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최영석(가명, 69) 씨는 2023년 12월 31일자로 경비업무 기간이 만료됐다. 말이 좋아 만료지 사실상 해고다. 최 씨가 일하는 아파트는 기존 경비업체가 아닌 신규업체와 경비업무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업체는 최 씨의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이 소식을 미리 알게 된 최 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입주민과 관리소장을 면담하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했지만 결국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 씨는 당시 4065만 원의 빚이 있는 반면, 수중에는 56만 원밖에 없었다. 경비 일을 하면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중이었다. 해고된다면 채무상환은 고사하고 하루 생활하기도 어려울 게 뻔했다. 최 씨는 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계약 종료 이틀을 앞둔 그해 12월 29일 오후 8시 48분, 영하의 날씨에 최 씨는 아파트 출입차량 차단기 관리 업무에 투입됐다. 그날따라 가슴 부위에 통증을 느낀 최 씨는 아파트 인근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산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동료 경비원에게 가슴 통증을 호소한 뒤, 쓰러졌다.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3개월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최 씨는 24시간 격일근무로 하루 15시간 30분씩 일했다. 사망 전 3개월 동안은 단 하루도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다. 최 씨는 고용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온갖 악성 민원이 몰리는 아파트 경비원
이전에는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맺었던 최 씨였다. 2023년부터 3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맺었다. 이유는 쉽게 해고하기 위해서였다. 단기계약이 맺어지면 사용자는 근태 불량이나 업무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경비원을 빠르게 해고 가능하다.
이것이 근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최 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해왔다. 그런 그가 근태 불량이나 업무지시 불이행 등이 있기는 어렵다. 그랬다면 진작 재계약이 불발됐을 것이다.
경비업체가 최 씨에게 일종의 '재갈'을 물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주민들 민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해고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만난 경비원 중 한 명은 이러한 단기계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요술봉이라고 했다. 애초 경비원 일이 아닌데도,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휴게 시간도 이것 때문에 무력화되기 다반사다.
경비업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고용주인 아파트 입주민들의 입김때문이다. 주민들 민원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비업체의 재계약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3개월 단기계약 등으로 경비원을 압박하는 식이다.
이는 온갖 악성 민원이 경비원에게 몰리도록 한다. 아파트 보안과 단속 업무만을 해야 하는 경비원들이 나뭇가지 치는 일부터 폐기물 수거운반, 주차대행, 택배 배달 등의 일까지 하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이런 일은 금지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시설 경비 업무 외에 공동주택 관리를 위해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시행령에 구체화해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은 건물 내 청소, 도색작업, 제초작업, 개별세대의 대형폐기물 수거운반, 개인차량 주차대행, 개별세대 택배 배달 등의 업무를 할 수 없다.
처벌 수위도 상당히 높다. 이를 위반할 경우, 입주자대표회의 또는 관리주체 등에 대한 지자체장의 사실조사와 시정명령을 거쳐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경비업체는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시를 받았다고 위반 사실을 알릴 간 큰 경비원은 없다. 단기계약의 마법이다.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는 그 역할 수행하고 있나
<프레시안>이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재해조사서를 보면, 2024년 한 해 동안 경비 일을 하다 뇌심혈관계질병, 즉 과로로 사망한 경비원은 31명이다. 전체 직종에서 압도적 1위다.
이들이 이렇게 과로사로 압도적으로 많이 사망한 이유는 매일 장시간 노동과 야간 근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용불안과 주민 갑질도 큰 몫을 차지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 6월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낸 '우리나라 인구구조 현황과 문제점'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1981년 66.7세 대비 2021년 83.6세로 약 17세 증가했다. 이는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일하는 노인의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60세 퇴직 이후 재취업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도심 개발로 노후 주택을 부수고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는 앞으로도 이들의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금처럼 아파트 경비가 질 낮은 일자리로, 아무런 개선도 없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노인들이 일하다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연금이나 복지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일자리는 노인들에게 마지막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다. 그 동아줄이 몹시 가늘고, 군데군데 뜯겨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그 동아줄을 잡고있는 손마저도 누군가 놓으라고 압박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노동자는 일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시작이자 끝이다. 지금의 국가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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