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정치인을 자처해온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전 국민이 시청하는 주요 대선후보 간 TV토론 시간에 여성의 신체를 성적·폭력적으로 학대하는 표현을 여과 없이 그대로 옮겨 물의를 빚었다. 타 정당 대선후보의 가족이 인터넷에 썼다는 의혹이 있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라고는 하나, 많은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렸고 진보정당과 여성단체는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27일 밤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에게 한 질문에서 "이재명 후보가 가족 간의 특이한 대화로 문제가 되신 건 아까 사과하셨는데"라며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논란을 언급하고는 "민주노동당의 기준을 여쭤보고 싶다"며 여성의 신체 특정 부위에 대한 폭력적 행위를 묘사한 발언을 언급한 뒤 "이것은 여성혐오에 해당하는가, 아닌가"라고 돌연 물었다.
권 후보는 불쾌한 듯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준석 후보가 재차 "민주노동당은 이런 성폭력적 발언에 대해 기준이 없느냐"고 묻자 "있지만 지금 이걸 묻는 취지를 잘 모르겠다"면서도 "(당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우리는 당연히 성적인 학대를 한다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고 마지못해 답변했다.
이준석 후보의 이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장남 이모 씨가 지난 2021년 12월경 인터넷에 썼다는 의혹을 받는 글을 겨냥, 이재명 후보 '가족 리스크'를 부각시키려던 의도로 풀이됐다. 이 씨는 과거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연예인 사진이 올라오자 "먹고 싶다"는 댓글을 달거나, 그로부터 한 달여 전에는 다른 이를 겨냥해 "××××에 젓가락 ××고 싶다"(요도尿道에 이물질을 삽입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욕설을 하고 또 다른 여성의 사진에 대해 "맛있겠다" 등 저속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의 아들일지언정 본인은 일반인인 이 씨가 인터넷에 익명으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것과, 대선후보인 이준석 후보가 전 연령층이 시청하는 TV 토론에서 이를 그대로 옮긴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예상된다. 당장 이준석 후보의 발언으로 상처를 받았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온라인에 넘쳐났고, 권 후보와 민주노동당,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성단체에서도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 후보의 '질문' 대상이 된 권영국 후보는 토론회 종료 직후 낸 'TV토론에서 못다 한 말' 제하 입장문에서 "토론회에서 나온 이준석 후보의 '여성 성기' 관련 발언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TV 토론회 자리에서 들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발언이었다"며 "처음 들어보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이런 자리에서 나올 줄 몰랐고, 그 발언이 다른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꺼낸 것이라는 사실은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 알았다"고 했다.
권 후보는 "소신과 원칙으로 답했지만 여전히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이준석 후보가 여성혐오 발언인지 물었던 그 발언은 분명한 여성혐오 발언이고, 상대 후보를 비방하겠다는 의도로 여성혐오 발언을 공중파 TV토론 자리에서 필터링 없이 인용한 이준석 후보 또한 여성혐오 발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권 후보는 "충격적", "너무나 폭력적"이라며 "토론을 누가 듣고 있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할 수 없었을 발상"이라고 하고는 "이준석 후보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태연하게 이런 발언을 한 후보를 제지하거나 경고하지 못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방토위)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다시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도 신민기 부대변인 명의 논평을 내고 해당 발언을 "끔찍한 TV 폭력"으로 규정했다. 민노당은 "청소년과 여성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꺼냈다"며 "대선 토론회가 아니었다면 화면을 돌리고 마이크를 꺼버리고 그 즉시 방송에서 끌어내렸어야 할 발언"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민노당은 "토론회를 지켜보는 모든 시청자가 이준석 후보의 언어적 폭력을 피할 수 없이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대비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력의 선정적 재현을 고스란히 듣도록 만든 것 자체가 끔찍한 폭력"이라며 "오로지 다른 후보를 비난하기 위해 감히 그런 말을 공중파에서 입에 올렸다는 데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민노당은 "정치 통합을 이야기하는 토론회에서 가장 저열한 형태의 혐오정치를 일삼은 이준석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 임할 자격이 없다"며 "국민 앞에 당장 사과하고 후보직에서 즉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민노당은 아울러 방토위에 대해 "분명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도 조승래 선대위 수석대변인 논평에서 "이준석 후보는 결코 방송에서 입을 담을 수 없는 폭력적 표현으로 대선후보 TV토론을 기다려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며 "이준석 후보의 행태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준석 후보는 토론을 빙자한 끔찍한 언어 폭력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도 토론회 직후 성명을 내고 이준석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이준석 후보가 27일 지상파와 온라인 등에 생중계된 제21대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묘사한 표현을 질의를 빙자해 그대로 내뱉았다"며 "이게 무슨 짓인가. 왜 유권자가 대선 토론을 보다 이따위 표현을 마주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대통령 선거 후보로서 시민 앞에 선 자리에서, 여성 시민에 대한 폭력과 비하의 표현을 그대로 재확산한 작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며 "그 의도가 어땠건 오늘의 발언은 시민 모두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고 했다.
이들은 "우리는 성평등, 인권, 존중은 고사하고 이준석 후보와 같은 작자가 우리 사회가 일궈온 최저선의 윤리마저 무너뜨리는 작태를 한 순간도 두고볼 수 없다"며 "이준석 후보는 당장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합당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이준석 후보는 그 누구도 대표할 수 없다. 다시는 시민 앞에서 마이크를 쥘 엄두조차 내지 말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딸내미하고 같이 보는데 진짜"(한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 "목적을 떠나 이런 발언을 대선 토론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회성 결여되고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인가"(한 게임 커뮤니티), "이준석 토론 시청하지 마시기 바란다. 자녀와 보다간 정말 큰일난다. 전 국민이 보고 있을 방송에서 (문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놓는 비열함과 저급함에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한 오디오·비디오 커뮤니티 사이트)라는 등 불만과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작년 2월 발표한 입장문에서 "제 개인에 대해서 되짚어 보면, 이준석이 페미니즘의 안티테제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2018년 이수역 사건 당시 제 입장을 밝힌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페미니즘의 안티테제'를 자임하는가 하면, 2021년 이후 페미니즘의 핵심 질문인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전적으로 부인해 왔다.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 <한국경제> 인터뷰에서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밤길 안전은 같은 보수정당 정치인인 오세훈 서울시장 등 보수진영 내에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이슈임에도 이를 부정한 것이다.
또 같은 인터뷰에서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거나, 방송 인터뷰 일간지 기고, 개인 SNS 등을 통해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보증 못하는 것"이라고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하고,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비판을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여성 공직할당제를 "수치적 성평등에 (대한) 집착"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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