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 문화재 기증 의사 표명
한일 양국은 한일회담이 중단된 시기에도 제3차 한일회담을 결렬시킨 '구보타 발언' 철회를 비롯하여 몇 가지 의제를 논의하면서 회담 재개를 위한 비공식 교섭을 진행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1956년 10월 30일에 열린 비공식 회의 때부터 논의되었는데, 이때 일본 측은 처음으로 "앞선 회담 선에서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즉 한국 독립의 축하로 약간의 고미술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한일 양국은 1957년 2월에 열린 회의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데, 일본 측은 문화재 기증 의사를 표명한다. 2월 12일에 열린 회의에서 "의무가 아닌 한국 독립의 축하로 국유의 조선 고미술품을 선물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문화재 기증 의사를 다시 밝혔다.

2월 21일 회의에서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외무대신이 "한국 독립을 축하하는 일본 국민의 기분을 표명하기 위해 일본정부가 소유한 약간의 한국 출토 고미술품을 기증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할 생각은 있지만 먼저 문부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일 양국은 이 발언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한국 측은 기증이 아닌 반환을 제안했고 일본 측이 이를 거부하며 반환의 의무는 없다고 답변하자 한국 측은 다시 인도라는 형식을 제안했다. 이에 일본 측은 '건넨다'는 의미인 'hand over'라면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서 한국 측은 독립 축하 언급은 반대하면서 "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일본정부가 소유한 한국 출토 고미술품으로 한국에 인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목록이 작성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건네줄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의사록 작성을 요청했다.
2월 22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문부성의 반대가 있어서 문화재를 곧바로 건넬 수는 없지만 이전 회의에서 언급한 구두사항 언급을 제안했고, 한국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다음날 일본 측은 문부성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시 노부스케 외무대신이 "한일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양국 간의 정식 국교수립 시 일본 국민의 축의를 표명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정부가 소유한 한국 출토 고미술품에 대해 한국에게 인도할 수 있는 것을 한국정부에 건넬 것을 고려한다"라는 내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한국 측은 국교 수립이나 일본 국민의 축의 같은 표현은 필요 없으며 "한일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일본정부는 정부가 소유한 한국 출토 고미술품에 대해 한국에 인도할 수 있는 것을 한국정부에 건네려고 한다"는 내용을 제안했다.
일본 측, 공식적인 구두전달사항 제안
2월 25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앞선 논의를 기반으로 "한일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적당한 시기에 일본정부는 소유하고 있는 한국 출토 고미술품 중에서 한국에 인도할 수 있는 것을 한국정부에 건네기로 한다"는 구두전달사항을 한국 측에 제출한다. 한국 측이 '적당한 시기'를 '되도록 빠른 시기'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등 이후 문화재 반환 교섭은 구두전달사항 논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월 28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문부성의 반대가 예상되며 구두전달사항에 동의하더라도 '인도'라는 표현에는 강하게 반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증' 또는 '양여'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측은 '기증'과 같은 표현은 곤란하므로 '인도한다' 또는 '건넨다'라는 표현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 측은 3월 2일 회의에서 문부성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일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양국 간의 국교정상화 시, 일본정부는 정부가 소유한 한국 출토 고미술품으로 한국에 할애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한국정부에 기증하기로 한다"가 최대한 가능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문부성, 문화재보호위원회, 대학교 측이 문화재 반환을 반대하고 있었다. 특히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제1차 한일회담부터 제7차 한일회담까지 문화재를 돌려주는 일에 반대 또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문화재 인도가 결정된 후에도 그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했다.
한국 측과 직접 교섭을 진행하던 외무성은 이와 같은 반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3월 6일 회의에서 문화재보호위원회 등의 반대 등을 설명하면서 구두전달사항을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측은 본회담이 시작되기 전으로 그 시기를 늦춰도 되지만, "한일회담의 의제와는 별도로, 되도록 빠른 시기에, 일본정부는 정부가 소유한 한국 출토 고미술품 중 한국에게 인도할 수 있는 것을 한국정부에게 인도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구두전달사항을 약속해 주기를 요청했다.
구두전달사항 수정 및 합의
일본 측은 3월 18일 회의에서 구두전달사항을 비롯하여 여러 합의문서안을 한국 측에 제출하는데, 구두전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붉은 색 글씨가 한국 측의 수정 요구).
"Apart from the agenda of the Japan-Korea talks, the Japanese Government would like to hand over to the Korean Government, at an early possible date, those objects of ancient art of the Korean origin which are in the possess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and which it finds practicable to deliver to Korea."
이에 대해 한국 측은 'would like to hand over → will turn over', 'at an early possible date → as soon as possible' 등 문구 수정을 요구했고, 한일 양국은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은 구두전달사항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붉은 색 글씨가 최종적으로 수정한 표현).
"Aside from the agenda of the overall talks between Japan and the Republic of Korea, the Government of Japan will turn over to Korea, at an early possible date, those Korean art objects now in its possession of which the immediate transfer is possible."
위와 같은 수정된 구두전달사항을 통해 문화재들이 원래 한국 소유였고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들을 가능한 한 빠르게 돌려받는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한국 측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구두전달사항 최종 합의를 둘러싼 대립
한일 양국은 6월 중순에 구두전달사항 등 여러 합의문서에 서명하려고 했지만, 한국 측이 다시 수정을 요구하면서 회의가 중단되었다. 7월 말부터 다시 관련 논의에 들어가자 한국 측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구두전달사항을 제안한다.
"The Government of Japan will turn over to Korea, at an early possible date, those Korean art objects now in its possession of which the immediate transfer is possible, and for the later transfer of the said objects discussion and settlement will be made at the formal talks."

