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약해진다. 책 보는 시간이 줄게된다. 육십이 넘은 숙명이자 순명이다. 대신 걷는 시간이 는다. 지금까지 다들 이야기해놓은 그대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철학적인 행위인지를 깨닫는다.
얼마 전 걷다가 '은유'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정리를 시작했다. 책 이름도 <은유의 힘>이라고 짓고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검색을 시작했다. 세상에나.
장석주 시인이 2017년 <은유의 힘>이라는 시평론집을 이미 내버렸다. 그래서 읽게 됐다.
"'하늘이 운다'가 뭐지?" "비가 오는 거죠." "그래. 그게 은유야."
파블로 네루다의 이태리 망명시절을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에서 시인이 우편배달부와 나눈 대화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시는 은유들의 보석상자다."
나열보다는 저자의 은유에 대한 생각을 통채로 옮겨오는 게 낫겠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천둥은 번개가 번쩍인 것을 공표한다.'고 썼다. 번개가 먼저 번쩍이고 그다음 천둥이 울린다. 번개가 생이라면 천둥은 시일 것이다. 멕시코 시인의 저 문장은 사실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아울러 이 문장은 사실의 전달을 넘어서는 하나의 은유로 오롯하다. 은유라는 한에서 이 문장은 사실을 넘어서서 사유를 무한 확장하는 힘을 갖는다. 나는 시가 생성되는 비밀의 핵심이 '은유'라고 보았다. 시는 말의 볼모이고, 시의 말들은 필경 은유의 볼모다. 은유는 시의 숨결이고 심장 박동, 시의 알파이고 오메가다. 시는 항상 시 너머인데, 그 도약과 비밀의 원소를 품고 있는 게 바로 은유다. 상상력의 내적 지평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은유에 대해 사유하며 그 내부로 깊이 파고들수록 놀라웠다."
나는 문학평론가가 아니기에 사실, 문학에서의 은유를 정리할 생각은 아니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비유가 대부분 은유다. 불교에서 특히 선불교에서 화두의 대부분은 은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 불교의 스토리들 또한 대부분이 은유다. 문자 시대 이전의 구술 시대를 살아남은 이야기들은 역시나 대부분 은유다. 구전 설화나 이솝 이야기들도 대부분이 은유고, 현실 정치에서도 은유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아름답고 뿌리깊은, 여전히 함께하는 은유를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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