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올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가 지난 한 해에만 827명이다.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안녕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한국에서 이토록 어렵다.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고용 방식과 노동 시간을 벗어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항구적 불안 속에 형체를 잃어가는 이 '액화 노동' 세계에선 일상이 비상계엄이다.
최현주 씨는 지난해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남편을 잃었다. 최 씨는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린 자본가의 잔인함"을 경험하며 "책임자 중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독립PD 지원순 씨는 산재 적용도 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위험을 마주한다. 문제를 제기했더니 한국방송으로부터 "외주 제작은 외주 제작사의 책임이고, 내부 프리랜서들은 산재보험 가입 의무가 없다"는 답을 돌려받았다.
교통방송 리포터 한송이 씨는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출연료가 그대로이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퇴사 권유가 이어지고, 퇴직금도 정년 보장도 없는 하루살이 인생"이라며 막막해 한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우리 모두의 밤을 치우는 환경미화원 이형진 씨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안전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매일 기도한다. 폐기물 분리 작업을 하는 한 노동자는 "재활용 쓰레기는 가치 있는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지만, 우리의 노동은 매립장 쓰레기들과 함께 매몰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차별과 부조리 덩어리인 노동 사각지대에는 여성과 나이 지긋한 이들이 많다. 재봉사 전소영 씨는 평생 쪽가위 들던 손으로 피켓을 들었다. 직장인 대출은 커녕 재직증명서 한장 뗄 수 없는 현실이 참담해서다. 봉재 노동하던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임금체계, 열악한 환경 탓에 "신규 인력이 유입되지 않아 50대인 내가 막내뻘"이란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문래동에서 30년 쇳밥을 먹은 전희순 씨는 뜻하지 않은 변화 바람에 몸살이다. 작은 공장들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 탓에 "문래동 공인들의 가치는 세월과 함께 없어질 것 같다"고 한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나와 먼 일로 여겨온 삶의 고통을 '기록하고 증언하고, 견디고 움직이고, 맞서고 고발하고, 연결하고 돌본' 60명의 낮은 목소리를 날 것으로 담았다.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6411의 목소리' 지음. 창비).

자의반타의반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의 고달픈 생활도 만만치 않다. 1997년 가자시티에서 태어나 네 번의 전쟁을 겪고 지난해 한국에 온 스물일곱살 난민 청년은 여전히 창살없는 감옥 같은 고국을 기억하며 "새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집트에서 망명한 어떤 이는 "여전히 최악의 조건에서 최소한의 임금을 받으며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느라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체념과 무기력 뿐이라면 그곳이 지옥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다투고 화내고 소리지르는 일상 속에서도 이들은 "골병들지 않고 안전하게 서로를 위하며 일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한다.
일차적으로 기댈 곳은 노동조합이다. 1980년대 10대 초반에 발을 들인 후 평생 구두장이로 살아온 이창열 씨는 2019년에야 노조의 효용을 맛봤다. 사장과 관리자들이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회고한 그는 "후배들이 일할 환경을 선배들이 일찌감치 다져놓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누군가는 분노하면서도 삭이고, 누군가는 맞서 싸우고, 또 누군가에게 연대의 손길을 뻗는 이도 있다. 대안학교 교사인 김수빈 씨는 "연결감을 느끼고 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 삶이 진정 풍요로워 진다"며 학생들과의 만남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영등포 쪽방촌을 하루 2만보 걷는 사회복지사 정운덕 씨도 "주저앉은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돕는 일, 그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보람을 찾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발언권과 시민권이 제약된 '노동 없는 민주주의' 현실이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인사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발탁한 '국민주권정부'에선 달라질까?
<노회찬재단>이 기획한 이 책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을 키워 소외된 이들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상식적인' 정치를 꿈꿨던 한 정치인을 기렸다. 마침 엊그제(7월 23일)가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갑질' 파동을 일으킨 여당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에서 자진사퇴한 날이기에,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라며 손을 내밀던 노회찬과 노동 정치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2016년 20대 국회 첫 일정으로 청소노동자들에게 식사 대접 자리를 마련한 노 전 의원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분과 같은 처지의 많은 분들이, 저희가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대변해야 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2년 뒤 그가 떠나던 날, 청소 노동자들은 운구차 길목에 조용히 도열해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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