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자력시민위원회가 펴낸 <이렇게 하면 가능한 원전제로! 시민이 만든 '탈원자력정책대강'(これならできる原発ゼロ!市民が作った「脱原子力政策大綱」)>(2014)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풍요롭고 활력있는 일본을 실현하는 '원전제로'로 가는 길을 제시한 시민의 집단지혜를 모은 책이다.
원자력시민위원회는 후쿠시마원전사고 2년 뒤인 2013년 4월 탈원전사회로 가는 공공정책 제안을 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적 조직으로 원자력위원회(1956년 설립)를 비롯해 원자력정책과 관련된 일본 정부의 제 조직(원자력규제위원회, 경제산업성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 부흥청 등)에 맞서 탈원전을 위한 원자력정책 개혁방안을 제안, 관련 조사연구를 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일본 정부 기관인 원자력위원회가 원자력 관계자에 의한, 원자력 관계자를 위한 조직으로 원자력정책의 기획·심의·결정을 해오면서 중요한 정책문서인 ‘원자력정책대강‘을 내고 있는데 대해 원자력시민위원회가 이에 맞서 내놓은 것이 <탈원자력정책대강>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종장이 '원자력복합체' 주도의 정책결정시스템의 결함과 민주적 정책의 실현으로 가는 길'은 민의와 괴리된 원자력정책을 내놓는 일본의 정책결정시스템의 결함 분석과 개혁 방안을 검토한 것인데 크게 △지금까지 원자력정책 결정시스템의 결함-원자력복합체의 지배력 △정책결정과 민의의 괴리가 왜 생기는가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실현하는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 대안을 찾고 있다.

1) 지금까지 원자력정책 결정시스템의 결함-원자력복합체의 지배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후쿠시마원전지진재해는 기술적 안전대책의 파탄만이 아니라 안전심사나 설치허가 절차 등 안전대책을 지탱하는 사회적 틀이 실제로 공동화(空洞化)해 파탄됐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 원자력개발에는 '공개, 자주, 민주'의 이념과는 달리 원자력의 개발·이용이 확대됨에 따라 담당조직들이 스스로의 이익확보를 최우선으로 행동한 결과 '원자력복합체'가 형성돼 원자력의 이용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자세와 실태가 공동화(空洞化)해왔다. 원자력복합체란 원자력 이용의 추진이라는 공통의 이해관심을 갖고 원전 등 원자력 제시설의 건설이나 운영을 직접 담당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행정조직, 정계, 산업계(전력·원자력산업), 학계, 미디어업계 등의 총체이다. 이 중 원자력산업 관련 노조, 원자력비즈니스에 깊이 연계된 금융기관이나 상사 및 IAEA 등 국제기구 등도 포함된다. 원자력복합체는 다른 말로 '원자력촌(원전마피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원자력복합체의 강력한 형성근거는 '원전머니'라고 불리는 거대한 금전의 흐름이 법제도에 의해 확보돼 있는 것이다. 그 원천은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전기요금과 조세라는 것이다.
원자력복합체는 구성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하는 개인을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배해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이나 비판적인 기풍을 억제해왔다. 원전의 안전확보 위험이나 지진 쓰나미에 대한 경고가 있어도 폐쇄적인 문화풍토 속에서 진중하게 다뤄지지 않아 안전대책의 강화로 연결되지 않았다. 원자력복합체는 지금까지 원자력정책에 중요한 국면의 정책결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휘둘러왔다. 대국적인 에너지정책의 결정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전의 단계에서 원자력위원회 및 경제산업성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가, 정부 주도로 행해왔다. 정책결정 때는 원자력복합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이나 조직의 이익에 최대한 배려가 주어져 왔다. 개별 원자력시설의 입지과정을 보면 원자력복합체를 구성하는 조직이 거대한 경제력, 정보조작력, 정치력을 사용하면서 지역사회에 강력하게 움직여 지역주민의 비판이나 저항을 배제하면서 끈질기게 입지를 추진해왔다. 정부·지자체는 전력회사와 긴밀한 협력을 하면서 원자력시설을 지역주민에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결같이 맡아 지역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자세는 희박했다.
역사적으로 원자력사고는 종종 발생해왔다. 일본 국내에서는 원자력선 '무쓰'의 방사선누설사고, 도카이재처리시설 화재폭발사고, 미하마원전 2호기 증기발생기 세관파단사고, 시가원전1호기 임계사고 등이, 국제적으로는 체르노빌원전사고, 스리마일원전사고라는 대사고가 있었다. 각각 사고경험으로부터 진지하게 교훈을 배워야 함에도 일본의 원자력복합체는 사고원인의 해명을 부분적, 표면적, 또는 자의적으로 해석해 조직적 사회제도적인 요인 연관성을 파헤친 분석도 하지 않았다. 2012년 12월까지 민주당 정권 하에서는 2030년대말을 목표로 하는 탈원전정책이 나왔지만 그후 자민당 정권 하에서는 민주적인 정책논쟁을 회피하면서 폐쇄적인 절차 하에 원전의 부활이 튀어나왔다.