이는 3월에 합의된 구두전달사항에 비해 크게 수정된 것이었다. 특히 위 붉은 글씨의 "그 외의 한국 미술품의 향후 인도에 대해서는 전면회담에서 토의 및 처리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구두전달사항을 통해 문화재를 돌려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그 외의 문화재'들도 논의해서 문화재를 돌려받겠다는 한국 측의 의지가 드러난 내용이었다.
일본 측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일본 내부에서는 이미 "이와 같은 미술품들은 본래 한국이 소유했고, 현재 일본이 불법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반환은 당연한 것이라는, 청구권의 1항목에 들어있는 종래의 그들의 견해이기 때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 측은 7월 31일 회의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는 의제에 없었는데, 한국 측의 요구는 이를 의제화하는 것이다'라는 취지로 따져 묻기도 했다.
이후 8월 20일 회의에서 일본 측은 6월 합의문서와 비슷한 수정안을 제안하면서 '한국 측이 구두전달사항을 고집했기 때문에 문화재보호위원회 등의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기시 총리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를 수락했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더 이상 구두전달사항을 수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두전달사항 최종 합의
한국 측의 수정 요구와 일본 측의 반대가 대립하면서 구두전달사항 등 6월 합의문서를 둘러싼 논의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11월 27일에 다시 회의를 여는데, 한국 측은 청구권 문제 관련 구상서 등에 관해 일본 측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일본 측은 억류자 석방 문제 및 청구권 문제를 제외한 구두전달사항 등 6월 합의문서에 관해 한국 측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때 최종 합의된 구두전달사항은 아래와 같다.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일본국 정부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한국 미술품으로 즉시 인도가 가능한 것을 대한민국에 건네고자 하며, 그 외의 한국 미술품의 향후 인도에 대해서는 전면회담에서 토의 및 처리하기로 한다."

한일 양국은 이 구두전달사항을 비롯한 합의문서들을 12월 30일에 정식으로 서명하고 약 4년간 중단되었던 한일회담도 1958년 3월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이후 일본 측은 한일회담이 재개(1958년 4월 15일)된 다음 날, 106점의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했다.
한국 측은 구두전달사항을 통해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문화재들도 제4차 한일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일본 측을 설득했다. 일본 측은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한일 양국은 한국 측의 의견이 반영된 구두전달사항에 합의했다. 이후 구두전달사항은 체4차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이 문화재소위원회 설치를 반대하는 일본 측을 설득했을 때, 제6차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인도'라는 표현을 제안했을 때 등 문화재 반환 교섭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한편 회담 중단기 당시 한국 측이 '인도'라는 방법을 먼저 제안한 일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제1편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측이 기증이란 표현을 쓰면 문화재를 받아오면 안 된다'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 그런데 한국 측이 먼저 '인도'이라는 표현을 제안한 것이다.
왜 당시 한국정부에서 '반환'이 아닌 '인도'를 먼저 제안했는지 이를 둘러싼 한국 내부의 논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한일회담에 참여했던 김용식이 "외교상 혼돈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말한 점에서 보면 '반환'을 주장해서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하는 것보다 '인도'라는 표현으로 일단 문화재를 돌려받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측도 한국 측이 '반환'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한일 양국은 결국 해결하지 힘든 '반환'과 '기증'의 입장을 양보해서 '인도'라는 표현에 합의한 것이다.
■ 참고문헌
한국정부 및 日本政府 공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김용식, <새벽의 약속-김용식 외교 33년>, 김영사, 1993.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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