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부의장 면담을 할 때 현수막을 펼치는데 마음이 울컥했어."
지난 6월 19일 국회 방문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오늘 일정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베트남 하미마을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의 첫마디였다. 국회를 방문한 베트남전 학살 피해 생존자들과 이학영 국회부의장의 면담 자리에서 활동가들이 현수막을 꺼냈다. 현수막에는 하미학살 위령비와 관련된 세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이학영 부의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응우옌티탄,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이 차례로 하미 위령비 비문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 사건은 올해로 25년된 하미 마을의 기막힌 이야기, 대한민국의 너무도 부끄러운 과오다.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이 거셌던 2000년, 한국 참전자 단체의 지원으로 청룡부대 본부 주둔지이자 1968년 학살 피해로 주민 135여 명이 희생된 하미 마을에 위령비가 건립된다. 주민들은 위령비의 뒷면에 학살의 진실과 화해의 뜻을 담은 비문을 새겼고, 몇 달 뒤 준공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주 베트남 한국대사관이 비문에 학살 내용이 명시된 것을 두고 베트남 정부에 문제를 제기한다. 비문의 삭제 혹은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한국 정부와 참전자단체, 베트남 정부 등 여러 층위의 압력에 직면한다. 유가족들은 결국 비문은 한 글자도 고치지 않는 대신 비문을 대리석으로 덮고 그 위에 연꽃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비문을 덮지만 언젠간 한국 친구들의 손으로 열어주세요." 당시 유가족 대표 응우옌꼬이 씨가 연꽃 그림 앞에서 구수정 평화활동가(현 한베평화재단 이사)에게 전한 한맺힌 한마디였다. 올해 80세의 응우옌꼬이 씨는 최근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워있다. 그는 응우옌티탄 씨의 친오빠이며 사건 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주검을 직접 수습한 목격자다.
지난 1월 응우옌꼬이는 국가배상소송 중인 퐁니·퐁녓마을 학살 사건이 한국 법원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송을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가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둘은 하미마을의 진실규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당시 응우옌꼬이는 비문 문제를 언급하며 "하미마을 유가족 협회가 진실규명과 위령비 비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국회의장에게 보내겠으니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신은 추진되지 못했다. 유가족들의 병환과 고령화, 피해생존자 소수의 진실규명 투쟁은 허용해도 집단적인 행동까지는 경계하는 베트남 정부의 태도 속에서 서신은 추진되기 어려웠다. 한국 방문을 앞둔 68세의 여동생 탄에게 꼬이는 말했다. "국회에 가면 하미의 진실을 인정해달라 이야기해다오. '비문을 열어달라'고 꼭 말해."
우선 참전자 단체의 과오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군 학살 피해 마을에 위령비 건립을 지원하면서 학살의 진실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들의 모순된 행동은 유가족들에게 대한 분명한 2차 가해였다. 유가족들은 당시의 행위가 "우리의 기억까지 말살하려고 한 학살"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정말로 큰 책임을 물어야할 주체는 바로 한국 정부다. 당시 위령비 건립은 한국 참전자 단체와 하미마을 사이의 민간교류 차원의 사업이었다.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면, 베트남전 과거사 문제 관련 유감 표명을 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입장에 입각해 외교부가 중재에 나서 참전자 단체를 설득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어야 했다. 그런데 외교부는 오히려 베트남 중앙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당시 한국은 대 베트남 원조를 통해 전쟁 시기 한국군 피해 지역에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는 대규모 지원사업을 추진하려던 차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베트남전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을 볼모로 하미의 진실을 봉인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학영 부의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 같았다. 하미마을 이야기를 마치며 부의장과 탄은 '하미 연꽃 비문 퍼즐'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했다. 한베평화재단이 제작한 이 퍼즐은, 조각을 모두 맞추면 현재의 연꽃 그림이 원래의 비문으로 회복된다. 퍼즐 맞추기를 통해 하미 위령비 비문의 '해방'을 호소하는 것이다.
하미학살과 비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베트남 피해생존자의 대통령실 면담을 통해서도 전달되었다. 국회와 대통령실은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질문이다. 한국 정부가 2000년 하미 마을에 무슨 짓을 지절렀는가, 질문하고 책임을 묻는 일. 거기서부터 하미의 진실을 회복하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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