2) 정책결정과 민의의 괴리가 왜 생기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는 탈원전을 희망하는 소리가 일관되게 7할 전후에 이르고 국민의 다수파가 된 사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국회의 정당별 의석분포와 정당별 득표율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어 정권의 방침과 민의와의 괴리를 낳는다. 그 괴리가 너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자민당 아베 정권 하에서의 원전회귀·원전재가동정책이다. 이는 국민여론 무시의 난폭한 정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일본 국회의 정책형성능력이 낮고 정책형성이 정부주도형이 되고 있는 것도 민의와 정책이 괴리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형성의 실질은 원자력복합체의 압도적인 영향력 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한 정책안의 형성과 정책결정과정이 극히 폐쇄적인 것이 되고 있다. 정책과 민의의 괴리는 과학적 지식 다루기의 결함, 즉 원자력추진에 유리한 견해가 일방적으로 채택되는 반면 원자력 추진에 불리한 견해가 배제되거나 경시돼온 것에 기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책안 형성의 장'과 '과학적 검토의 장'을 구별해 한다. '과학적 검토의 장'에는 다양한 과학적 견해를 가진 과학자가 한곳에 모여 철저한 논의를 해야 하고, '이해·관심에 의해 사실인식의 왜곡을 하지 않을 것' '정보공개와 공유' '다양한 학설을 가진 연구자의 참여' '충분한 검토시간'이라는 조건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실현하는 조건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공론형성이 중요하다. 민주적인 정책결정 실현에 중요한 것은 개별정책 영역에 맞게 그때그때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며 '형성된 공론'을 정부와 국회가 존중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라고 하는 '직접민주주의적 수법'이나 토론형 여론조사 등 '숙의민주주의'의 방법이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다.
국회개혁에 의한 정책 형성능력의 향상도 중요하다. 국회의 정책형성 능력을 높여 원자력행정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유효한 힘이 될 수 있다.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중요하다. 재가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도부현 지사의 동의가 필요하며 또 전력회사와 안전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시정촌에서도 단체장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그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보장돼 있지는 않지만 재가동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그러나 일본의 원자력정책은 복수의 정책 선택지 가운데 실현가능한 베스트 선택지를 뽑아내는 절차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기득권 확보를 대전제로 이해관계자가 대응할 수 있는 논점에 맞춰 수정을 가하는 형태로 수립돼왔다.
정책형성의 질의 개선은 사회 속의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나 조직에 대해 '열린 논의'의 기회를 보증하고 광범한 주민·시민의 관점이나 사고방식을 반영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학문분야 면에서도 종합성이 요구된다. 사회 속에서 원자력기술을 적절히 다루기 위해서는 이공계만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의 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언론은 공론형성을 위해 불가결한 역할을 하는데 언론의 독립성이나 비판성 견지는 매우 중요하다. 원자력정책에 대한 정보공개는 민주적인 정책형성의 필요조건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의제 생활정치플랫폼'인 민주부산시민연대포럼(상임대표 임재택)이 23일 오후 부산YMCA 대강당에서 '기후위기 시대 원전·토건을 넘어 지속가능 사회로!'를 주제로 제4회 포럼을 가졌다. 이날 원전 관련 정책제안에 나선 탈핵부산시민연대 정수희 집행위원은 '탈핵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21대 대통령 선거 정책 제안'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부산 인근에서 10기의 원전이 밀집돼 있다. 고리1호기는 영구정지됐지만 고리2~4호기는 수명연장 심사중이고, 신고리1·2호기와 새울1·2호기는 가동중이다. 또 새울3·4호기는 건설중인데 공정율이 88.6%에 이른다. 정 집행위원은 설계수명을 초과한 고리2~4호기는 안전성은 물론 경제성을 고려하더라도 폐쇄가 '답'이라며 다음과 같이 5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고리2~4호기 폐쇄 및 정의로운 전환 △핵발전소 통합 지연 해체를 통한 안전성 확보 △신규 핵발전소 건설 금지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건설 금지 및 관리 정책 재수립 △안전성 평가 강화 및 지역 권한 확대 등 5가지 정책을 제안했다(인저리타임, 2025년 5월 23일).
