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택조합'이라는 말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약속. 그 말을 믿은 서민들은 '내 집 꿈' 실현을 앞당겨 줄 것이란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중 상당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사업은 착공도 되지 않았고, 조합은 해산조차 어렵다. 조합원들 중 일부는 민사소송에 휘말려 있고, 일부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피해 추정 금액은 약 18조 원, 피해자는 12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한 통계가 사태의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서민의 내 집 마련이라는 '좋은 의도'는 구조적 허점과 법적 한계, 관리감독의 부실에 퇴색됐다. ㅇ이에 <프레시안>은 4회에 걸쳐 지역주택조합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한다. 제도의 설계부터 법적 허점, 과장된 홍보관, 유착 구조, 피해 실태, 그리고 제도 개선방안 등 지역주택조합의 순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본다.

[글 싣는 순서]
1. 선한 제도의 배신- 지역주택조합 왜 실패하는가
2. 허위의 화려함- 조합원 모집과 홍보관의 실체
3. 바지 조합장과 60억 수수료- 유착의 고리
4. 피해자 120만 명의 절규- 개선 방안 없나
수 많은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이었던 '지역주택조합'. 하지만, 조합원 상당수는 수년이 흐른 지금도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막막한 기다림 속에 놓여 있다. 일부는 파산으로 조합이 해산됐고, 일부는 착공조차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 서민이 조합을 구성해 직접 아파트를 짓는 방식은 토지 매입과 시공 과정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일반분양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도 권장됐다.
그러나 이 선한 제도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냈고, 그 틈을 악의적으로 파고든 이들로 인해 서민을 나락으로 밀어넣는 '덫'이 되어버렸다.
가장 핵심은 법령 구조 자체에 있다. 현재 주택법 제11조부터 14조까지의 규정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은 해당 구역 내 토지의 50% 이상에 대해 '권원확보 동의서'만 확보하면 조합원 모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동의서는 언제든 철회 가능한 임의적 동의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토지 소유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토지를 확보했다'는 주장은 허울뿐이고, 사업의 안정성은 처음부터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허점을 알면서도 지자체는 제출된 서류가 형식 요건만 충족하면 조합 설립 인가와 모집신고필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홍보관에서 벌어지는 과장 광고나 부정 모집은 감독 대상이 아니며, 위법 여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다른 개발 조합에서는 적용되는 ‘공무원 의제’ 처벌 조항조차 지역주택조합에는 적용되지 않아 조합 임원이나 업무대행사의 비리가 발생해도 실질적 제재가 어려운 구조다.
한 조합원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경기 남부지역 내 한 조합에 가입한 뒤 입주 시점이 2~3년 내라는 말을 믿고 5000만 원을 납입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지자체에 문의하자 ‘우리는 인가만 했을 뿐 책임질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처럼 법은 있으나 실효성이 없고, 관할 지자체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만 반복되는 사이, 조합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다. 일부는 조합 해산도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소송에 휘말리고, 일부는 생계마저 무너졌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손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이 허용하니, 인허가는 내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 사이 조합원 모집을 위한 화려한 홍보관은 다시 문을 열고, 새로운 피해자는 또다시 생겨난다.
전국에는 현재 약 600여 개의 지역주택조합이 존재하며, 그중 500여 곳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결함이 방치된 결과다.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그 취지에 맞는 견고한 법적 설계와 철저한 감독체계가 필요하다.
지역주택조합이 다시 서민의 희망이 되기 위해선, 지금 이 제도를 만든 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선한 제도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 그것이 누군가의 탐욕을 막아내지 못할 때, 제도는 피해를 양산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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