부 칸유니스 중심부터 가자지구 북부까지 가자지구 전역에 걸쳐 이스라엘 공격으로 "100명 이상이 순교(사망)했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북부 자발리아에서 4명의 자녀를 포함해 일가족이 폭격 탓에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6명 전원이 사망한 이 가족의 아버지는 북부 베히트라이아의 카말아드완 병원 간호사였다고 한다. 바살은 주민들이 모여 있던 자발리아 진료소도 폭격을 맞아 1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자발리아에 위치한 알아우다 병원은 진료소 폭격으로 인한 부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찾은 CNN 통신원은 칸유니스에서 주택이 공습 당해 가족 1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피난 온 10대 소년 아흐마드 알사피는 방송에 "자고 있는데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순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의 공포를 회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순방을 진행한 이번 주 내내 이스라엘은 의료 시설을 포함해 가자지구에 맹폭을 가했다. 대피령도 거듭 발령해 유엔(UN)에 따르면 14일 기준 가자지구의 71%가 대피령 아래 놓였거나 군사 지역으로 지정됐다.
순방국 배제 외에도 미국은 최근 예멘 후티 반군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휴전해 이스라엘 홀로 후티와 맞서도록 내버려뒀고 순방에 맞춰 풀려난 미국인 인질 석방 협상도 이스라엘을 끼우지 않은 채 하마스와 직접 진행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영향력 확장을 꾀하는 상황에서 시리아 제재를 전격 해제하겠다고 밝히고 시리아 임시대통령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미국이 진행 중인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이란이 민간 부문 핵 능력을 일부 보존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이는 핵 역량 전체 폐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입장과 다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러한 상황 아래 중동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관객"으로 전락했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네타냐후 총리를 백악관의 첫 외국 지도자 손님으로 맞아 들이는 등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네타냐후는 트럼프가 분명히 원하는 단 한 가지, 가자지구 전쟁의 빠른 종식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 전쟁을 끝내지 않음에 따라 트럼프 1기의 대표적 외교 성과인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 확장도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군 작전 부서를 지휘했던 이스라엘 지브가 이러한 공격 강화가 설사 순방과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항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가자지구 소유" 발언을 반복하며 하마스를 자극했다. 휴전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없는 행위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카타르에서 열린 기업인 행사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매우 좋은 구상이 있다. 그곳을 자유지대(freedom zone)로 만들고 미국이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미국이 그곳을 소유하고 접수해 자유지대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사실상 서 있는 건물이 없는 항공 사진"을 봤다며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살고 있는데,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가자지구를 미국이 가자지구를 소유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마스 간부인 바셈 나임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종전 및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필요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서도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땅의 필수적 부분으로 시장에 내 놓은 부동산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마스는 12일 마지막 미국인 인질이었던 에단 알렉산더(21)를 석방했지만 휴전 협상엔 진전을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CNN은 이스라엘 당국자가 15일 카타르 도하에서 이뤄지고 있는 협상에 아무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전날 중재국인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타니 총리는 CNN에 알렉산더 석방이 "돌파구"가 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협상 대표단을 파견하는 동시에 맹폭을 가하며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상에 조만간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자 주민 90%가 굶주리는데…미·이스라엘, 제한적 방식 구호 배분 예고
15일 하마스는 알렉산더 석방 뒤 "가자지구로 즉시 인도주의적 지원 반입이 시작될 것"을 미국 쪽과 합의했다며 구호품 반입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3월 초 1단계 휴전이 끝난 뒤 가자지구를 봉쇄해 식량 반입을 막고 있다.
유엔이 식량 불안 측정 지표로 삼는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의 이번 주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6만9500명이 오는 9월까지 최고 단계(5단계)인 "재앙적" 수준의 기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인구의 93%가 위기~재앙 수준(3~5단계) 기아에 처해 있는 상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지하는 구호품 배분 방식은 이미 유엔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그간 유엔 및 인도주의 단체들이 배포한 가자지구 구호품 상당 부분이 하마스로 흘러 들었다는 이스라엘 주장에 동조해 이들이 아닌 민간 기업들이 보다 제한적이고 통제된 방식으로 구호품을 배분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이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라는 조직을 통해 이달 말부터 실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방식 도입 땐 필연적으로 배급소 수가 줄어 굶주린 가자 주민들의 식량 접근성이 떨어지게 된다. 더구나 배급소 위치가 가자 남부로 제한되며 식량을 미끼로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 주민 밀어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지난주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 마거릿 해리스는 "우리 구호품은 (가자지구) 보건 시설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며 이스라엘 주장을 일축하고 "구호품 전달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유엔 인도주의 담당 사무차장 톰 플레처는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이 정책이 "구호를 가자지구 일부로 제한한다"며 이는 "더 큰 폭력과 이주를 가리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방식이 "구호를 정치적·군사적 목적에 따른 조건부로 만들고 기아를 협상패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유엔은 이 구호 계획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파르한 하크 유엔 사무총장 부대변인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 계획이 "공평성, 중립성, 독립성 등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우린 여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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