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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고려인 강제이주 88주년 카자흐스탄을 가다…광복회 광주지부, 독립유적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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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고려인 강제이주 88주년 카자흐스탄을 가다…광복회 광주지부, 독립유적 탐방

① 우슈토베 고려인 기념관

"맨몸으로 춥고 더웠던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는지…가슴이 먹먹합니다."

광복회 광주광역시지부가 주최한 '홍범도 장군과 고려인 유적지 탐방'이 지난 6월 16일부터 21일까지 4박 6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탐방단은 우슈토베, 바슈토베, 크즐오르다 등지의 사적지를 찾아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인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흔적과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의 삶을 되짚었다.

탐방은 본격적으로 17일부터 시작됐다. 20여명의 광복회원들은 70대에서 90대까지 고령이었지만 40도에 가까운 타는 듯한 더위에도 굴하지 않았다.

광복회원들은 우슈토베 기차역에 도착 후 인근 식당에서 차가운 육수에 넣은 메밀면 위에 손질한 토마토, 고수, 지단, 고기 등 고명을 얹은 '고려 국시'로 끼니를 해결하고 첫 일정을 시작했다.

우슈토베는 카자흐어로 세 개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열차의 첫 정차지다. 17일 참가자들은 우슈토베 고려인 기념관과 토굴터를 방문하고 바슈토베 언덕에 올라 당시 고려인들이 농사를 하며 옥토로 일군 땅을 내려다봤다.

▲광복회 광주광역시지부가 18일 카자흐스탄 고려인기념관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2025.06.18ⓒ프레시안(김보현)

일행은 고려인기념관에서 고려인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박헬렌 선교사 겸 관장과 귀국 일정을 미루고 광복회원들을 기다린 김동우 사진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독립운동을 기록하고 있는 김동우 사진작가는 연해주 지신허 마을부터 시작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짚으며 "우슈토베는 강제이주열차의 첫 기착지로 그 여정 동안 기차에 화장실도 의료시설도 없어 수많은 이들이 열차에서 숨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하 40도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토굴을 파고 갈대를 엮어 천장을 덮었지만 불을 피운 연기로 인한 폐병과 홍역이 퍼져 2~3만명이 숨졌다"며 "그럼에도 살아남은 15만명은 봄이 오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다"고 전했다.

이어 "김진은 춘향전의 이몽룡 역으로 유명했는데 무덤에 갔더니 타일로 쓴 두줄의 여덟 글자가 있었다"며 "'내가 간들 아주가며 아주 간들 잊을 쏘냐' 이몽룡이가 춘향이랑 헤어질 때 했던 대사다. 감동적이지 않나?"고 되물었다.

김 작가는 또한 자신이 작년에 크즐 오르다에서 직접 찾아낸 홍범도 장군 첫 묘지의 철비에 대한 일화를 전하며 "1943년 홍범도 장군의 무덤에 고려인들이 앞뒤로 철비 2개를 세웠지만 이후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며 "작년에 홍범도 펀드 김레프 회장을 만나러 갔더니 그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확인했고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왜 공개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 누구도 관심을 갖고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며 "나라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광복회원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해외 독립운동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짤막한 탄식이 이어졌다.

▲18일 고려인기념관 옆에 재현한 토굴을 광복회원들이 둘러보고 있다.2025.06.18ⓒ프레시안(김보현)

이 밖에도 김 작가가 3개월간 스탄 3개국의 공동묘지를 돌며 찍은 강제이주 1세대의 영정사진들을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설명하며 고려극장 배우들의 묘소, 자식이 없어 잊혀졌던 희극 '홍범도'를 쓴 극작가 겸 배우 태장춘의 무덤 발굴 사례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려극장의 연극과 음악 활동, 카자흐스탄의 인민배우이자 본인의 이름을 딴 연기상까지 있는 김진 배우의 묘소를 찾은 일을 소개했다.

그는 "김진의 묘소를 작년에 알마티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찾았다"며 "그 후손을 만났는데 한국에서 자기 아버지 무덤을 찾아온 게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진은 춘향전의 이몽룡 역으로 유명했는데 무덤에 갔더니 타일로 쓴 한글 여덟 글자가 있었다"며 "'내가 간들 아주가며 아주 간들 잊을 쏘냐' 이몽룡이가 춘향이랑 헤어질 때 했던 대사죠. 감동적이지 않나?"고 되물었다.

특히 지난해 홍범도 장군의 제사사진과 추석 사진 속에 문화는 유사하지만 내용물이 다른 것을 가리켜 디아스포라가 형성해 낸 제3의 문화라고 설명했다.

▲김동우 작가가 2024년 크즐오르다에서 찍은 홍범도 장군의 제사상, 차려진 음식들이 우리것과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다.2025.06.18ⓒ프레시안(김보현)

8월 공식 개장하는 고려인기념관에는 김동우 작가의 사진과 김병학 광주고려인문화관 관장이 보낸 자료들로 채워졌다. 이후 모니터가 설치되고 고려인 음악가 한야코프 씨가 작곡한 '고려아리랑'이 내부에 울려 퍼질 예정이다.

기념관 옆에는 토굴 등을 재현한 구조물도 있어 고려인들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가 위한 열악한 거주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이날 고욱 광복회 광주지부장은 박헬렌 관장에게 건강보조식품과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박헬렌 관장은 "2017년 중풍으로 쓰러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고려인들의 고난과 고통이 마음이 애통하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기념관을 만들라는 계시를 들었다"며 "막막했는데 작년에 김동우 작가를 보내주셔서 이렇게 (기념관을)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념관 한쪽 벽면에는 고려인 1세대 작가 김준의 시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고려 사람이다

나는 로씨야 원동

이만강변 고려 사람이다

백두산 신령이 먹이지 못해

멀리 강 건너로 쫓아낸

할아버지의 손자로다

로씨야의 "마마"보다도

카사흐의 "아빠"보다도

그루시야의 "나나"보다도

고려의 "어머니"란 말이

내 정신엔 뿌리 더 깊다.

▲광복회 광주광역시지부가 18일 카자흐스탄 바슈토베 한-카 우호공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2025.06.18ⓒ프레시안(김보현)

광복회원들이 1937년 연해주 조선인들을 태운 강제이주열차가 처음 정차한 우슈토베역에서 7㎞떨어진 초기 정착지 바슈토베(큰 언덕)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우호를 기리는 장식물들과 카자흐스탄 고려인 독립운동가 추모의 벽에는 이동휘, 최재형, 김경천 등 독립운동가 1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바슈토베는 인적 없이 황량했다. 1937년 북국의 겨울 삭풍을 피하기 위해 파낸 토굴터와 멀리 언덕에 묻힌 고려인들의 무덤만이 한때 고려인들이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려인들은 이곳 바슈토베에 자리 잡았다. 이 언덕은 토굴을 파고 바깥에는 갈대를 엮어 지붕을 만들고 나무 벽을 세워 보금자리를 만든 곳이다. 고려인들은 맨몸으로 2년여 동안 바슈토베 주변에 20여개의 농장을 일군 후에야 토굴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광복회원들은 "맨몸으로 이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가슴이 먹먹하다", "이역만리 이곳까지 쫓겨나 고향을 잊지 않은 이들이 대단하다"는 감상을 털어놓았다.

고욱 지부장도 추모의 벽 앞에서 직접 쓴 헌시를 읽으며 "이제야 찾아와 미안한 마음이다. 언 땅을 일구며 그 겨울을 견뎌낸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고려인들을 기렸다. 숙연해진 광복회원들은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아 크즐오르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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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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