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앞당겨지고 봄꽃이 일찍 피는 풍경은 머릿속의 ‘기후위기’란 말을 밥상 위 현실로 끌어낸다.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분의 1 이상이 먹을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그 절반이 육류·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곧 “어떤 지구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같은 1㎏의 단백질을 생산할 때, 동물성 식품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식물성의 두 배 이상이다.
소고기 1㎏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물은 1만 5000리터에 달하지만 콩은 1800리터면 충분하다.
육류·낙농업이 차지하는 토지 면적은 완두콩 단백질의 36배에 이른다.
우리가 ‘맛’이라는 일상의 즐거움을 위해 지구가 지불하는 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식물성 대체육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시장의 관심은 “고기를 얼마나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느냐”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꼭 고기를 닮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주류가 됐다. ‘단백질 전환’이라는 키워드 아래 식물성 원료는 콩·완두콩·귀리·병아리콩 등으로 다양해지고 발효·압착·3D프린팅 기술이 더해지면서 맛과 식감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대안이 있다. 바로 곤충 단백질이다.
식용곤충은 단백질, 불포화지방산, 아연·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한 고영양 원료이며 같은 단백질을 생산할 때 물·사료·토지를 가장 적게 사용한다.
곤충 1㎏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은 소고기의 2% 수준에 불과하고 탄소 배출량은 돼지고기의 10분의 1에 그친다.
특히 굼벵이, 고소애(갈색거저리), 백강잠 등은 이미 국내에서 식용곤충으로 인정받고 다양한 식품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식용곤충 시장은 2020년 기준 약 400억 원 규모이며 2030년까지 3천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주로 단백질 보충용 분말, 스낵, 바(Bar) 제품 위주이나 곤충 단백질을 활용한 면, 소시지, 음료 등 고부가가치 가공식품도 개발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더 토푸는 발효 콩 템페에 간장과 생강을 입힌 아시아식 플랜트 스테이크를 독일의 오마미는 병아리콩 기반 두부를 내놓았다.
일본에서는 풀무원의 자회사 아사히코가 고단백 두부 스테이크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곤충 단백질 시장도 활발하다. 핀란드의 엔토푸드(Entofood)는 귀뚜라미 가루로 만든 단백질 바를, 네덜란드의 ‘프로틱스(ProtiX)’는 곤충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반려동물 사료와 식품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아의 과제는 분명하다. 우선 발효의 힘을 활용한 ‘K-템페’와 같은 전통기반 식물성 단백질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된장, 청국장, 누룩 등의 미생물은 콩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고 구수함과 감칠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무기다.
또한 곤충 단백질과 식물성 원료의 혼합도 새로운 대안이다. 예를 들어 콩 단백질 베이스에 고소애 단백질을 더해 맛과 영양, 지속가능성을 모두 잡는 하이브리드 단백질 제품이 가능하다.
계약재배와 탄소크레딧 연계도 중요한 전략이다. 국산 콩, 렌틸, 귀뚜라미 등을 농가와 계약하여 안정 공급을 보장하고 저탄소 생산 보상금을 지급하면 농가 소득과 환경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탄소 라벨링 제도가 의무화되지 않아 식품 간 온실가스 배출 격차를 소비자가 숫자로 체감하기 어렵다.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의무 표기하고 단백질·식이섬유 함량 표시 절차 간소화로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소비자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채식을 강권하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끼는 식물성 또는 곤충성 단백질로 바꾸자’는 식의 유연한 접근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병아리콩 커리, 두부 스테이크, 곤충 단백질 미트볼을 가볍게 주간 식단에 넣는 선택만으로도 상당한 환경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육식은 문화이자 즐거움이다. 하지만 ‘포기’가 아닌 ‘다양화’의 시선으로 식탁을 다시 본다면 식물성과 곤충성 단백질은 빼앗기는 미각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할 풍미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보다 우리의 숟가락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저녁 메뉴를 바꾸는 작은 선택이 기후위기를 늦추는 가장 쉬운 행동이라는 사실, 이제는 알고만 있지 말고 맛있게 실천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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