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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18조의 눈물'… 국가 차원 제도 보완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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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18조의 눈물'… 국가 차원 제도 보완 이뤄져야

[기획] 지역주택조합 제도의 '빛과 그림자'

글 싣는 순서

1. 선한 제도의 배신- 지역주택조합 왜 실패하는가

2. 화려함에 가린 함정- 조합원 모집과 홍보관의 실체

3. 바지 조합장과 60억 수수료- 유착의 고리

4. 피해자 120만 명의 절규- 개선 방안 없나

“전 재산을 넣었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전국 600여 곳에 달하는 지역주택조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실상 사업 무산 또는 장기 표류 상태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 숫자가 단지 사업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도 내 한 아파트 건설현장(기사와 관련 없음) ⓒ프레시안(윤영은)

조합원들의 납입금, 그로 인한 민사·형사소송, 파탄난 가계, 끊어진 가족 간의 관계, 신용불량자 전락까지, 피해는 사회 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다.

도시개발 업계에 따르면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조합당 평균 500세대, 조합원당 평균 납입금 600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총 피해금액은 약 18조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한 실질 피해자는 조합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부모, 자녀, 보증을 서준 지인까지 포함해 60만~1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의 대부분은 '제도 안에서의 사기'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드러낸다. 조합원들은 홍보관 벽에 붙은 ‘지자체 인가 문서’를 믿었고, 상담사는 “국가가 보증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모델하우스는 일반 분양과 다르지 않아 보였고, 건설사 브랜드도 신뢰로 작용했다.

조합원 D씨는 말했다. “우리도 처음엔 공공 분양이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자체에서 신고필증을 발급한 거라니까 믿었죠.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토지도 안 샀고, 건설사도 정해지지 않았더군요.”

막상 사업이 무산되자 지자체는 “법대로만 인가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피하고, 업무대행사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다. 조합은 자금이 바닥나거나 내홍으로 기능을 상실했고, 조합원들은 각자 민사소송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법적 대응에 나선 조합원들은 전문 변호사를 수임해야 하지만, 이미 납입금과 생활비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고 측인 조합은 대형 로펌을 선임하거나 시간을 끌어 소진 전략을 쓰기도 한다. 결국 피해자는 지치고, 많은 경우 포기하거나 탈퇴를 선택하게 된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가족 간 갈등으로 일상이 파탄에 이르는 사례도 확인된다. 특히 신용대출로 납입금을 마련한 조합원들은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며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투자 실패를 넘어, 서민 삶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집단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서울시처럼 ‘피해자 지원 전담팀’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설립된 조합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문제는, 이 모든 피해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는 새로운 조합이 설립되고, 화려한 홍보관이 문을 열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같은 패턴으로 모집되고 있다.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책임자도 그대로다.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본래 무주택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청약 가점 없이도 분양을 받을 수 있고, 조합이 직접 토지를 매입해 시공을 추진하므로 일반 분양보다 저렴하다는 기대가 있었다. 제도의 취지만 놓고 보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도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갔다. 허술한 법 구조, 감독 권한이 부족한 지자체, 홍보관을 중심으로 한 과장 마케팅, 조합장과 업무대행사의 유착, 책임 소재의 부재. 이러한 복합적 허점들이 제도의 취지를 무너뜨렸고, 조합원 피해는 점점 누적됐다.

피해 규모는 약 18조 원, 피해 추정 인원은 최대 120만 명. 더 이상 개별 사건이 아닌 국가적 문제다.

이제는 지역주택조합을 없앨 것이냐, 아니면 바로잡을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많은 전문가와 피해자들은 말한다. “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걸 틈타 악용한 구조와 방치한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첫째, 주택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권원확보 동의서만으로 조합 설립과 모집이 가능하게 한 구조는 악용 소지가 너무 크다. 실질적 소유권 확보 또는 토지사용 계약 체결을 기준으로 인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의 관리감독 권한을 실질화해야 한다. 현재는 형식적 서류만 검토하고 실질 판단 권한은 거의 없다. 허위 규약, 거짓 사업계획서 등을 걸러낼 수 있는 사전 심사 및 제재 권한이 명확히 부여되어야 한다.

셋째, 홍보관 운영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조합원 모집 과정에서 일반 분양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있으나,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 사전 광고 심사제도나 등록제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업무대행사의 자격 기준을 높이고 수수료 지급 조건을 투명하게 정비해야 한다. 단기 이익만 노리는 부실 대행사를 걸러내기 위해 자기자본 요건, 연대보증, 수익 환수 규정 등이 필요하다.

다섯째, 기존 피해 조합에 대한 구제 장치도 필요하다. 서울시처럼 피해자 지원팀을 운영하는 시도가 있지만, 대부분은 한계에 부딪힌다. 중앙정부 차원의 공적 조정기구가 조합 해산, 자산 회수, 민사조정 등을 지원해야 한다.

지역주택조합 제도는 포기해야 할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설계하고 보완함으로써, 여전히 주거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수많은 서민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줄 수 있다. 피해의 역사로 끝낼 것인가,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제대로 된 제도로 거듭날 것인가. 이제는 국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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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은

경기인천취재본부 윤영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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