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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식품이야기] ⑥ 톡톡 터지는 달콤함, 옥수수로 즐기는 든든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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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식품이야기] ⑥ 톡톡 터지는 달콤함, 옥수수로 즐기는 든든한 여름

기원전 7000년 멕시코부터 오늘날 로컬푸드까지, 영양·식감·산업을 아우르는 옥수수의 변신

▲ 수염이 아직 촉촉한 갓 수확 옥수수, 알알이 영근 노란 알갱이 속에 초여름의 단맛이 가득하다. ⓒ프레시안(문상윤)

장마 전선이 북상할 즈음 밭머리 간이 노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옥수수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막 삶아 껍질째 묶은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오다 보면 옥수수 잎사귀에서 올라오는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단내가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옥수수(Zea mays L.)는 모양만 보면 단순한 간식거리 같지만 역사·영양·산업 어느 영역을 들여다봐도 그 존재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7000여 년 전 멕시코 고지대에서 출발한 이 작물은 콜럼버스 이전 중남미 문명에서 이미 주식이었다. 16세기 스페인 선교사들이 유럽으로 종자를 가져간 뒤에는 이탈리아·불가리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을 통해 조선 땅에까지 닿았다.

1540년 《승정원일기》에 “황국(黃穀)의 씨를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임진왜란 이전 한반도에도 이미 뿌리를 내렸다는 뜻이다.

이후 벼농사가 어려운 산간 지역에서는 옥수수가 ‘보릿고개’를 대신해 허기를 달래 주는 주요 탄수화물 공급원 역할을 맡았다.

식물학적으로 옥수수는 화본과 작물 가운데서도 독특하다. 수꽃과 암꽃이 같은 줄기에서 따로 피는데 줄기 끝 수상화서가 수꽃이고 잎겨드랑이에서 솟아나는 웅대한 이삭이 암꽃이다.

하나의 이삭에는 평균 600~700개의 알갱이가 꽉 차는데 알갱이가 충실할수록 당과 전분 함량이 높아진다. 따라서 수확 적기를 조금만 넘겨도 알갱이가 급격히 단단해지면서 간식용보다는 가루·팝콘 같은 가공용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삶은 찰옥수수 100g의 열량은 134㎉로 낮은 편이지만 탄수화물 29g, 단백질 4.4g, 식이섬유 3g을 담고 있어 에너지와 포만감을 동시에 준다.

노란 색소의 주역인 루테인과 제아잔틴은 망막 건강에 도움이 되고 흑옥수수에 풍부한 안토시아닌은 염증 인자를 억제한다는 충남대 식품영양학과의 동물 실험 결과도 있다.

또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옥수수 배아유 속 리놀레산이 LDL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HDL을 높인다고 보고했다. 한마디로 옥수수는 간식 이상의 기능성 곡물이다.

국내에서 옥수수의 쓰임은 과거 ‘삶거나 구워 먹는’ 방식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넓어졌다.

찰옥수수를 찜통에서 꺼내 곧바로 알갱이만 발라내면 버터·우유와 만나 라테나 수플레 팬케이크의 달콤한 베이스가 된다.

강원 평창에서는 찰옥수수 가루에 들깻국물을 부어 차갑게 낸 ‘옥수수 냉국수’가 여름 별미로 자리 잡았고 말레이시아 스타벅스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한 ‘스위트콘 프라푸치노’가 판매되기도 했다.

궁합 재료도 무궁무진하다. 부드러운 전분질 덕분에 우유·생크림 같은 유제품과 만나면 고소함이 배가되고 로즈마리나 바질 같은 허브는 옥수수의 자연 단맛을 끌어올린다.

새우와 베이컨은 버터에 볶아 옥수수와 섞었을 때 짠맛과 감칠맛으로 단맛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가정에서는 들기름 한 큰술을 넣어 짓는 옥수수밥이 가장 쉽다. 밥알 사이사이 노란 알갱이가 톡톡 씹히며 들기름의 고소함까지 더해져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이 비워진다.

더위를 식히고 싶다면 삶은 옥수수, 우유, 요거트를 갈아 냉장고에 차게 두었다가 파프리카 파우더를 살짝 뿌리는 냉수프가 한낮 브런치로 제격이다.

고수 잎과 라임즙을 넣어 새우·옥수수를 볶으면 멕시칸 타파스에도 뒤지지 않는 버터콘 라임 샐러드가 완성되고 달콤한 디저트를 원한다면 찐 알갱이를 퓨레로 만들어 크림 브륄레의 바탕으로 쓰면 된다. 바삭하게 캐러멜라이징한 설탕 층 아래 숨은 알갱이가 뜻밖의 식감을 선사한다.

옥수수의 가치가 식탁에서만 빛나는 것도 아니다. C4 광합성 식물인 옥수수는 고온·강광 조건에서도 광합성 효율이 높아 기후변화 시대 전략 작물로 꼽힌다.

이삭을 덮은 껍질과 줄기, 수염까지 버릴 것이 없어 바이오매스 에너지, 바이오플라스틱, 건강기능식품 소재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온실가스 감축을 고민해야 하는 농업·산업계에서 옥수수는 ‘땅 위에서 자라는 다기능 공장’인 셈이다.

결국 옥수수는 인류 식문화가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해 온 살아 있는 교재다. 멕시코의 주식 토르티야가 유럽에서는 폴렌타, 동아시아에서는 찐 옥수수 또는 잡곡밥이 되었고 오늘날 카페 라테와 디저트 크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매해 7월의 한 달 남짓이 갓 찐 찰옥수수를 맛볼 수 있는 황금기다. 올해도 노란 알갱이를 한 봉지 들고 와 들기름 밥, 라임 샐러드, 크림 디저트로 변주해 보자.

달콤하고 든든한 여름의 맛이 그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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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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