좀 더 자세히 보면 정책 제안1 '고리2~4호기 폐쇄 및 정의로운 전환'은 △고리2~4호기의 영구정지 공식 선언 및 폐쇄 절차 개시 △핵발전소 노동자 및 지역주민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정책 수립이다. 제안2 '핵발전소 통합 지연 해체를 통한 안전성 확보'는 △고리1호기의 해체계획 승인 심사 보류 및 재조정 △고리1~4호기를 통합한 해체 로드맵 재수립 △해체기술 내재화·산업생태계 구축에 시간과 자원배분 △지역사회 참여기반 구축이다. 제안3 '신규 핵발전소 건설 금지'는 △고리·새울핵발전소 부지 신규 핵발전소 건설금지 선언 △신규 핵발전소 2기, SMR 1기를 용인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폐기 △지역분산형 에너지수요 믹스 전력망 정책 재설계이다. 제안4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건설 금지 및 관리 정책 재수립'은 △고준위특별법 폐기 및 임시저장시설 건설 금지 명문화 △탈핵을 전제로 한 폐기물관리정책 및 관련법 재수립이다. 제안5 '안전성 평가 강화 및 지역 권한 확대'는 △규제기준 강화 및 최신기술기준 적용 의무화 △지방정부의 거부권과 동의권 법제화 △지역 독립 안전성평가기금 조성이다.
2016년 2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자로 설계 심사 등에 새로운 기준을 작성·운용하는 '신규제기준'을 발표했다. 신규제기준은 대규모 자연재해나 테러공격을 상정할 것, 중대사고 대책을 의무화할 것, 기존 원전에도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사고 이후 일본의 모든 원전은 원전입지 지자체 단체장의 승인은 물론 재가동하려면 이러한 새 규제기준에 따라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에 재가동이 쉽지 않은 것이다. 신규제기준의 핵심은 그간 새롭게 기준을 수립해도 기존 원자력시설로 소급적용하는 '소급규제(back-fit)'의 법률상 구조가 없어 최신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소급규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 추진과정에서의 우를 다시 범하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의 실패 요인을 보면 이렇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를 기점으로 대통령의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탄소중립선언, 에너지전환정책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를 법제화하지 않아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안전조례 시행령 개정으로 수명연장 신청이 5년~10년으로 앞당겨져 무려 18기의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이 그냥 이뤄지게 만들었다. 특히 원전안전과 관련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바꾸는 등 규제기관의 개혁과 원전안전을 담보할 인사원칙을 바로 세워야 했으나 친원전 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비율 20% 목표 달성을 위해 종합적인 에너지믹스전략이 필요했으나 치밀한 세부계획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탈핵에너지전환정책은 국민과의 소통이 열쇠이며 선진 사례 전파 등 교육·홍보가 절실했으나 이러한 것에 대해 실무적인 추진이 부족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들어서 '탈원전반대' '원전 강국'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폐로해야 할 고리2~4호기가 10년씩 수명연장을 강행하고 신규 원전도 추진할 방침을 세워졌고 형식적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 요식적인 공청회로 '원전안전'을 무장해제했다. 게다가 고리원전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임시저장시설(핵폐기장) 조성을 강행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은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 버려야한다"는 말을 원전업계에 주문했다. 윤 정부의 원전폭주정책은 자신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과도 배치되며, '극우보수' '검찰' '수도권' '영남' '남성' '학벌' '재벌' '개인친분' 중시, '여성' '청년' '지역' '노동자' 무시, '친재벌' '수도권 중심' '지역 무시' '시민 무시' '안전 경시'의 최악의 정책을 펴오다 드디어 12.3 내란계엄을 스스로 저질러 결국 탄핵됐다.
윤 정부 친원전정책의 또하나 문제점은 일본 후쿠시마원전오염처리수 해양투기에 대한 대처가 '안일' 또는 무방비였다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오염처리수가 기준치 이하라 문제 없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일본 입장을 한국원자력학회 같은 친원전파들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동조했다. 윤 정부 때 해양방류 전인 23년 5월 방일 오염수시찰단은 친정부 일색으로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해 7월 IAEA 최종보고서를 묵인하고, 24년 8월 일본 정부, 도쿄전력의 해양방류에 윤 정부가 면죄부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 차원에서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하고 있으니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 차원에서 다시 한번 △유엔해양법 위반 제소(사전통보협의 부재, 저농도방사성물질 해양투기도 국제해양법 위반) △유엔인권이사회에 인권 차원 진정(개별적 생명권 환경권 보호 차원) △중국처럼 강력한 검역 실시(전수 조사, 검역범위 농수산가공품으로 확대) △중국, 러시아, 환태평양연안국가와 연대 대응 △일본에 해양방류 중지 요구, IAEA외 이해당사국 공동검증단파견 제안 △일본에 우리나라 소문피해 대응 공동기금 마련 제안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로 오염수 객관적 장기적 조사연구 실시 등 국가 차원에서 후쿠시마오염수에 대한 대응이 절실하다.
21대 대선은 국가에너지정책을 제대로 펴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특히 원전마피아의 구조를 잘 알고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탈원전에너지전환정책을 펼쳐 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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