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7년 만에 개최된 대한민국의 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 여하의 심의 결과로 최종 견해를 채택했다. 그 내용을 보면, 위원회는 우선 한국 사회에 이주민들을 향한 혐오 표현과 증오 범죄가 증가함에도, 이를 규정하고 금지하는 법제가 없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위원회는 또한 대구 북구 이슬람 사원(이하 '사원')의 건설이 지연되는 문제, 그리고 그 일대에 증오를 조장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혐오 언행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절히 조치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 말고, 갈등 중재와 사원 건립을 위해 신속히 무엇이든 일을 하라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인종차별 앞에 중간이나 중립 같은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정부에 그 역할을 촉구한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심의 중 질의에 응답하면서 정부 대표자가 ‘현재 사원 주변에 인권침해 내용의 현수막은 없다’라고 말한 점이다. 다행히 그 현장을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보던 분들이 인종차별 현수막들을 급히 촬영하여 제출함으로써, 정부의 허위 답변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몰랐다, 알았다고 하면 될 일을, 아니다, 그런 일 없다고 말하는 안 좋은 습관이 우리 사회에, 특히 책임이 큰 분들일수록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이와 유사하게, 거기 분명히 있는데 우리가 잘 모르는 일 중에, 사원 건축이 중단된 사실이 있다. 한때 요란스레 문제가 되었는데 요즘 자주 거론되지 않다 보니, 일반 시민일수록 영문을 몰라 할 수도 있다. 또 중단 사유가 시공업자의 부실 공사, 즉 설계도에 있는 스터드 볼트를 누락하고 구조물을 올린 일이다 보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기술적 문제라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수막도, 공사 중단도, 엄연한 차별의 현실로 지금 이곳에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현수막의 문제부터 보자. 이는 혐오를 나타내고 증오를 조장하는 인종차별 표현물의 문제이다.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반대하거나 심지어 방해하고자 일부 주민, 활동가, 단체가 사태 초기에 내건 인종차별적인 현수막들, 무슬림 공동체를 테러, 범죄, 우범, 빈곤의 소굴로 취급하는 슬로건들을 다시 언급하진 않겠다. 돼지머리를 전시하고, 돼지 잔치를 열며, 심지어 돼지 피로 보이는 물질을 골목에 뿌려댄 행위마저, 이젠 따질 기력조차 잃어 가는 느낌이다. 다만, 사원 공동체가 그에 놀라울 만큼 이성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 점과 함께, 그 일이 주변이나 일반의 사람에게도 상처가 되었고, 특히 당사자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은 점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한다. 그 아픈 자국은 없어지지 않고 거기 있다. 그러나 가해자든, 무슬림 학생들이 속한 경북대의 책임자든, 중앙과 지방의 정부든, 그 일에 위로나 사과는커녕 그 비슷한 내색조차 비친 일이 없다. 이 점도 몹시 아프다.
더욱 아픈 일은, 우리 정부의 판단과 달리 이 모든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2025년 봄에도 대구 시내 번화가에는 무슬림을 향한 증오를 조장하는 특정 정당 명의 현수막이 15일간 걸겠다는 표시와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버젓이 게시되었다. 당연히 경찰이나 공무원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는 위치였다. 2024년 총선 기간에는 이런 식의 현수막이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 검인을 받았다는 표시와 함께 게시되기도 했다. 정부가 이를 몰랐다면 선관위는 정부 기구가 아닌 것인가? 또한 무슬림 유학생들이 그 자녀들과 함께 살며 오가는 건물 외벽에는 '주택가 한가운데 사원을 세우는 일은 양심이 없는 일'이며, '이를 허가한 북구청이 잘못을 책임지라'는 현수막이 지금도 걸려있다. 그러나 그곳에 사원을 건축하는 일은 양심 없는 행동도 아니고, 관청이 그 일을 불허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 외벽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는 사실과 대비하면, 이는 특정 종교와 그 신도, 시설에 대한 차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것들이 걸린 자리는 사원에 대해서 더 극단적인 폭언과 모욕을 담은 현수막이 줄곧 걸렸던 곳이다. 그것을 게시하는 쪽이든 읽는 쪽이든, 현수막들을 통해 주고받는 차별과 모욕의 의도는 명백하게 감지 가능하다.
시공업체가 스터드 볼트를 누락한 채 건물을 올렸다가 감리에 적발되고, 업체가 시정하지 않아 구청이 공사를 중단시킨 일은 어떤가. 이는 당연히 위법한 행위이고, 시공업체는 제재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건축주인 사원 공동체는 이 위법 행위에 관하여 명백히 피해자이며, 이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배상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시공업체는 짓다가 만 건물은 넘기겠지만 배상은 못 한다고 맞서면서, 미완성 건축물에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집을 지으면 명이 줄어든다더니, 유학생들이 이런 한국적 경험을 정말 모질게도 겪는다 싶다. 지난 겨울 이래 적반하장이라는 말을 쓸 일이 무척이나 많았던 한국 사회인지라, 유학생들이 적반하장을 한국의 문화 코드로 여기지나 않을까 두렵다. 그런데 시공업체는 어떻게 그리도 뻔뻔할 수 있었을까. 공사가 이미 많이 지체되었고, 유학생은 학업이 끝나면 귀국하기에,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면 사원 측이 배상 요구를 포기할 것으로 보는 셈인데, 업계의 오랜 경험칙에 따른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세계관을 시공업체만 가진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혹시 사원 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닐까. 원래 설계대로 시공하라는 입장을 완강히 유지하면, 결국 기존에 공사가 진행된 건물은 거의 헐다시피 하고 다시 공사할 수밖에 없다. 시간도 시간이고, 비용 역시 새잡이로 든다. 그런데 사원 측은 시공업체에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 공사비까지 이미 지급한 상태다. 시공업체에 대한 배상의 요구가 그들에게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시공업체는 배상할 수 없다고 버티며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이 일로 인해 건축이 진행되지 않으면 사원은 서지 않고, 사원 건축 반대라는 목표는 성취된다. 전국의 많은 유치권 행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원 현장의 길가에 붙여놓은 게시물에 적힌바, '구청이 허가하고 구청이 중지했다가 구청이 패소했으니, 구청이 책임지라'는 문구는 일이 그렇게 되도록 하라고 구청에 요구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설령 건축 반대 주민들의 생각이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북구청은 그런 뜻으로 읽은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추가 시공으로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하는 기술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사원 측에 대해, 반대 주민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부디 잘못 알려진 일이길 바란다. 설계상의 스터드 볼트 시공은 구조적 안전성을 위한 것이다. 시공업체가 이를 누락시킨 문제에 대해 구조적 안전을 확보할 기술적 방안을 찾겠다고 하자, 반대 주민과의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방안을 찾아오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이 과연 온당한 대응일까? 그곳에 사원이 설 수 있으니 세우도록 하라는 결정은 이미 법적으로 완성되었고, 물론 반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일정한 합의에 이른 문제다. 또 이번에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신속히 건축되도록 정부가 나서라고 권고했듯이, 국제적으로도 확고부동한 여론과 판단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 판단은 복잡한 논리가 아니라, 기본적 인권에 관한 아주 간명한 원리에 바탕을 둔다. 이 전제를 흔들려고 드는 일이 바로 인종차별 행위이다. 이제 그 사원이 서도록 할 때가 되었다. 민이고 관이고 우리 모두 각자, 이제 그 일을 위해 무엇을 할지 찾아보기로 하자. 인종차별 앞에 중립의 자리는 없다.
이 글은 <대학 지성 In&Out>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