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선에 출사표를 낸 주요 정당 후보자들이 인공지능(AI)신산업 육성공약을 내건 가운데 '디지털 인클로저(digital enclosure)'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12일, 주요 대선 공약으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산업 집중육성을 통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실현 등을 내걸었다.
'AI 대전환'(AX)를 통한 AI 3강으로 도약, AI 예산 비중 선진국 수준 이상 증액과 민간투자 100조 원 시대 개막,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 개 이상 확보 등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고용노동부 장관·경기도지사 시절 경험을 기반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창출'을 1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김문수 후보도 AI와 에너지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AI 전문인력 20만 명 양성, AI 산업에 에너지 공급을 위한 원자력 발전 비중 상향 등을 이행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에서 15세기 후반부터 일어났던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을 빗대 '디지털 인클로저(digital enclosure)' 현상과 그로 인한 일자리, 소득 양극화에 대한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5세기 후반에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은 양모산업이 발달하면서 지주들이 공동 경작지를 양을 기르기 위한 목초지로 전환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농민들을 농토에서 쫓아냈던 사태를 일컫는다.
이를 두고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풍자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양혁승 연세대 은퇴교수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우려를 제기하면서 "AI 경쟁력 투자는 보이는데, 디지털 인클로저에 대한 대비책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주요 정당 대선 후보들이 AI 기술경쟁력 강화를 앞다퉈 외치면서 초거대 AI, AI 반도체, 디지털 인재 양성 등 다양한 이름이 등장하지만, 기술 투자 중심의 공약은 모두 비슷하다. 문제는, 이 기술이 불러올 디지털 인클로저(digital enclosure) 현상과 그로 인한 일자리, 소득 양극화에 대한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기술은 도구적 합리성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며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전제하면서 "문제는 그 '효율'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대체할 수 있느냐는 기준으로 판단되기 시작할 때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자리는 줄어드는 구조라면, 기술혁신은 곧 인간 배제의 혁신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는 또 이를 "'디지털 인클로저'라고 비유하면서 "AI와 빅데이터를 소유한 소수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새로운 '디지털 영토'에 울타리를 치고, 거기서 생산된 가치를 독점하게 되는 구조"라고 짚었다.
양 교수는 특히 "AI가 반복 노동 뿐 아니라 지식 노동까지 대체하게 되면, 고용구조와 소득구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한쪽은 초격차 기술을 가진 소수 정예와 자본, 다른 한쪽은 기술에 밀려난 대다수의 중간층 이하로 양분될 것"이라고 봤다.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고 해서 민주주의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면서 "중산층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대전환기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그 틈을 비집고 음모론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여 혹세무민할 것"이라면서 "AI 시대의 리더십은 단지 첨단기술을 육성하는 데 그쳐선 안 되며 기술로 인해 붕괴될 인간의 자리, 삶의 안전망, 공동체의 회복을 함께 설계할 책임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이어 "차기 대통령은 AI 기술 경쟁력을 키우되, 중산층을 복원할 정책, 사람의 자리를 보존할 전략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면서 "기술 만으로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그에 대한 답이 지금 절실하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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