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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결제 금지는 인권침해" 진정에 '개인 불만 사항'이라는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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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결제 금지는 인권침해" 진정에 '개인 불만 사항'이라는 인권위

['현금 없는 사회' 당연한가] 공공교통네트워크 기획기고 ⑤ 현금 사용자의 인권 고민 없는 인권위

'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규정상 국가인권위원회 조상 대상이 아니므로 각하한다’

다양한 사유로 가득 채운 진정서 내용이 무색해진 순간이다. 인용과 기각 사이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권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인권 기조를 만들어 가는 국가인권위원에게 논의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내가 첨부한 수많은 해외 사례들을 읽긴 했는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각하는 인권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진정이 올라오면 상임위원 1인이 먼저 내용을 확인하며, 각하로 결정되면 해당 안건은 회의에 상정되지 않는다. 상임위원이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당사자의 인권 구제 절차는 지지부진해진다. 그렇기에 사안을 처음으로 검토하는 상임위원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일반적 통념의 사안이 아니라면, 논의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필자는 지난 5월 지자체와 산하 공공기관, 민간업체의 버스 탑승 등에서의 현금 사용 금지 조치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이를 각하했다. 사진은 이 사건예비조사결과보고 일부. ⓒ인권위

필자는 지난 5월 12일 지자체와 산하 공공기관, 민간업체의 버스 탑승 등에서의 현금 사용 금지 조치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이에 침해구제제2위원회 김용원 상임위원은 이 진정이 ‘불만사항’에 불과하며 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각하했다. 즉,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순 불만’이라는 편견

각하는 여러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도, ‘법정 화폐는 제한 없이 통용돼야 한다’는 현행 법 규정을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상임위원이 해당 법을 알지 못했길 바랄 정도로, 이는 법치로 인권을 보장한다는 국제인권규약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인권위가 ‘지키고 싶은 법만 지킨다’는 잘못된 생각에 동의하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한다. 법에 근거해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인권위의 기본 역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모든 인권침해에 대한 인지는 불만을 느끼면서 시작되고, 이후 피해는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구제된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진정을 ‘단순 불만 사항’으로 규정하는 건, 우리 사회 곳곳의 다양한 차별을 찾고 이를 예방해야 하는 인권위 역할과 배치된다. 불만이란 말은 어떤 토의도 없이 개인의 문제 제기를 손쉽게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각하 통보엔 어떤 사안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각 사안을 숙고해 그에 맞는 적합한 해결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특히 현금 사용이 금지돼 사회 활동에 실질적인 피해를 겪었음에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제한 판단은 사실관계가 잘못됐다. 현금 사용을 제한하는 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서,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실질적인 제약을 당한 피해가 존재한다. 국가가 공인한 수단으로 결제하겠다고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말이다.

▲해당 진정 사건 예비조사 결과보고 중 검토의견 내용. ⓒ인권위

사실 김용원 상임위원의 위와 같은 판단은 한국 사회에서 못 들어볼 만한 것이라거나, 소수의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다. 이 사회에 퍼지고 있는 관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정책 추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거나 자신을 탓하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이데올로기는 올바른 방향이라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널리 수용되고 있다. 피해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단순한 불편 사항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인권위원이라면, 사회 통념을 그대로 수용하는 걸 넘어서 그 안에 자리잡은 기본권 침해 문제를 들여다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모습이 내가 진정을 넣으면서 인권위에 기대했던 점이다.

디지털화 일변도, 사각지대 처한 시민 인권은 어디로

인권은 이를 지키기 위한 기준을 항상 상기하고, 다양한 사안에 세밀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 인권 규범이 처음 생겼던 1900년대 중반에는 없었던 디지털 인권이 지금은 주요한 권리가 된 것이 그 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안에 세밀하게 대응하는 인권위가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인 불만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스스로가 현금 금지 조치에 따라 사각지대에 내몰린 사람이 아니라서 각하된 게 아닐까라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고쳐먹었다. 설사 내가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더 많이 가졌다고 해도, 이런 기조에서는 누구나 각하를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권은 누군가가 극단적으로 몰릴 때만 나타나는 영웅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절벽으로 내몰리기 한참 전부터 우회로를 알려주는 ‘입구 앞 표지판’과 같은 존재다.

현금을 사용하며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고 부당하게 차별당하는 이들은 점점 더 늘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귄위가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이를 다시 판단할 것을 기대하며, 나는 올바른 결정이 나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권 확립을 위한 작지만 중요한 한 발짝을 더 내딛고자 한다. 인권위는 이런 움직임을 확인해 현금 사용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 기본 질서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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