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8일, 법제처는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였다. 개정 이전의 해당 조항은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일자를 명기(明記)하여 국무총리와 각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항을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공포일을 명기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라고 개정한 것이다. 즉, '그 일자'를 '그 공포일'로 바꾼 것이었다. 법제처는 그 개정이유에 대해서는 "법률 등의 공포 또는 공고문 전문(前文)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불명확하여 이를 공포 또는 공고일로 변경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하고"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잘못 개정된 것이다. 이는 명백히 사실(fact)에 위배되는 내용이다. 분명히 이 법문의 주어는 대통령이므로 서명과 날인 그리고 공포일의 명기 모두 대통령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어떻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관보 발행일, 즉 공포일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공포일을 미리 명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고 사실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김동훈 박사는 2019년 9월 19일자 <법률신문>에 발표한 "법률 공포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오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하였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넘게 법률 공포를 오해해온 듯하다. 정말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공포'하고, 법률은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하면 효력을 발생한다(제53조). 여기서 '공포'는 '관보 게재'로 이해되어 왔다. 즉, 이런 등식이 성립한다. 공포(公布)=널리 알림=관보 게재. 헌법교과서를 비롯한 대다수의 법학서적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며, 실정법인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역시 '공포는 관보에 게재하여 이를 한다.'고 규정한다(법령공포법 제11조). 하지만 '공포'와 '관보 게재'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자 다른 작용이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6년 이탈리아 국외연수 중 우리 헌법과 이탈리아 헌법을 비교하다가 한 조문에 마주쳤다.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이탈리아 헌법 제73조). 우리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달랐다. 이탈리아에서도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는데, '공포'(promulgazione) 후에는 별도로 '공고'(pubblicazione)를 하도록 한 것이다. 시사점을 얻은 김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의 헌법과 관련 법률을 내쳐 찾아보았다. 모두 '공포'와 '공고'를 별개로 규정하고 있었다(프랑스 헌법 제10조, 스페인 헌법 제91조, 독일 헌법 제82조).
왜 서구는 구별하는데, 우리는 구별하지 않는가? 하지만 의문을 풀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후 주변의 법률가들에게 물어보고 관련 문헌도 찾아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납득할 만했다. 우리에게 오해가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듣거니와, 설사 그렇다 해도 별 탈 없이 실무를 해왔으니 상관없지 않느냐, 잘못된 관행이라 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이 문제는 다시 사장되었는데 전기를 맞게 된다. 한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 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논문과 기고문이었다. 이 학자는 이 문제의 연원과 현황, 그리고 외국의 사정에 대해 풍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 논의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본 헌법의 '공포' 용어를 받아들인 것인데, 실은 promulgation과 publication이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용어만을 수입하였고, '널리 알린다'라는 '공포'의 일반적 어의에 끼워 맞추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이해해온 착오를 범하였다. 더구나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은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하는 개악(改惡)까지 하고 말았다(소준섭,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 2011.)
프랑스에서 "대통령의 법률 서명"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법률은 대통령에 의해 그 법률에 행해진 서명(promulgation)에 의거해 프랑스의 모든 영토에서 집행력을 부여받는다. 법률 서명은 대통령의 의무로서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대통령이 심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법률 서명'이란 중요하고도 대통령의 엄숙한 국법행위이다. 우리나라의 법률에 최종 서명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단지 서명만 할 뿐이고 그 서명일을 쓰지 않는다. 결국 서명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법제처에서 지정해준 관보 발행일, 즉 '공포 일자'가 나중에 기록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부동산 계약서만 써도 그 일자를 반드시 써야 하고 만약 그 (계약) 일자가 없다면 계약서 자체가 무효화될 정도로 일자란 매우 중요하다. 이렇듯 국가의 최고 규정인 법률에서 서명 일자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매우 커다란 하자가 아닐 수 없다.
잘못 바뀐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본래 필자가 추진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잘못 바뀌어버린 이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 작업이 처음에 필자의 제안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2007년,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장영달 의원에게 우리나라 법률의 '공포(公布)' 개념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장영달 의원은 곧바로 필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의 실무는 모두 장영달 의원의 '보좌관'이 담당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보좌관'은 법제처에 개정 전 문제가 되었던 "그 일자"가 과연 "무슨 일자"인지를 묻는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보냈고, 법제처는 법제처장 명의로 "그 일자"가 "공포일"이라는 답변서를 회신하였다. 결국 그 '보좌관'은 법제처의 이 유권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재와 같은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관료집단에 대한 정치권의 '맹신', 이제 멈춰야 한다
물론 문제의 '법률 공포' 개념은 국내 어느 법률학자들도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점을 이미 제안자로서 필자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했지만, 끝내 필자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소위 '기관', 즉 관료집단의 판단만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점은 대단히 아쉽다. 이 '보좌관'은 훗날 유력 정치인으로 되었다.
필자는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고, 특히 정치권에서 관행화된 이러한 "관료집단에 대한 과도한 신뢰", 혹은 '맹신'이 커다란 문제라고 판단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행했던 '상고법원 법안'이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국회의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은 상태였던 사실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산림청 논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그 '전도사'로 나선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국회에 근무했던 필자로서는 특히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구하는 행태는 매우 잘못된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시기, 법제처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의 사드 도입에 국회 비준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었다. 또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법제처는 협정 체결에 국회동의가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거듭 내렸다.
법제처라는 기관의 유권해석이란 정부 견해의 통일성과 행정 운영의 일관성을 위한 기준 제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행정 기관들에 대해서도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물며 국회에 대하여 유권해석을 제시할 위상은 전혀 아니다.
국회란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입법기관이다. 당연히 유권해석이란 국회가 명실상부한 입법기관으로서 국회 내에 의원으로 구성된 가칭 '유권해석위원회'가 입법취지 등에 토대하여 스스로 수행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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