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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야구 유니폼에 없고 라이칭더 야구 점퍼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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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문수 야구 유니폼에 없고 라이칭더 야구 점퍼에 있는 것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감흥 없는 메시지는 실패한다

야구가 선거의 이슈가 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그랬다. 당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에게는 악재가 겹쳐 있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시절과 다른 입장을 대선을 앞두고 내세워 그의 정치적 소신에 대중적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 가문의 상속자와 재혼을 했다는 사실도 그의 여론에 악영향을 줬다.

그 와중에 케리 후보의 상원의원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주를 대표하는 야구 팀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보스턴의 우승 효과를 누리기 위해 레드삭스의 모자를 쓰고 선거 유세를 펼쳤다.

케리 후보는 "레드삭스가 우승할 때까지 케리 후보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공화당 지지 성향 라디오 진행자의 말을 선거 유세에서 거론하며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대선에서 패했다. 그가 착용한 레드삭스 모자는 그저 선거용 소품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라이칭더의 '팀 타이완' 야구 점퍼

지난 해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후보는 초록색 야구 점퍼를 입고 선거 유세를 펼쳤다.

이 초록색 야구 점퍼는 일본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한 여성 화교 회장의 기부로 제작됐다. 민진당 선거 유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 야구 점퍼를 입고 선거 운동을 했다.

야구 점퍼의 뒷면에는 '팀 타이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타이완의 일치단결을 바라는 취지로 정한 문구였다.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가 된 뒤 정치인으로 변신한 라이칭더 후보는 열렬한 야구 팬이다. 단순한 야구 팬을 넘어 야구평론까지 하는 식견의 소유자다. 그는 사회인 야구 투수 수준으로 시구를 할 수 있는 야구 실력도 갖췄다.

그는 야구를 활용한 정치 메시지도 잘 던졌다. 그가 타이난(臺南)시 시장으로 재임하던 2013년, 타이완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 여명기에 대활약 했던 우창정(일본명 고 쇼세이) 선수의 아들과 그의 가족을 초청했다.

평소 타이완 야구의 뿌리는 일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라이칭더에게 우창정은 매우 상징적인 선수였다. '인간 기관차'로 알려진 우창정은 타이완에서 성장해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호타준족' 야구의 전설이었다.

타이완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는, 이른바 본성인(本省人, 명청시대 중국에서 타이완섬으로 이주한 한족의 후손)들은 일본이 타이완을 지배했던 시기에 타이완 최고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던 야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그 시대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타이완 야구 스타에게도 존경심을 표해 왔다. 타이완 야구 1세대 스타 우창정은 이 같은 타이완 본성인들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전통적으로 1945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들은 야구보다 농구와 축구에 관심이 많았고, 이들은 대부분 장제스 총통 시대부터 국민당을 지지해 왔다.

본성인들의 로망이자 타이완 정체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잘 보여주는 야구는 야구 점퍼를 입고 치열한 선거전을 펼쳤던 라이칭더의 승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야구 점퍼는 단순한 선거운동복이 아니라 본성인들의 표를 모으는 하나의 요인이었던 셈이다.

그는 선거에 승리한 뒤에도 타이완 야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총통 취임식에서 타이완 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스타 4명이 타이완 국가를 제창했을 뿐더러 지난 해 12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타이완 혈통의 홈런왕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도 초청했다.

심지어 라이칭더 총통은 타이완 야구 대표팀이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자국 500위안 지폐에 야구 대표팀 도안을 넣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해 화제가 됐다.

▲ 라이칭더(가운데) 대만 집권 민진당 후보가 남부 타이난시에서 진행한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아이스하키 유니폼에 캐나다 자존심 담은 마크 카니 총리

지난 3월 캐나다의 신임 총리가 된 마크 카니는 선거를 앞두고 자주 캐나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그가 하버드 대학시절 아이스하키 팀의 후보 골리(골키퍼)로 활약했다는 사실도 이 때 널리 알려졌다.

카니 총리가 아이스하키 유니폼을 입은 이유는 분명했다. 전임 캐나다 총리를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로 부르며 캐나다와의 관세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 대항해 캐나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캐나다의 국기(國伎)는 누가 뭐래도 아이스하키다.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도 미국이 아닌 캐나다 팀들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스포츠이자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캐나다 중앙은행과 잉글랜드 은행 총재를 역임한 경제통 마크 카니 총리가 아이스하키 유니폼을 입고 선거 운동에 나선 이유였다.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의 아이스하키 유니폼은 라이칭더 타이완 총통의 야구점퍼와 마찬가지로 선거용 복장으로 비쳐지지 않았다.

윤석열의 야구 사랑, 김문수의 야구 유니폼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시절인 2021년에 그의 모교인 충암고 야구부를 방문했다.

충암고는 그 해에 전국대회 2관왕에 올랐었다. 윤 전 대통령은 충암고 야구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같이 러닝도 하고 공도 던졌다.

그가 왜 선거 캠페인에 야구를 삽입했는지, 실제 대통령 선거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다만 그가 용산 대통령실 경내 대통령경호처 건물에 스크린야구장까지 설치했다는 소식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의 '야구 사랑'이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문수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번 선거 유세에 야구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김 후보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야구 유니폼을 공식 선거운동 복장으로 정했다는 게 국민의힘 측의 설명이다.

이 야구 유니폼이 김 후보의 역동적 이미지나 청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차림새가 아무리 '힙' 해도, "박정희 정신"에 방점을 찍은 그의 메시지를 젊은층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지난 시즌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올 시즌에도 역대 최소 경기 400만 관중 동원에 성공한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야구장을 야구만 보는 곳이 아닌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여기는 MZ세대들에게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김문수 후보의 야구 유니폼이 라이칭더 총통의 야구 점퍼나 카니 총리의 아이스하키 유니폼과 가장 다른 점, 그건 패션의 완성도를 떠나 옷과 말에 담긴 메시지의 어긋남에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인근에서 집중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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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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