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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사라진 불평등, 다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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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사라진 불평등, 다시 말해야 한다

[시민건강논평] 소외된 사람들의 권력 강화가 진정한 내란 청산이다

이번 대선에서 '불평등' 의제가 사라졌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은 양극화와 엄청난 격차"라고 지적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근본적 해결책으로 "우리가 다시 성장하는 사회로 가는 것"을 내세우면서 AI, 신재생에너지,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을 강조하였다. 양극화와 격차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결국 경제성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가 말하는 '불평등'은 그저 성장 담론을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불평등'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그 대안으로 체제 전환을 주장하는 권영국 후보를 제외하면, 현재의 대선 공간은 '불평등'을 감추거나 왜곡함으로써 권력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장(場)'이 되어 버렸다.

서민, 장애인,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노동자 등 일반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조치들은 '경제 성장'을 이유로 미뤄진다. '분배를 위해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전제로 삼는 '낙수효과'는 이미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학계에서도 오래전에 폐기된 이론이다. 부자 감세나 규제완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 혜택은 아래로 흐르지 않고 위로만 쌓인다. 이제는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성장의 지속성을 저해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는 추세다.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재분배 기제를 그대로 둔 채 경제성장만 말하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이 더 커지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불평등' 의제가 경제성장에 가려지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 의제 모든 것이 '경제'라는 프레임으로 환원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앞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며 불평등 완화를 강조하는 논리조차 결국 경제 논리로 불평등을 말하는 셈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권리는 시혜가 되고 가치는 재정에 압도 당하고 시민의 고통은 숫자로 환산된다.

10년도 더 전에 '송파 세모녀' 사건이 큰 주목을 받고서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제거하겠다는 각오를 드높였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정부는 실질적 효과가 없는 비슷한 대책만 내놓았다. 최근에는 또다시 생활고와 지병으로 고통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모녀의 사건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은 항상 재정 부족을 말하고 도덕적 해이와 부정수급을 강조하며 시민들은 이를 내면화한다. 권리가 되지 못한 복지서비스가 '선착순 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복지 사각지대를 운운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그 죽음에 적응하는 사회가 될까 두렵다.

SPC 계열 공장에서는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올해에도 동일한 유형의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기업들은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말뿐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늘어놓았고, 국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경영책임자를 수사하거나,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데 주저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매일같이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불평등은 단지 자원이 불균등하게 나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불균등한 자원 배분은 결과이고 그 이면에 무엇이 자원인지, 누가 가질 자격이 있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누가 통제할 권한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 권력관계 안에서 '부정수급자', '도덕적 해이' 담론이 강화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되고 서민과 노동자의 삶은 무너진다.

그러므로 불평등은 바로 그 권력관계에 직접 개입해야만 변화될 수 있다. 노동자, 홈리스, 여성, 이주민, 장애인, 청년, 노인 등 다양한 주체의 권리를 법에 명시하고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불평등 해소 정책이다. 힘이 없어서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드러내고 힘을 가지도록 하는 게 불평등에 개입하는 일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여론조사 결과만 남고 이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정치적 맥락들이 희석되는 양상이 보인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내란으로 인해 앞당겨졌고 그 내란을 청산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내란 청산은 단순히 집권 정당과 대통령을 바꾸는 것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내란의 근본원인 중 하나였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내란 청산의 핵심이다. 내란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의 돌발적 일탈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경제 문제로 치환되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 그것이 바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비극적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길이며 진정한 내란 청산이다.

권영국 후보는 "땀 흘려 일해도 집 한 칸 없고, 장사가 안돼 가슴이 무너지고, 매달 대출금 갚기도 힘들고, 전세(사기)로 절망하는 우리 이웃들의 고통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불평등과 차별을 갈아엎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하였다. 더 많은 후보와 시민·노동사회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불평등 해소, 그리고 이를 위한 권력관계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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